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한인 민박에서 생긴 일

같은 언어 쓰는 사람끼리 부리는 자존심

by 에밀리H


해외에 있을 때 조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1. 누구와 함께 하는지

2. 누구를 만나게 될지


우선적으로 낯선 외국인을 항시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심해야 한다.


결론은 누구든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


이건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각자의 이유만 가지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우 말이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내가 파리, 바르셀로나, 런던에서 한인 민박으로 숙소를 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파리는 갭이어 프로그램 구성에 따른 선택이었다면 바르셀로나와 런던은 순전히 나의 의지로 결정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한인 민박집에서는 아침을 제공해 줬으며, (파리에서 지낸 한인 민박집에서는 아침 & 저녁을 한식으로 제공해 주셨다.) 침구류 교체나 청소를 꼼꼼하게 잘해주셔서 배드 버그 문제도 거의 없었다.


3-3.5성급 호텔이라도 갈까 생각을 했지만 높은 유럽 물가 때문에 숙소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해졌다. 더욱이 호텔 리뷰를 읽어보면 형편없고 돈 아깝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아예 생각을 바꿔서 외국인 친구를 만들기 위해 호스텔 같은 곳을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다른 경험자의 말에 의하면 도난당하는 일은 기본이고 같은 방 다른 투숙객이 원나잇 장소로 난입하는 문제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낯설더라도 같은 문화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모인 한인민박이 여러모로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쥐베흐니_ 멋진 자연을 감상하며 마음을 다스려보아요.


바르셀로나 한인 민박집에서는 운 좋게 큰 방을 혼자 사용했었고, 내가 제일 늦게 씻거나 일찍 일어나서 씻었기 때문에 화장실 사용도 겹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아침 먹은 적이 한 번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파리와 런던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파리 민박집에서 머물렀던 도미토리 룸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수 없게 빽빽이 이층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 있는 모든 주택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누군가 샤워를 하고 들어오면 방 안 공기가 금방 눅눅해졌다. 더욱이 많게는 1층, 2층 그리고 다락에 머물고 있는 서른 명의 가까운 사람들이 화장실 2개, 샤워실 2개, 세면대 2개를 가지고 눈치게임을 해야만 해서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선택하면서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지만, 솔직하게 적혀있지 않았던 숙소 컨디션 때문에 점차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파리에서 묵은 민박집이 불편하다고 느낀 이유는 따로 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민박집 사장님과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면서부터였다.


정확하게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파리에 오기 전부터 갭퍼들 & 장기 투숙객들과 민박 사장님 사이가 미묘하게 안 좋았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민박집 사장님 입장에서 우리가 늦게까지 시끄럽게 술을 마시고 텃세를 부리면서 분위기를 흐린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다. 이유야 뭐가 됐든 사장님 입장에서는 갭퍼를 포함한 장기 투숙객들이 통제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좀 더 잔소리를 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 간의 갈등이 쌓여서 새로 온 투숙객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루는 다른 갭퍼들과 장기 숙박객들이 한꺼번에 각자의 불금을 즐기기 위해 외출을 나간 적이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민박집에 남아 다른 숙박객들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그때 사장님도 다른 갭퍼들이 외출하고 나밖에 없는 걸 보고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대화에 참여하게 됐다.


나는 그날 그 자리에 참석한 것에 별 뜻이 없었다. 그저 일찍 잠들기에 심심하기도 했고, 갭퍼도 다른 투숙객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어야 했다.


테이블에는 파리에서 살고 있는 사장님 지인 1과 스페인 이비자 클럽에 가기 전 잠시 파리에 머물고 있는 사장님 지인 2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나 혼자여서 그랬는지, 초반에 쓸데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쓰레기 같은 질문에도 나름 예의 차린다고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하지만 농락 수준의 형편없는 말들을 계속 듣고 있으니 점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같이 있어준 씅오빠도 그렇고 잠시 대화에 참여했던 민시킴도 내가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서둘러 나를 빼내 줬다.


다음 날 오전 마당 쪽에서 다른 숙박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해외에서 계속 살 생각 없냐는 말과 함께 자신의 지인 1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다음에 한번 식사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순간 멍해졌다.


전혀 호의로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도대체 사장님은 나에게 무슨 의도로 이러시는 걸까? 그냥 내가 지나치게 생각이 꼬인 걸까? 다른 투숙객들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뭘까? 내가 기분 나쁘게 한 일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말하면 될 것을 이런 식으로 복수하나 싶어 기분이 나빠졌다.


그날 이후로 사장님과 되도록이면 마주치거나 대화하는 일이 없게끔 피해 다녔다. 그리고 이 사달이 난 건 사장님의 독단적인 행동에 의한 것으로 보고 더는 말 나오게끔 하고 싶지 않아서 사장님 지인 1이 민박집에 올 때면 인사하는 것 말고는 피해 다녔다.


그날 술자리에서 사장님 지인 2와 말을 튼 이후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 지인 2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투숙객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SNS 아이디를 알아낸 다음, 상습적으로 쓸데없는 사진들을 보내면서 귀찮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스텝 언니와 다른 갭퍼, 그리고 장기 투숙객들은 사장님 지인 2가 모두에게 말을 쉽게 걸지 못하도록 서로서로 벽을 쳐주고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쥐베흐니_예쁜 꽃을 보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 보아요.


이외에도 자세하게 말 못 할 일들이 많았다.


서로 방어막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불안함을 느낀 나는 도피성으로 런던 여행을 갔다 오게 된 거였다. 플랜 B였던 남프랑스 투어도 도피성 여행으로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남프랑스에 대해 아는 척하는 무리들의 참견을 듣기 싫어서 런던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머물렀던 한인 민박도 시설적인 면에서 크게 나쁠 것이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었고, 위치적으로는 주요 역과 가까워서 이동하기 편리했다. 그리고 민박집 사장님이 많은 말씀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질문을 드리면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시는 것 외에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파리 민박집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아서 투숙객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쩡A와 같은 도미토리 룸에 머물렀다. 그런데 마치 이 방이 자기만의 세상인양 혼자서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고 그동안 친해진 다른 투숙객과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 공간 안에 여러 사람이 있고, 모든 사람들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라면 따로 나가서 얘기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은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참았다.


각자 기분 좋게 여행하는 중이기도 하고, 역지사지로 나도 무심코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준 적이 있을 거라며 우선 참기로 했다. 괜한 감정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런던에서 세 번째 날 밤.


그날은 상황이 좀 심각했다. 나와 쩡A는 잘 시간이 돼서 침대에 누웠다. 스트레칭을 하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뭐가 신났는지 늦게까지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덜 듣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루만 참으면 저 사람과도 안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참 뒤에 쩡A가 심하게 코를 골기 시작하면 상황이 뒤바뀌었다. 문제는 그 사람의 태도였다. 본인이 잠들려고 하는데 쩡A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깼다면서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두운 공간에서 핸드폰 불빛을 밝혀 코 고는 사람 위치를 확인하는 거 같더니 계속 '아씨' 거렸다.


그 사람이 반복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그 불빛이 대각선에 누워있는 내 눈에 자꾸 꽂혔다.


나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우선 직접적으로 화를 내기 전에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여러 번 외쳤다. 지금 당장 싸워서 이기든 지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들을 참지 않고 내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분란을 일으키면 하루 더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쩡A만 민망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_멋진 자연과 귀여운 동물을 보며 멍을 때려보아요.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도 모르는 생리적 현상을 가지고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며 격분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더욱이 쩡A도 매번 코를 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더 주고 독방에 가거나 호텔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미토리 룸 자체가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는 공통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의 숙소에 비해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다. 다수가 모인 공간에서 어떠한 배려도 없이 멋대로 군다면 애초에 이 도미토리룸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 견디지도 못할 공간에 와서 다른 사람 기분까지 망치려 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도 참았으니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불만이 있으면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무작정 화만 내기보다 나름의 방식을 통해서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만약 그 불만사항이 서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조율해서 고쳐나가면 되는 거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번거롭지만 각자 알아서 피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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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곱씹어보니... 차라리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들과 계속 서로에 대해 착각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여하튼, 한인민박 덕에 말이 통하는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지만, 한인민박 때문에 여러 번 짜증 났었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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