이혼한 엄마, 딸 결혼식 참석해도 될까?
사랑쟁이 엄마를 꼭 닳은 딸
"띠리링"
지난주 금요일 저녁 휴대폰 벨이 울렸다.
'어? 둘째 딸이네. 무슨 일이지?'
생전 먼저 전화하는 일 없는 둘째의 전화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 엄마 뭐 해?"
역시나 딸의 목소리가 잔뜩 기쁨에 들떠있었다.
" 응 저녁 먹고 안마의자에서 안마하지. 무슨 일 있어?" 나도 덩달아 업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엄마 나 결혼해!!!" 둘째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 진짜??? 와~~~~~~~"
나도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을 때처럼 소리를 지르며 함께 솟아올랐다.
둘째는 3년 전부터 전도사 남자 친구와 사귀고 있다. 그런데 아빠가 결혼을 극구 반대해서 기도하며 허락하기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 근데 어떻게 아빠가 허락한 줄 알아?" 딸은 아주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촉이 발동했다.
" 모야~~ 너 임신했어???" 하니 기다렸다는 듯
" 응 딱 한 번만에 임신했어.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야. 임신했다니까 아빠도 더 이상은 반대를 못하시더라고"
"그래 아주 잘했다. 잘했어" 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혼전순결을 지키던 아이들인 걸 아니까... 임신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가보다.
아빠의 반대가 3년째 이어지면서 밝고 통통 튀던 둘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도 함께 검은색으로 덧입혀졌다.
결혼에 대한 걱정 어린 얘기를 꺼내면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섣부른 조언은 금물이었다.
사실은 나도 특단의 조치로 임신부터 하라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꾹 참고 있었다.
'저렇게 둘이 좋다는데 에비라는 사람도 참 어지간하다.'라며 원망하는 마음만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쁜 소식을 들으니 환호성을 지를만했다.
" 엄마 오늘 식장도 계약했어. 결혼식 날짜는 1달 뒤야"
" 그렇게 빨리 날을 잡았어? 너무 잘 됐다."
'하긴 임신을 했으니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해야겠구나..'
" 응 그런데 엄마"
갑자기 둘째의 목소리가 낮으면서 단호하게 바뀌었다.
" 결혼식 날 엄마가 혼주석에 앉아줬으면 좋겠어.
날 낳아준 엄마가 그 자리에 꼭 앉아야 된다고 생각해.." 그 말을 하며 둘째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 아..." 난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혼한 지 8년이 넘었다. 시댁 식구들, 전남편의 친구들, 예전 교회 사람들... 모든 관계와 단절되어 살았다.
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는데... 다시 그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고? 정말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 '둘째가 결혼하면 엄마 자리에 누가 앉지?' 하는 걱정이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동창 모임에서 그런 걱정을 슬그머니 내비쳤더니 친구들이 정색을 하며
"니가 거길 어떻게 가?" 하며 야단치듯 얘기해서
'난 가면 안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딸의 얘기를 들으며 지금 남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이 되어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대충 통화 내용을 알아차린 남편은 밝게 웃으며 얼굴을 끄덕이고 있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둘째의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
" 엄마가 시댁식구들이나 교회 사람들 마주치기 싫은 마음 알아. 그래도 나를 위해서 한 번만 부탁 들어주면 안 돼? 엄마가 내 결혼식을 몰래 와서 보는 건 생각하기도 싫어. 내 엄마인데 왜 그래야 되냐고?"
" 그래. 알겠어. 너를 위해서 엄마가 불편한 거 잠깐만 참으면 되니까.. 그렇게 할게"
" 응 엄마 고마워. 그 대신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그동안 어둡고 힘없던 둘째 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예전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역시 사랑의 힘이구나...
혼주석에 앉기로 결정하고 나니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둘째 딸 결혼식을 머리로 상상할 때 60년대 영화의 한 장면이 항상 떠올랐었다.
딸의 결혼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기웃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
신부인 딸이 강력하게 와달라고 하니 어느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 병원 갔었는데 아기가 아주 건강하대. 벌써 심장소리도 들었어. 아기로 인해 모든 일이 한방에 해결된 거 보면 울아가가 복덩이인가 봐."
어디서 그런 모성애가 생긴 건지 둘째는 이미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진짜 복덩이네. 복덩이. 너무너무 감사하다. 너희들이 그동안 인내하며 열심히 기도한 결실이네"
그날의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목사의 사모가 되는 삶이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쉽지 않은 길인데.. 그래서 나도 처음 딸이 신학생과 사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시간들을 한결같이 사랑해 주고 옆에서 딸을 챙겨주는 예비사위를 보며 안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인연이구나..'
사랑만 있으면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
역시 울 딸은 사랑쟁이 엄마를 닮았네. 나도 사랑 하나 믿고 지금의 남편과 재혼을 했다. 주위에서 걱정 어린 시선도 많았고 부모님은 대놓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반대하실 게 뻔해서 혼인신고를 먼저 해버렸다.
그렇게 결혼한 우린 4년째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고 내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한다.
그런 사랑쟁이 엄마이기에 사랑 하나 믿고 결혼을 결심한 우리 딸의 선택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응원한다.
역시 내 딸 맞네!!
우리 둘째 딸 넌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보란 듯이 잘 살아야 돼. 너의 앞으로의 삶을 축복하고 너무너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