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가(代價)와 눈치

공짜 없는 인생

by 에밀리H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 그만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설령 내가 누군가에게 점심을 얻어먹었다면 당시에는 점심값이 굳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베풀어야 할 때가 온다. 결국 모든 것들이 돌고도는 것이 인생이고 그만한 대가는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대가를 덜 치르기 위해서는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는 짠순이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독한 짠순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다른 곳에 투자를 했다기보다 그저 쓸 데 없는 지출을 줄이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사고 싶은 모든 것들은 엄마한테 쓸 데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지독하게 아꼈던 것에 반해 아빠는 돈을 규모 있게 쓰지 못했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이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반반씩 닮아서 가끔씩 충동구매를 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돈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아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나는 은연중에 '돈돈' 거리는 습관이 있다. 누군가는 내가 상고 출신에 대학은 경영학을 전공했고, 사회에서는 기획, 마케팅, 영업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계산하는 버릇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지만 전부 다 아니다. 그냥 엄마한테 보고 배운 것 '돈돈'거리는 거였고, 모든 대가를 따져가며 눈치껏 행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돈 많이 들어가는 자식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덕분에 엄마가 '돈돈' 거리는 일이 생길 때면 나는 눈치껏 행동하려 했다.


정확하게 어떤 계기로 알게 됐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에게 부정교합으로 인해 주걱턱이 될 가능성이 있었고, 엄마는 나를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큰 맘먹고 교정을 해주러 옆동네 치과까지 나를 끌고 갔다.


'돈 많이 들어가는 자식이란 취급'은 짠순이 엄마 딴에는 자녀의 미용을 위해 큰 맘먹고 시켜준 자랑스러운 관심이자 사랑의 표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자 죄책감이었다. 교정에 대한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더욱이 90대 후반에는 지금처럼 교정이 1-2년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닌 4-5년 또는 그 이상으로 길게 보고 치료계획을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장치 변경할 때마다 들어가는 큰 액수의 비용과 진료 때마다 일정 비용의 돈을 내야 했다. 나는 치과진료로 인해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그날은 엄마가 모든 일을 소극적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치과 옆에 있는 전통시장에서 장을 볼 때도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깎아달라 말 못 하는 사람이 눈 희번덕해가며 깎아달라 애원했고 한동안은 억척스러운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교정을 하는 대가로 엄마가 돌변하는 모습을 보니 죄스럽고 한없이 미안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나서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나는 이전보다 눈치껏 행동을 해야 했고, 가족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행동으로 나의 죄스러움을 덜어내야만 했다.


내가 했던 교정장치는 치열을 고르게 만들기 위해 교정하는 친구들과 형태가 아예 달랐다. 다른 친구들은 일명 '철길'을 깔았지만 나는 턱을 집어넣는 것이 일 순위였기 때문에 윗니를 앞으로 빼주는 틀니 같은 교정기와 턱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헬멧 같은 것을 써야 했다. 평소 틀니 같은 장치는 음식물을 씹고 있는 거 같아 보여서 학교나 학원 그리고 심지어 교회 선생님한테 일일이 나의 교정기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야 했고, 친구들이며 나를 아는 동네 어르신들과 마주치면 일일이 나에 교정장치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시켜 드려야 했다. 더불어 튀는 외관으로 인해 눈치껏 행동하고 자제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몇 년 동안 수업시간 내내 무엇을 씹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헬멧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 애라는 얘기를 듣고 살았다. 내 이름 석자가 아닌 '헬멧 쓴 애'로 불리는 일이 많았다. 더욱이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교정기를 뺀 상태에서 물에 담가 보관을 해야 했기 때문에 친구 생일파티라도 가는 날이면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 나의 소원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교정기를 뺀 다음에 자유롭게 간식을 사 먹으며 돌아다니는 거였다.


결론적으로 엄마 덕에 부정교합에 대한 불편함을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에 스무 살 후반까지 모든 불편함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악몽을 꾸게 됐다. 대부분 교정기로 인해 큰돈이 들어가는 상황이 악몽으로 표현됐고 모든 일이 나로 인해 비롯됐다는 생각에 꿈속에 나와 현실의 나는 엉엉 울었다.


또 다른 형태의 일화들이 있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 크게 대가를 바라거나, 눈치를 보는 똘똘한 아이가 아니었다.


한글을 배우는데 게으름을 피운 대가로 받아쓰기 점수는 들쑥날쑥했고, 학습지도 직접 풀기보다 선생님이 오시기 30분 전부터 엄마가 숨겨놓은 답지를 찾아보고 베끼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교정 등과 같은 일들로 인해 점차 모든 일에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눈치껏 행동하는 일이 많아졌고, 공부를 '잘' 하는 것 외에는 사고를 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선생님들은 말 잘 듣는 '척'을 하는 나를 좋아하셨고 나는 칭찬을 받는 아이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칭찬'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내가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또 칭찬을 받기 위해 그렇게 행동을 한 건지, 아니면 눈치껏 똘똘해 보이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건지 정확하게 모른다. 여하튼 나는 눈치껏 행동을 해서 칭찬을 받았지만 그만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내가 조금만 설명하면 말을 잘 알아듣고 그대로 해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많았다. 교회 선생님들은 돈 계산을 할 줄 모르는 나를 시켜 슈퍼에서 친구들 간식을 사 오게 했고, 유치원 원장님은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6살인 나에게 7살 반 졸업 송사를 시켰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본인의 식사를 위해 반찬가게에 가서 반찬을 사 오게 했는데, 눈치껏 센스 있게 반찬을 골라 사가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때는 내가 학급 반장이어서 시키는 줄로만 알았던 커피 타기 심부름은 1년 내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교무실 갈 일이 많아지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눈도장을 찍은 덕에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체육대회 곤봉 안무를 아무 도움도 없이 혼자서 다 짜고 1반부터 13반까지 돌아가면서 여자 친구들에게 안무를 알려줘야 했다. 나는 나를 믿고 시키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능력 이상의 노력을 해야만 했는데,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눈의 불을 켜고 지켜보는 다른 친구들의 따가웠던 시선은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있다.


집에서는 막내로서 엄마, 아빠, 언니가 나를 줄기차게 시켜먹는 것도 모자라 밖에서도 나는 모두의 심부름꾼으로 성장해 있었으니 난 다른 의미로 '만인의 연인'이었다. 또 내가 칭찬받을 행동을 하면 엄마는 함박미소를 지었다. 이상했다. 나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엄마의 미소가 좋았고 그 미소를 보기 위해 계속 그렇게 노력했다.


짠순이 엄마의 행동과 더불어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지면서 계산적으로 행동했다. 칭찬을 받지 못한 것은 실패한 일이라 여겼고, 나 스스로를 책망하고 혹독하게 다스리는 일이 많았다. 슬슬 눈치만 보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혹은 더 많은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난 그때의 기억들이, 그리고 나의 행동들이 기특하면서도 때로는 안쓰럽게 느껴진다. 엄마가 없던 이후부터는 삶의 방향을 달리 잡아가면서 행동하려 하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다. 어릴 적에 좀 더 아이답게 컸으면 좋았을 것을 남의 눈치만 보면서 칭찬에 목매여 살았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모습의 나인 적이 많이 없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할 때는 눈치 챙기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대가에 따른 눈치만 보고 있으면 굉장한 고답이로 보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나치게 계산적인 행동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누구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일이더라도 언젠가는 극소수한테서라도 인정받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눈치 보고 자기 할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것이 제일 좋다. 모든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언젠가는 눈치 안 보고 묵묵히 해낸 일에 대한 성과를 얻게 될 거라 믿고 있다.


적당히 눈치 보고 적당히 계산하면서 사는 것이 나의 남은 생에 숙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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