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파리지엥이 될 수 없어

약 20여 일 동안 파리에서 생긴 일

by 에밀리H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 사람들만 겪는다는 '파리 신드롬'이라는 정신질환이 있다. 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파리를 갔다 와서 상당 부분 환상이 깨져버린 것이 사실이다. 파리라는 도시에 현실 불가능한 로망을 가진 건 아니지만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어디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150피스 에펠탑 퍼즐


이전까지 파리의 아침을 상상할 때면, 숙소 근처 빵집에 가서 겉바속촉 바게트를 구입한 다음에 길을 걸으며 우걱우걱 씹어먹는 낭만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나는 파리라는 낭만열차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던 거였다. 역시... 낭만은 상상 속에 잠가두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멋졌다.



첫날 겨우 숙소에 도착해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니 허기가 졌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샴푸와 샤워젤을 사기 위해 근처 Franprix를 갔다.


제품 기획 일을 했을 당시, 수출할 것을 감안해서 영문 제품명도 기입하는 것을 관례처럼 여겼었다. 그래서 여기 제품에도 영문명이 적혀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모든 제품에 불어만 잔뜩 적혀 있었고 용법 설명에만 작은 글씨의 영어가 적혀있었다. 뭐가 헤어 샴푸이고 바디샤워인지 구분하지 못해서, Franprix 매장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으로 번역을 시도하고 있었다.


극적으로 제품을 고르고 나서 계산대에 제품을 올렸다. 캐셔 직원은 시크하게 물건 바코드를 찍더니 랩을 하듯 불어로 금액을 읊었다.

???

잠깐 동안 물음표 백개를 담고 있는 나의 표정과 직원의 어쩌라고 표정이 대립하고 있었다.

어찌할 줄 몰라 가만히 서있다가 결국 내가 직접 모니터 숫자를 보고 돈을 지불했다.


그렇게 몇 시간 만에 나의 파리 망상은 끝이 났다. (어쩌면 망상을 빨리 끝내서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먼저 방문한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정보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억에 남을 추억을 여럿 만들 수 있었다. 비록 파리지엥은 될 수 없었지만 'Bon Voyage'를 위해 어떤 나름의 노력이 있었는지 끄적여볼까 한다.


Part 1. 먹고 마실 곳을 찾아서


사누키야 우동_한국사람들이 많이 방문해서 그런지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따로 있었다.

사누키야 우동


동행자 : 민시킴, 스리, 김 총무, 켱

파리에서 몇 년 동안 유학을 하고 있었던 민시킴은 가끔씩 갭퍼들과 외출을 나갔다. (한 번은 민시킴이 카페에 가자고 꼬셔서 볼링장에 데리고 간 적도 있었다.) 사누키야 우동은 국내 유명 가수가 파리에 가면 먹는다는 음식점이었는데, 가게가 크지 않아서 자리가 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를 받고 들어가니 한글로 된 메뉴판도 있었고 우리를 제외하고도 곳곳에 한국사람들이 많았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유럽 속 동양의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이후에 에펠탑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한인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Pedra Alta_한쪽에 미니 테이블을 붙여서 큰 고깃덩이 그릇을 올려두어야만 했다.

Pedra Alta


동행자 : 얭, 스리, 나블링, 김 총무, 수박, 소박

스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성대한 만찬을 즐기기 위해 민박집 사장님 추천으로 Pedra Alta 음식점을 갔다. 해산물 요리에 목말라 있던 몽생미셸 멤버 7명이 다 같이 움직였다. 이곳의 테이블 세팅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던 건 7명이 앉기에 불편한 둥근 테이블에 우리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음식이 담긴 그릇들은 엄청 크고 심지어 개인 앞접시까지 있어서 여유 있게 대화를 하면서 먹지를 못했다.


노트르담 성당 근처 펍


동행자 : 얭, 스리, 김 총무, 수박, 소박

스리가 이대로 마지막 날을 보내기 아쉽다면서 펍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스리, 김 총무, 수박, 소박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간 상태였고, 민박집에 남아 있었던 나와 얭은 메트로를 타고 이동해서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도착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둑해진 밤, 파리 거리의 조명, 몇몇 남지 않은 관광객...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대형 쥐들. 민박집에서는 큰 벌레들과 아이컨택을 하고,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서는 도시의 쥐들의 재빠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교적 사람이 적어 보이는 펍에 들어가 각자 마실 음료와 피자 한판 시켜놓고 대화를 나누는데 금방 무료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얼마 안 있다가 얭이 호출한 우버를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레 뒤마고 카페


동행자 : 호리, 김 총무, 졍

프랑스에 처음 생긴 스타벅스 매장도 가봤는데 파리의 상징이 되는 카페에도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김 총무, 졍, 호리와 레 뒤마고 카페를 갔다.


나는 핫 쇼콜라를 주문했다. 감기, 후두염, 구내염이 동시에 와서 별 맛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핫 초콜릿이 너무 꾸덕해서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는 것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내내 그릇 깨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고, 다들 담배를 어찌나 피우던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카페에서 노닥거리다가 졍이 찾아낸 근처 맛집으로 가서 밥을 겨우 먹고 센 강둑에 앉아 파리라는 도시의 정취를 느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던, 그런 하루였다.


Des Gars dans le Cuisine_맛있어서 참는다... 츄릅


Des Gars dans le Cuisine


동행자 : 얭, 졍

얭의 마지막 날. 외출 안 하고 혼자 민박집에서 뒹굴거리는 나를 본 졍이 얭의 마지막을 함께 하자며 맛집을 데려갔다. 콧대 높은 레스토랑 직원은 우리를 대충 안내하는 것도 모자라 음식 주문받는 것도 뭉그적, 음식 서빙도 뭉그적거렸다. 나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의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고 하는데 온전히 음식만 먹는데 2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고, 계산하는데 총 2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비스는 정말 별로였지만 음식 맛은 훌륭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와서 라빠예뜨 백화점 옥상 전망대에 가서 사진 찍고 놀다가 스타벅스에 갔다. 그런데 한국식 영어 발음 때문인 건지 주문부터 음료를 받기까지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Part 2. 갈 곳을 찾아서


프리 유심칩


동행자 : 호리

하루는 김 총무와 호리가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하더니 프리 유심칩을 구매하러 갈 거라고 말했다. 알아서들 잘하고 오겠지 싶었는데, 카드결제만 가능한 곳이어서 실패하고 돌아왔다 말했다. 그래서 바쁜 김 총무를 버리고 호리와 유심칩 매장으로 출동했다. 내 카드로 김 총무와 호리 유심칩을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어떤 사람이 나와 호리를 불러 세웠다. 그 사람은 본인 카드로 잘 안된다며 대리 결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진짜 내 성격이 나왔으면 정중하게 거절했겠지만, 바르셀로나 일이 생각나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토스를 이용해 계좌 송금을 해줬다.)


난 마음이 그렇게 넓은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얼떨결에 한국인 3명을 도와주게 된 날이었다.


묘지가 아닌 진짜 몽마르뜨 언덕과 나에게 희망이 되어준 사크레쾨르 성당


무시무시한 몽마르트르 언덕의 전설


동행자 : 없음

이때 당시에 구글맵으로 몽마르트르 언덕을 검색하면 몽마르트르 묘지가 나왔다. 덕분에 메트로 역에서부터 똥개 훈련을 제대로 했다.


길을 헤매던 도중 근처 구멍가게에 들어가 1유로짜리 물을 사기 위해 2유로 동전을 내밀었다. 그런데 분명 테이블 위에 1유로 동전이 있었는데도, 50센트 두 개를 서랍에서 꺼내 거슬러 주시는 친절함을 경험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매연을 흠뻑 맞으며 한참을 걸어갔는데 도착한 곳은 묘지 앞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묘지 앞 벤치에 앉아 마음속으로 묵념을 한 다음 구글맵 리뷰글을 다시 읽어봤다.


여기서 결론은, 몽마르트르 언덕을 찾아가려면 '사크레쾨르 성당'을 검색해서 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정말 다리가 터질 거 같은 무시무시한 날이었다.


비 오기 직전 에펠탑


비 오는 날 에펠탑


동행자 : 얭, 나블링, 김 총무, 수박, 미니, 켱

나블링, 수박, 소박의 파리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소박이는 혼자 스페인 여행 중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의 제안으로 에펠탑 앞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놀자는 얘기가 나왔다.


7명이 에펠탑 앞 잔디밭에 모이기로 했다. 다들 도착해서 돗자리 세팅을 하고 와인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점차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워낙에 이런 적이 많아서 그냥 있을까 했는데 빗방울이 한두 개씩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점차 빗줄기가 굵어져서 서둘러 짐을 챙겼다.


4명은 각자 비를 막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머리를 가렸고 나머지 3명은 돗자리를 마저 정리하지 못해 그 돗자리를 우산 삼아 역으로 달렸다. 감성 살려서 제대로 놀아보려 했는데 결국에 결말은 비였다. 에펠탑 앞에서 와인 한 번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비 맞고 돌아왔는데도 재밌었다면서 민박집에서 2차전을 벌였다.


바토 뮤슈 유람선


동행자 : 씅오빠, 얭, 나블링, 김 총무, 수박, 소박

갭퍼들은 민박집 이벤트로 바토 뮤슈 유람선 티켓을 무료로 제공받았다. 나는 이 이벤트를 까먹고 있다가 다른 갭퍼들 덕분에 극적으로 기억해 냈고, 그날 거의 마지막으로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게 됐다.


어둑해진 밤, 도시의 조명, 밤거리를 거닐며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을 기대했지만 전혀 딴판이었다. 유람선 2층에서 자기네들끼리 신나 술판을 벌인 몇몇 사람들 때문에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설명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센 강 근처에서 술과 음악을 즐기는 각국의 젊은이들이 흥에 젖어 유람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참으로 볼만했다.


그 시간대가 최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토 뮤슈 유람선은 기대만큼 별로였다. 주요 장소를 찍을 법도 한데 핸드폰 카메라 한번 들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렸다.


몽쥬 약국


동행자 : 없음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부터 민박집에는 감기 바이러스가 곳곳에 퍼져있었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나는 감기 바이러스를 피해 가지 못했다. 외출도 못하고 골골거리고 있던 마지막 날... 선물할 것들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몽쥬 약국을 갔다. 그날은 날씨가 화창했고, 나는 날씨에 맞게 기분을 내기 위해 시폰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몽쥬 약국 역 근처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내가 공사 구간을 지나려던 찰나에 바닥 환풍구에서 거대한 뜨거운 바람이 밀려 나와 치마를 들추려 했다. 반사신경으로 급하게 치맛자락을 잡았는데 길 건너편에서 공사 인부 2명이 아쉬움의 탄식과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가운데 손가락이 올라갈뻔했다.


약국 안에는 한국인 직원분들도 있고 한국어도 적혀있고 쇼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사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캐리어가 한정적이어서 쓸어 담지 못한다는 아쉬움만 남을 뿐이었다. 이전에는 왜 다들 몽쥬 약국을 가려하는지 몰랐는데 직접 와서 보니 쇼핑 천국이었다. (꼭 몽쥬 약국이 아니더라도 쇼핑할 약국은 파리 곳곳에 널렸다.)




몰타에 있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위험천만한 파리라는 도시에 머물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며 염려 가득한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실제로 겪어본 파리라는 도시는 낭만적인 거 같으면서도 위협적인 도시였다.


어쩌면 유명 관광지로써의 역할을 하다 보니 오랜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파리는 역시나 파리했다.


나는 파리라는 도시에 급체해서 미련 한 톨 남기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나름의 묘미가 숨어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망각이라는 신의 배려를 경험했을지도...)


이전과 똑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도시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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