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절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 드라마 미생 중에서 >
우리 사회는 빠르면 초등학교, 늦으면 중학교부터 미래의 직업을 가지기 위해 공부한다. 대부분 자기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 채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위해 학창 시절을 대부분을 보낸다.
그렇게 힘들게 좋은 직장에 흔히 남들이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가나 대부분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온다. 아니면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참아가면서 꾸역꾸역 다니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말 직장의 즐거움이나 내가 정말 원해서? 다니는 직장인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조금은 고민이라도 한 것 같았다. "내가 잘하는 게 사람 대하는 거, 남들을 도와줄 때 보람을 느끼니 이런 쪽으로 가봐야지" 하며 결정했던 직업이 간호사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공부를 하고 대학에 와서도 주구 장창 좋은 직장(병원)을 얻기 위해 그냥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교수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니 그것이 맞는 줄 알고 공부했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그 과정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경제적인 문제와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 라든가, 학업의 성취도 및 성적 등등 직업을 가지기 위한 그 과정들이 결코 쉽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문제는 이렇게 힘겹게 졸업하고 난 뒤에 들어간 직장은 더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직장을 설렘 반 걱정 반을 안고 들어갔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등 알바를 제외한 드디어 정식적인 첫 직장이었다. 직장을 들어가기 전 많이 들 생각한다. 대부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겠지?", "나는 이런 일을 해서 여기까지 직급에 올라가야지!" , " 나는 돈을 얼마는 벌어서 나중에 내가 원하는 차와 집을 반드시 살 거야" 등등 자신만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그리고 들어간다.
그러나 이 계획들이 대부분은 현실, 즉 돈과 연관된 것이 많으며 권력 지위 등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의 어떤 권력이나 직위에 관련된 것이 많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인생을 살기 위해 이러이러한 노력을 하겠다? 는 질문을 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계획들은 대부분 안타깝게도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다 지워진다.
나는 직장에 들어간 초반부터 최선을 다했다. 솔직히 말하면 동료들과 윗 상사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일도 항상 먼저 하려고 하고 적극적인 모습과, 직장이 끝나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술자리나, 모임 등에 자주 참여했다. 인간관계도 늘어갔고 못해도 열심히 하려고 하니 직장에서의 능력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몸이 급격하게 힘들었고 돈은 벌고 있었지만 통장에 잔고는 크게 쌓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나의 호의와 열심히 노력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게 마음에서 느껴졌다.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넌 이 정도쯤은 충분히 하는 사람이니까'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심어졌다. 그동안의 내가 했던 노력들과 호의가 '무례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많이 올라왔다. "내가 이 만큼 노력했는데, 왜 너희들은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걸까?" 하며 다른 상사들이나 동료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컸다. 그때부터 직장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출근해서 하는 일에 대해 열정도 식어갔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기 시작했다.
같은 직장동료들과의 트러블도 잦아졌다. 일에 대해서 계속 에러가 나면서 흔히 말하는 '책임전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로부터 더 이상 동료를 배려할 마음도 없었고 내 일에 최선은커녕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는 마인드로 임했다. 그러면서 아침에 눈을 떠 드는 생각이 항상 "아 가기 싫어, 오늘도 또 그 일을 해야 돼?" "또 그 사람들을 봐야 돼?" 하면서 점점 부정적인 생각만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사에 부정적인 마인드로 임하다 보니 몸과 정신이 항상 괴로웠다. 출근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퇴근을 해서도 온통 머릿속이 직장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유일한 낙이였던 취미 활동도 잘 안되고 밥도 잘 안 넘어갔다. 그냥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일에 대한 열정이 점점 줄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내고 싶었지만 쉽게 이겨내 지지 않았다. 그때 드는 생각이 "내가 이러려고 그 수많은 기간 동안 공부해서 취업을 한 걸까?", "뭐하려고 내가 그때 열심히 공부했을까?" 하며 과거에 나 자신에 대해 후회와 질책도 시작했다. 더 이상 나를 이대로 놔둘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한 것 중 제일 첫 번째는 나의 욕심이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의 욕심이 문제였다. 그러니 항상 몸과 마음이 힘들고 조급하고 쉴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자 나 혼자 배신감이라는 기분이 들면서 혼자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구나" 하며 "그럼 나 답게 행동하되 그런 욕심을 버려보자"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 이 부정적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시작이었다.
두 번째는 나의 기대였다. 남들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크니 남들이 내 기대만큼 안 해주니 "내가 이만 큼 해줬는데 너는 왜 안 해주냐?"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했다. 약간 그때부터 계산적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 자신도 그렇게 변해 가는 것을 느꼈다.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남들에게 적당한 관심을 가지고 남들이 나에게 해주던 말던 나는 나대로 생활하면 되는데, 처음부터 너무 기대가 크다 보니 어느 순간 그것을 놓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남들이 나에게 해주던 말던, 나는 나대로 살고 해 주면 감사하고 안 해주면 안 해주는 대로 좋다"라고 딱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해보니 모든 게 나로부터의 문제였다. 항상 문제 해결을 남에게 찾으려고 하다 보니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직장이, 동료가 왜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 거지?" 이 질문이 아니라 "내가 직장에서 원만하게 생활하려면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문제가 해결이 되니 자연스레 직장생활이 즐거워졌고 당연히 직장동료들과의 사이도 좋아졌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첫 번째는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 능력에 맞춰 모든 일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처음엔 내 능력이 안돼도 뭐든 해내려고 하니 내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것인데 , 이제는 과감히 내가 못하고 안될 거 같은 일이 오면 "죄송합니다" 하고 거절한다.
처음엔 "이것도 못하니?"라는 식의 말들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한 번에 거절하고 나니 자연스레 나에게 부탁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 일에 대해 인정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일의 능률이 올라가고 직장에서의 삶의 질이 올라간 것이다.
두 번째는 쓸데없는 모임이나, 술자리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인맥을 늘리기 위해 이리저리 모임이나 술자리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내가 딱 원하는 자리에만 가게 되었다. 혹여나 그런 제의가 오더라도 "죄송합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하며 거절했다.
처음에는 강제로 가자고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반복되다 보니 이제 나를 '술과 모임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어 어느 순간 물어보지도 않게 되었다. 처음엔 이런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활동들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이 늘어났다. 직장밖에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늘어나면서 운동이나 자연스럽게 책, 취미활동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힘들 것 같던 거절을 수행하게 되면서 얻어진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을 잘 활용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에 대해 자존감과 긍지, 자부심 등이 올라갔다.
이 모든 상황의 개선된 점이 뭘까?라고 생각해보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직장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입사할 때의 마음과는 전혀 반대되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 남들의 평가와 인정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더 높은 위치, 권력을 가지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인간관계를 늘리겠다는 마음도 없어졌고 꼭 필요한 만남만 가게 되었다. 오히려 그 시간들을 '나'를 위해 쓰는 시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대부분은 직장인들이 첫 직장과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다. 물론 직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안정적인 월급이 들어오고 나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곳 이긴 하지만 직장이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을 쏟은 만큼 노력이 돌아오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인정해주는 곳도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늙은 나 대신 다른 사람을 쓸 것이다. 그러면 그때 난 또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한 순간에 나를 버리다니?" 하며 인생을 또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또 불만 불평하며 하소연만 하고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엔 직장은 원래 그렇다. 더 나아가 직장은 나의 삶을 절대 책임져주지 않는다. 모든 직장생활의 불행은 직장을 사랑하는데에서 시작된다. 직장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쓸데없는 모임이나 술자리도 안 가도 되며,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악하며 일할 필요도 없다.
나를 쫓아낸다 해도 별로 사랑하지 않아서 집착도 없어 편한 마음으로 나갈 수 있다. 나를 써주는 곳을 찾아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욕심만 내려놓으면 무서울 게 없다.
직장을 사랑했다면 자르지 말라고 애원했을 것이며, 그런 마인드로 일한다면 노예처럼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들 것이다. 더 좋은 것은 직장을 다니며 나의 차선책을 몇 개쯤 만들어 놓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면 훨씬 더 직장에 덜 집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직장생활이 힘들고 괴로운 건 직장에 대한 나의 사랑과 집착 때문이다. 내가 가진 무언가의 욕심이나 집착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직장은 절대 나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하고 월급을 받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회사를 무조건 적으로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 이런 마인드로 매사에 임하다 보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두려움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다. 무서울 게 없으니 매사에 당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