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남프랑스 대신 런던_2편

I'm so curious yeah ♪♬

by 에밀리H

셋째 날


잠자리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잠을 제대로 자지는 못한 반면에 런던의 아침은 상쾌했다.


셋째 날 첫 일정은 대영박물관에 가는 일이었다. 박물관 가는 길은 뭔가 영국스러웠다. 영국에 있으니까 영국스러운 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끝없이 이어지는 주택단지와 그날의 분위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영국스러운 느낌 그 자체였다.


대영 박물관


대영박물관은 듣던 대로 크고 볼거리가 다양했다. 이건 마치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와 같은 느낌이었다.


소소한 관람 팁을 말해보면 파리 루브르 박물관처럼 보고 싶은 테마를 미리 정해놓고 오는 것이 낫다.


관람을 마칠 무렵에 우리는 생각했다. 이렇게 집중을 못하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라고 말이다. 그래서 민박집 사장님이 주신 자료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Ninniku_짬뽕 오랜만이야


웬만해서는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고르고 싶었지만, 몰타에 있을 때부터 인내력을 잃었던 터라 맵고 빨간 음식이 끌렸다. 그런데 지도 맵을 통해서 찾아봐도 자료에 나와있는 'Kyoto'라고 적힌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근처 가게 사장님이 가게 이름이 바뀌었다고 알려주셨다. ('닌니쿠'로 상호명 변경됨) 우리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형식적으로 메뉴판을 빠르게 훑어본 다음 짬뽕을 시켰다. 짬뽕 안에 있던 면은 짬뽕면이 아닌 라면이었다. 그래도 빨간 국물에 채소가 다양하게 들어가 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Baker Street Station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는 셜록홈스 박물관에 가기 위해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Baker Street 역에서 내렸다.


여기는 자율적으로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인원을 채워서 입장시키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는 방식이었다. 내가 줄 서고 있을 때 쩡A가 상점에 들어가서 입장권을 사 왔다.


쩡A가 줄 맨 앞에서 멈칫하다 말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알고 보니 박물관 입구에 정복을 입은 직원이 서 계시는데, 다들 그 분과 포토타임을 가진 것을 보고 쩡A도 동참하고 싶어서 고민 중이었던 거였다.(결국에는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난 다음에 허락받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output_250879654.jpg?type=w773
20180603_140029_417.jpg?type=w773
(좌) 셜록홈스 박물관 앞에서 대기하는 중 / (우) 내부에 있는 마네킹 잔인해 잔인해


쩡A가 사 온 티켓은 일반적인 티켓 모양이 아니라 설명이 적혀있는 팸플릿 형태였다.


221b Baker Street London MW1 6XE


그동안 각종 탐정 애니와 추리소설로 다져온 감각을 동원하여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좁은 공간에 열댓 명이 함께 움직이니 설명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파헤쳐가며 관람했다. 이전까지 향수 말고는 덕질이 뭔지 잘 몰랐는데 셜록 홈스 덕분에 또 다른 덕질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됐다.


건물에서 나와 조금 걷는데 날이 너무 건조하고 더웠다. 노팅힐을 갈까 다른 곳을 갈까 고민하다가 우선 갈증을 해소하고자 음료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물 500ml를 사서 체내 수분을 공급해 준 다음 고민 끝에 세인트 폴 대성당을 향해 걸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 (St. Paul's Church)


안에서는 예배가 진행 중이었다. 성도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뒤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만 앉을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성전에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역시나 봉헌을 드리고 나서 의자에 앉아 잠을 잤다. 계속 자는 것이 민망해서 잠깐씩 눈을 떠서 주변 동태를 살피고 있는데, 때마침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떼 지어 들어왔다. 한껏 차려입은 듯한 투피스 신사 숙녀들이 밀려들어오는데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배가 끝나갈 때쯤, 쩡A가 내셔널 갤러리를 가볼 거냐고 물었다. 시간을 보니 입장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교회를 뒤로 한 채 서둘러 걸어갔으나 갤러리는 이미 입장 마감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상점에 들어가 기념이 될만한 150피스 퍼즐을 2종만 사서 서둘러 나왔다.


런던 브릿지 (London Bridge)


이상하게 런던에서는 걷는 일이 많았다. 언더그라운드가 잘 되어 있기는 했지만 쩡A와 둘이 함께 있어서 그런지 최대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탈것을 타지 않고 움직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 런던 브리지 전망대는 운영하지 않아서 주변 벤치에 앉아 1시간 동안 노닥거리고 있었다.


우리만의 티타임


그런데 아직까지 못해본 것이 문뜩 떠올랐다.


그건 바로 애프터눈 티를 한 번도 즐겨보지 못했다는 거였다. 포털 사이트나 여행정보 앱 등에서 런던 애프터눈 티를 파는 곳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쩡A와 겨우 찾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홍차를 주문했다. 스콘이 있냐고 물었지만 매진됐다고 해서 치즈 조각 케이크와 견과류가 잔뜩 들어간 파이를 시켰다. 티팟에 홍차가 우려 지고 있었고 따로 준 유리잔에 따라 마셨다. 많이 어설펐지만 이렇게라도 티 타임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 쉬다가 너무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간식(이라 적고 야식이라고 해야 할)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잠을 잤다.


넷째 날


벌써 파리로 돌아가는 날이 됐다. 계란 한 판 나이를 기념하며 남프랑스 대신 선택한 런던행이었는데 뿌듯함을 느낄 정도로 재밌었다.


전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세븐 시스터즈 투어랑 백화점 또는 비스터 빌리지 쇼핑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됐다. 그중에서 비스터 빌리지가 어떤 곳인지 급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스터 빌리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파주 아울렛 같은 곳이라고 했다. 파리는 백화점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구경조차도 힘든데, 여기라면 괜찮은 제품이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은 쩡A와 헤어져서 각자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는 비스터 빌리지 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1. 셔틀버스 → 가장 편하기는 하지만 오고 가는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음.

2. 한인 택시 → 이용 금액도 상당히 비싼 편이고 길바닥에 돈 뿌리고 오는 거나 다름없음.

3. 기차를 타고 갔다 온다 → 가장 좋아 보인다. 구미가 당긴다.


이렇게 알고리즘을 차례차례 돌려보니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다. 민박집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난 다음 짐은 숙소에 맡아달라 했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베이커가 역에 내려서 런던 메릴본 역으로 걸어갔다. 역사 내에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한눈에 시스템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잔잔한 글씨가 많아서 그냥 사람이 있는 매표소로 갔다.


메릴본 기차역 (London Marylebone Station)


직원분한테 비스터 빌리지 갈 거라고 말하니 왕복으로 끊어주면 되냐고 물어보셨다. 그동안 나 같은 사람을 많이 겪어보셔서 그랬는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얼마 안 있다가 플랫폼에 기차가 도착했다. 이 기차는 지정 좌석제가 아니어서 그냥 아무 곳에 가서 앉으면 그곳이 내 자리가 됐다.


비스터 빌리지 (Bicester Village)


비스터 빌리지 역에 도착해서 내리니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래야 영국이지.


역사와 연결 통로로 들어가면 직원분들이 지도가 있는 팸플릿을 나눠줬다. 나는 잽싸게 받아 들고 관심 있는 매장을 찾아 돌아다녔다.


중국 부호들은 라빠예뜨 백화점 근처에서도 엄청 많았는데, 여기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B사 브랜드 코트를 사러 매장에 들어갔는데 특정 중국인들과 자꾸 동선이 겹쳤다. 그래서 구매를 포기하고 다른 브랜드 매장에 갔다. S사 브랜드 매장은 비교적 차분했다. 하지만 내가 언니한테 참고 사진 보내주려고 핸드폰을 들이미니 직원 두 명이 간 떨어지게 "마담!!!!"이라고 크게 외쳤다.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호통치는 소리를 들으니 급 흥미를 잃게 됐다.


메종 베르토 (Maison Bertaux)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들어갔는데, 때마침 쩡A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는 시간에 메종 베르토 카페를 가자는 제안이었다.


메종 베르토 근처 길가에서 만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받기 위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님은 뭐 때문인 건지 화가 잔뜩 나 계셨다. 우리는 각각 홍차 한잔씩 시키고 전날에 못 먹은 스콘과 겉에 초콜릿이 발라진 빵을 주문한 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면 사장님이 직접 차와 디저트를 올려다 주셨다. 쩡A는 홍차에 우유를 넣어 밀크티로 마셨고 나는 홍차 그대로의 맛을 느끼고 있었다. 엄청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맛있었다. 이날도 우리만의 티타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내가 비스터 빌리지에 가있는 동안 쩡A는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거기서 사온 동그란 초콜릿이 담긴 조그마한 상자를 선물로 줬다. 너무도 큰 감동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차(tea)와 꽃차를 배우면서 생각해 보니 왜 이때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에 갈 생각을 못했는지 후회스러웠다. (프랑스 마리아쥬 프레르 Mariage Freres 브랜드도 마찬가지... ) 물론 한국에도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이 있지만 현지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output_3654958034.jpg?type=w773 내셔널 갤러리에서 산 150 피스 퍼즐


어쨌든 그날 쩡A는 뮤지컬을 보러 갔고, 나는 민박집에 들러서 가방을 찾아 간 다음 역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오이스터 카드 보증금을 돌려받고 유로스타 앱을 켜서 두꺼운 종이로 나오는 실물 티켓을 발권했다. 파리 북역 보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수화물 검사를 겨우 마치고 나와 탑승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로스타를 타고 달려 파리 북역에 가까워질 때쯤 손목시계를 찬 팔을 들어 올려 1시간을 더해줬다.


파리 북역에 도착해서 민박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메트로 역으로 걸었다. 나비고 충전을 위해 기계 앞으로 갔는데 현금 가능한 기계는 없고 소지하고 있는 카드 두 개를 넣어봤는데 먹통이었다. 그래서 직원한테 가서 돈을 주고 충전을 한 다음 겨우 메트로를 타고 한 밤중에 숙소에 도착했다.




여전히 남프랑스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런던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전혀 후회가 남지 않았다. 쩡A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다. 다만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면 도장받으러 초등학생들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길래 빨리 포기했던 것이 약간의 후회로 남아 있다. 그래도 파리보다 깔끔한 도시 환경이 꽤나 괜찮았다.


다음에 홍차 투어 핑계 삼아 또 방문해보고 싶다.


sticker sticker


keyword
이전 12화25. 남프랑스 대신 런던_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