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프랑스에서도 이어지는 프리라이더의 삶

쥐베흐니Giverny 그리고 몽생미셸 Mont-Saint-Michel

by 에밀리H

바르셀로나 여행을 위해 투어 일정을 잡던 도중, 프랑스 몽생미셸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다. 이곳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섬으로 프랑스의 유명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파리 근교 여행이라 할 수 없는 곳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어로 신청해서 다녀오곤 했다.


나는 늘 그랬듯이 혼자라도 투어 신청해서 몽생미셸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야경투어로 다녀온다는 그곳을 꼭 갈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갭퍼들 덕분에 함께 몽생미셸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인원이 한 명을 더 늘어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봐줬다. 프리 라이더처럼 아무 준비 없이 돈만 내고 다녀오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제안이 너무도 달콤해서 덥석 물었다.


여행인원은 나, 나와 동갑인 얭, 스리, 나블링, 김 총무, 소박, 수박 이렇게 7명이었다.


여행하는 이틀 동안 하늘이 참 맑고 예뻤다.


다음 날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우선 메트로를 타고 오페라 역에 내려서 루아시 공항버스를 타고 샤를 드골 공항 1 터미널에서 내렸다. 렌터가 업체가 업무를 시작하기 전이어서 맥도날드에 가서 각자 취향껏 맥모닝을 먹었다. (키오스크로 주문한 후 영수증을 직원에게 보여줬더니 쟁반에 담아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갖다 줬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3층으로 올라가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를 찾았다. (생각보다 업무처리 방식이 느려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몽생미셸을 가기 전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지베르니(쥐베흐니 Giverny)'를 갈 예정이었다. 인상파 기법의 창시자이자 거장 클레드 모네가 남은 여생을 보낸 곳이었다. 이곳에는 모네의 집과 정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관에서 다른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쥐베흐니_모네의 정원에서 / 자연에 취한다 취해...


쥐베흐니 정원_똥 손이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이 된다.


입구에서 2가지 티켓(입장권 + 모네 박물관)을 구입한 뒤 천천히 둘러봤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아서 정원에 있는 꽃과 식물들이 태양 조명 제대로 받고 있었다. 소박이는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봤던 모네의 작품들을 기억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우리네 부모님들이 산이나 들로 소풍 가면 꽃 사진을 찍어대듯이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쥐베흐니_모네의 집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곳곳에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떠나서 교과서에서만 보고 들었던 거장이 살던 집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어서 느낌이 새롭다는 말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모네의 집과 정원 투어를 마친 후 박물관 가는 길목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다음으로 모네 박물관에 티켓을 내밀고 들어가서 각자 관람을 했다. 나는 혼자 돌아다닐까 하다가 미술학도인 스리 옆에 찰싹 붙어 기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쥐베흐니 들판에 앉아_김 총무가 찍어줘서 김 총무 발이 빠졌다.


몽생미셸에 가는 목적은 역사적 배경을 알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야경 보기'가 한몫한다. 우리는 쥐베흐니에서 실컷 즐긴 다음 몽생미셸 야경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하며 서둘러 출발했다.


김 총무가 미리 몽생미셸 근처에 괜찮은 에어비엔비 숙소를 예약해두었다. 숙소 근처 최대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까르푸를 찾아가서 장을 보기로 계획했다. 우리는 겨우 마트를 전투적으로 먹거리 쇼핑을 했다. 예산은 한정적인데 각자 해 먹고 싶은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장을 보는데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러 조율 끝에 적당량의 음식을 사서 각자 양손 가득 들고 나와 차에 짐을 실었다.


숙소로 가는 도중 석양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쌍무지개가 떠있었다. 나는 그 순간 파리 도심과는 전혀 다른 프랑스의 모습을 눈에 담느라 바빴다. 이틀 전만 해도 한국 돌아가고 싶다고 난리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프랑스가 급 좋아졌다.


그런데 여기서 살짝 문제가 생겼다. 숙소 호스트가 알려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어서 갔는데 가축 농장이 나왔다. 주변에 농장만 있을 뿐 사람 사는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총무가 그나마 불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호스트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호스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 같은 길을 뱅글뱅글 돌다 보니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겨우 연락이 닿은 호스트한테 주소를 다시 받아서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그때 헤맸던 거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충분히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호스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밤 10시 40분이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탄 후 몽생미셸 야경을 보기 위해 야간 셔틀이 운행되는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마지막 운행시간이 이미 끝난 상태여서 주차장 진입조차 불가한 상태였다. 우리는 너무 아쉬워서 멀리 서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웠다.


개미 똥만 한 크기로만 봐도 괜찮다고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던 찰나에 김 총무가 귀신같이 농장 주인을 찾아갔다. 농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몽생미셸을 좀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했다. 김 총무의 패기와 농장 주인님의 쿨함 덕분에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축 분뇨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리까지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서 걸었다.


농장 어딘가에서 찍은 몽생미셸 야경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나름 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보였다. 우리는 핸드폰 플래시를 다 끄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변이 고요하고 다른 불빛의 방해를 받지 않고 감상하니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김 총무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더욱 가까이 들어가서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욕심을 부렸다가 무슨 일이 생길 거라며 스리가 김 총무를 질질 끌고 나왔다. (알고 보니 거기는 말이나 소 등의 가축들을 들판에 방목해서 키우는 곳이었다. / 좀 더 들어갔다면 알 수 없는 엔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숙소에 도착해서 바비큐 파티 준비를 했다. 땔감을 가져와서 화덕 같은 곳에 불을 익히는 일까지도 순조롭지 않았지만 이것도 경험이라면서 웃으며 넘겼다. 자정이 넘어서 시작된 파티는 3시까지 이어졌고 소수의 인원만 5시까지 버티다가 겨우 끝이 났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잡은 숙소_앞마당도 넓고 풀장도 있고 조금 넘어가면 저렇게 나무그네 타는 곳도 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는 성격인지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두 명씩 일어나면서 전날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리, 소박, 김 총무가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줬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사장님을 불렀다. 우리는 사용했던 식기류 정도만 깔끔하게 정리하면 체크아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호스트는 숙박비에 청소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서 기본적인 정리정돈과 청소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었던 우리는 차에서 서둘러 내린 다음 지시대로 각자 영역을 맡아 움직였다.


몽생미셸_낮에 바라본 모습


확실히 전날 밤과 달리 몽생미셸 주차장 이용이 수월했다. 빠르게 주차를 마치고 나와 이동수단을 골라 타기 위해 걸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무료로 셔틀을 타고 진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돈을 주고 마차를 타고 갈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우리는 아무 고민하지 않고 몽생미셸 초입까지 진입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구간별로 사람들을 태운 버스는 다리 끝에까지 가서 내려주었다.


김 총무 作_급하게 소박이 선구리를 빌려 썼다.


우리는 몽생미셸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난 후 수도원으로 가기 위한 길목을 걷다가 카페에 들어갔다. 각자 마시고 싶은 차 또는 커피를 시킨 후 티타임을 가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홍합요리가 유명하다는 소문 그대로 각각 테이블의 손님들이 홍합 스튜와 감자튀김을 먹고 있었다.


나는 전날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얼굴과 두피가 너무 따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햇살을 즐기고 싶어서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얼굴 주변으로 둘러서 피부를 보호하고 있었다.


몽생미셸_상점이 몰려있는 곳 /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수도원이 나온다.


잠깐의 휴식을 즐긴 다음 수도원으로 올라가 각자 입장권과 오디오 가이드를 챙겨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오는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밀물과 썰물 계산을 못했던 옛날에는 이를 이용해서 적들로부터 방어를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순례자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곳의 구조적 배치만 보더라도 봉건사회를 잘 반영해 놓은 듯 자체만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도원 쪽에서 찍은 사진


몽생미셸에서


관광을 다 마친 우리는 근처에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봤다. 몽생미셸 안에 있는 몇몇 음식점들은 너무 사람이 많아서 주변에 한적한 곳에 들어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이어서 그런 건지 오픈한 음식점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 가게에 들어가 메뉴판을 훑어본 후 샌드위치 7개를 주문했다. 사장님은 진짜 각자 한 개씩 먹을 거냐고 재차 확인을 하신 다음 갑자기 가게를 나가 옆에 있는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 오셨다. 그러더니 한참을 주방에서 복작거리고 계셨다.


도대체 무슨 샌드위치이길래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는데 충분히 그럴만했다.


자이언트 샌드위치


옆에 빵집에서 바로 바게트를 사 와서 반을 자른 다음 반을 갈라 속을 채워주셨다. 테이블에 하나씩 놔주시는데 다들 샌드위치 크기를 보고 놀라서 빵 터졌다. 해산물 대신에 먹은 샌드위치는 정말 희한한 경험이었다.


처음 계획은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남으면 명소 한 곳을 더 들렀다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를 반납하고 갈 생각을 하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점차 길이 막혀서 명소 한 곳을 더 가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얭은 전날부터 운전을 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는데, 우리 편하라고 숙소에 내려준 다음 차를 반납하러 다시 운전해서 공항엘 갔다. 그리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얭이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반납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몽생미셸 기념품 가게에서 산 150 피스 퍼즐


같이 준비했던 거 하나 없이 출발 전 날에 합류해서 민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모두의 배려 덕분에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냥 일반적인 투어 신청을 하고 다녀왔다면 쥐베흐니를 가 볼 생각도 못했을 거고, 소똥 말똥 밟아가며 겨우 야경을 보는 경험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자이언트 샌드위치는 덤... ) 비용은 일반 투어보다 더 들었을 수도 있지만 용감한 친구들과 함께여서 행복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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