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있는 법 (유시유종 有始有終)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일주일 동안 감기와 두통으로 고생을 했다.
오전 청소할 때 거슬린다는 민박집 이모님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외출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몸이 아파도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정보를 찾아 움직일 법도 한데, 약 먹고 침대에 누워 입만 나불거리고 있으니 한심 그 자체였다.
사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3개월이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줄 알았는데 앞으로 치열한 한국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정답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여행 시작과 달리 끝에 다다를수록 기운이 안 났을 수도 있다.
몇 년 동안 일해서 모은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생활하는 3개월이 너무 편하고 좋았지만, 계속 그럴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웠으리라.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7 : 40 A.M
민박집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8시에 시작되는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민박집에서 주는 마지막 선물을 챙긴 다음 인사를 드리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모님께서 아직 8시가 안 됐지만 아침밥을 먹고 가라 하셨다. 이모님의 따뜻한 아침밥 배려와 문까지 배웅까지 받은 후 우버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충분한 숙면을 취하기 위해 전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거기에 밥까지 먹으니 눈꺼풀이 내려앉으려던 찰나였다.
"떼흐미날 두? 두? 앙?"
급작스럽게 들리는 불어 때문에 눈이 번쩍 떠졌다. 기사님이 나에게 확인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떼흐... 떼흐... 미...날 두? 두? 손가락 두 개로... 두? 아!!! 기사님은 공항 터미널 2로 가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계셨던 거였다. 그제야 겨우 알아듣고는 "Oui! Oui!"라고 대답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텍스 리펀 도장을 받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항공사 데스크로 갔다. 전날에 짐을 싸면서 최소한으로 만들어놨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섬주섬 사놓은 게 많아서 그런지 캐리어가 묵직했다. 눈으로 봐서도 23kg는 가뿐히 넘길 거 같아 직원이 있는 데스크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싶었는데 키오스크에서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키오스크 앞에서 사부작거렸지만 역시나 캐리어 때문에 사람 있는 데스크로 가라는 문구가 나왔다. 어쩐지 수월하다 싶었다. 어기적 캐리어를 끌고 사람 있는 데스크로 가서 수화물 중량 초과에 따른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말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에서인지 다른 가방에 옮겨서 분산시킬 수 없냐며 회유했다.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가망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냥 결제를 해달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안검색과 출국 도장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제는 이런 공항의 혼잡스러움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열 시간이 넘는 동안 입안이 텁텁할 것을 대비해서 껌을 사서 씹었다.
한동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게이트가 오픈했고 비행기 탑승이 시작됐다.
내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참 인사성이 밝은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더니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귀여운 동물 영상을 찾아보면서 꺄르륵 웃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뒤로 기내는 난장판이 됐다. 내 뒷좌석에 앉은 중년 아저씨들은 코드 쉐인 게 아쉬워서 그러신 건지 비행기에 탑승하고 내릴 때까지 '역시 한국 승무원들이 제일 친절하다'는 등의 불만사항을 줄줄이 읊고 계셨다. 그리고 의자에 붙어있는 화면을 어찌나 세게 누르시는지 발가락으로 거칠게 터치하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장신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자리를 바꿔 앉는 건지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창가 쪽에 앉은 어린아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칭얼거리는데도 옆에 보호자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잠으로 이 전쟁을 이겨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여기서 최고의 빌런은 내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었다. 초반에 뒤에 앉은 아저씨들 때문에 화가 났는지 동영상을 보고 꺄르륵 웃다가 갑자기 확 뒤로 돌아서서 "XX 존나 쳐대!!!"라고 욕하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이 사람의 분노가 묻혔다.) 음료 서비스가 진행 중일 때 계속 맥주 아니면 와인을 달라해서 벌컥벌컥 마시더니, 그렇게 알코올 원기옥을 모아서 창가 쪽에 앉은 시끄러운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악!!! XX 존나 시끄러워!!!"라고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 X 됐다... 어떡하지?...
어느 누구와도 말 섞고 싶지 않아서 12시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그냥 기내식을 주면 먹고, 할 일이 없으면 멍 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수행하듯 버티고 있으니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줄 알았다. (Amen!)
드디어 3개월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고, 한참을 기다렸다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집 앞에 내렸다. 날씨 한번 참 좋은 날이었다.
집에 오면 밀린 잠부터 잘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성실할 수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캐리어 짐들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캐리어에 있는 옷들을 다 꺼내서 빨래를 돌리고 베란다에 걸려있는 아빠 옷은 개서 옷장에 넣었다. 선물용으로 사 온 것들은 큰 쇼핑백 하나에 모아 놓고, 기념으로 남긴 자료들은 분류해서 클리어 파일에 정리했다. 신발들도 신발장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고 다 돌아간 세탁물들을 꺼내서 베란다에 널었다. 정리를 하니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서 종량제 봉투에 가득 담아 쓰레기도 내다 버리고 청소기까지 돌렸다.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당분간은 한국 시간에 맞는 생활 패턴으로 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고작 3개월 나갔다 온건 데도 불구하고 한 달 넘게 사이클을 바로잡느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빵과 파스타는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지중해 볕에 탄 피부를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틈틈이 지난 3개월 동안 뭘 하다 왔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정리해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래서 동네 내과에 방문해서 진료를 받으려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장기간 해외 체류를 하다 왔냐고 물어보셨다. 여행기간은 100일을 넘기지 않았지만 퇴사한 이후에 아빠 쪽으로라도 이름을 등록해놓지 않아서 권한이 중지된 상태였다. 결국 중지된 상태가 풀리기 전까지 진료비와 약제비 모두를 원금으로 부담하고 나중에 다시 환불받을 수 있었다. 큰 일은 아니지만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히 친구들을 만나는 것 외에는 집에만 눌러앉아 있으니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거 같고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써야 할 돈이나 생활비가 모자란 상황은 아니었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구직 사이트를 통해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한 달 반 만에 다시 화장품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일들을 다시 겪게 되자 불안증이 도로 심해졌다. 유럽을 갔다 오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고 활기차게 시작을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결국 매일같이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며 이리저리 치여 살다가 4개월 만에 그만뒀다.
난 참 일복이 넘쳐나는 사람이다. (어디서 뭘 하든 일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몇 개월 뒤에 조향 학원 원장님이 비즈니스 영역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보기는 했지만 몇 가지 사건들로 충격을 받고 3개월 만에 빠른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뤄낸 것이 뭐가 있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민망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민망함을 좋게 포장하기 위해 '인생은 한 번뿐, 제2의 인생설계를 위해 용기 내서 회사를 그만두고 청춘을 즐겨보세요!'라고 감히 말할 순 없다. (남의 인생 망치는 돌아이라고 욕먹기 좋기도 하고...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다.)
퇴사 후 떠난 유럽여행은 한마디로 말하면 '좋았다'이고, 몇 마디 더 얹으면 '좋았지만 좀 무모한 감도 있었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래도 용기 내서 다녀온 덕분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계획하던 것들을 현실로 만드는 삶의 뿌듯함이 뭔지를 알게 됐다.
너무도 달콤했다.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달콤하다.
그 달콤함을 누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얻어냈다는 뿌듯함이 있다.
여행을 통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인생 최고의 보상이었다.
비록 작년 초부터 국제정세가 이렇게 되면서 생각했던 계획들을 많이 수정됐다. (상당 부분 욕심을 내려놓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크긴 하다.) 많이 우회해서 가는 듯싶지만 앞으로의 삶을 위해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N 년 전 그때, 달콤했던 퇴사, 그리고 평생 기억될 추억.
여기서 진짜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