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새로움의 이면

늘 짜릿하지만은 않아

by 에밀리H

흔히들 이런 얘기를 한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맞다.


어떠한 근사한 명언보다도 이 한 줄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다니면 쓸데없는 욕심은 안 부리게 된다.


하지만 나는 비교적 빨리 가까운 사람의 아픔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크게 데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좁게 살았다. 씩씩하게 사는 척은 했지만 생각보다 용감하게 도전하는 일은 없었고 모든 일에 적극적 인척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소극적으로 굴었다. 나는 그만큼 쫄보였다.


희한했다.


나는 살고 있던 동네가 너무 좋으면서도 싫었다.


서울인데도 좁은 동네이다 보니 초, 중, 고등학교가 1개씩밖에 없었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 이상 유치원 때부터 학창 시절을 다 같이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같이 얘기해본 적은 없어도 이름만 대면 누군지 다 알았고, 동네에 잠깐만 돌아다녀도 인사하기 바빴다. 그만큼 발 없는 말이 천리도 잘 갔고, 소문이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다양하게 틀어지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저 이 좁아터진 동네에서 얘네들이랑 같이 있으면 내 인생만 더 복잡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는 어쩔 수 없이 동네에 있는 학교로 배정받았다고 해도, 고등학교 때는 나름 도망갈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 거라 판단하고 엄마한테 은근슬쩍 얘기를 했다.


외갓집 쪽으로 주소이전을 해달라고.


그러면 완전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것은 아니지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교복도 동네 고등학교보다 훨씬 예쁘고 여자들만 있으면 더욱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언니가 여상을 선택하면서 입는 교복도 예뻐 보였고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 모습이 뭔가 큰 환상을 자아냈을 때여서 그런지 맹목적으로 동경했다.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 그대로 진학하면 친한 친구들 외에는 3년을 더 지겹게 복작거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엄마의 발병 때문이었다. 엄마는 자주 수혈을 받아야만 했어서 헌혈증이 많이 필요했다. 그걸 알았던 담임 선생님이 도움을 주고자 전교생을 대상으로 헌혈증을 모아서 주셨다. 하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그때 상황이 너무도 부끄럽고 싫었다. 도움을 주셨다는 마음은 너무도 감사했지만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현실만 봤을 때는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 이 마음의 큰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동네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답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하늘에 계신 내가 믿는 신은 나의 간절함을 듣기는 하셨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끌어 주셨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 이미 주소이전을 마쳐놔야지만 2학기 때 고등학교 배정에 차질 없이 진행이 되는 거였기 때문에 나의 탈(脫) 동네 소망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였다.


그러나 엄마의 암 진단으로 인해 나는 언니와 같은 상고를 선택해서 진학을 하게 됐다. 그때 당시에 특성화 고등학교 붐이 일면서 상고, 공고 등의 학교들이 이미지를 대변신하는 시기였다. 더욱이 모든 학생들이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교가 아닌 전문계 특별전형을 통해서 대학 진학까지 목표를 두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고등학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전문적으로 취업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소원대로 친구들과 다른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고 상고에 입학했다. 신기했다. 서울 각 지역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사립이다 보니 선생님들이 때맞춰서 전근 가시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언니를 통해서 알게 된 선생님들을 실제로 뵐 수 있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문제가 생겼지만, 이전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고민이어서 재밌었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쫄보 같은 마음이 자주 튀어나왔고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간절히 바랐고, 하늘에 계신 신이 소원을 이루어주셨는데 나는 그 속에서 힘들다며 징징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건강을 애틋하게 생각했다면, 부모님의 건강 회복에 대해서 기도할 걸.


탈(脫) 동네 소원을 이뤄준 빌미로 엄마를 데려간 거 같아 막 반항심이 일었다.


그래서 남들과의 비교로 학교 성적이 엉망진창이 되면서 대입에 실패를 하고 차라리 여대에 가서 편입을 하겠다며 고생길을 택했다.


그때마다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너무 나 자신만 탓하면 다시 극복하기 힘들 거 같아서 대상을 정해놓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만큼 소원은 욕망이 되어 나를 옥죄어 왔고, 나는 그 어두운 속내를 시커먼 말들로 주변 사람들을 잔뜩 괴롭히고 있었다. 왜 나는 간절하게 빌지 않으면 수월하게 얻는 것이 없는 건지, 남들은 평범하게 행동해도 이뤄내는 거 같은데 나는 몇 배 이상으로 노력해야지만 코딱지만 한 것을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건지 불만이 쌓여만 갔다.


나의 이러한 피해의식 덕분에 이뤄낼 수 있는 바람과 욕망을 구분해내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 거 같으면 쫄보 심보로 도망갈 준비부터 했다. 아니 진짜 도망쳤다. 인생 뜻대로 되는 거 없다지만 너무 지쳐만 갔다. 건방지게 살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신의 큰 뜻이 있는 거겠지만 그냥 뜻대로 안 될 거 같으면 새로움을 온몸으로 막아서라도 거부하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는 것에 많은 기대감으로 살아가지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힘에 부쳐 살기보다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돼먹은 생각까지 여러 번 해봤다.


인생의 어려움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새로운 것이 좋은 거라고 그렇게 신선한 느낌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익숙한 것에 대한 안정감을 더 찾아가게 됐다. 예전에는 극도로 싫어했던 이미 수도 없이 돌려 본 영화나 드라마를 또다시 돌려보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강해졌다. 새로운 것을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용기와 에너지를 가져야만 '도전'을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처럼 울지는 않지만 쉽게 우울해지는 날이 많았고, 다시 마음을 먹고 움직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슬프지만 어차피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바라는 게 많을수록 나에게 도움 되는 것이 없으니 그냥 되는대로 만족해야 하는 건지 늘 고민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라고 원해야 하는 건지 그냥 주어진 인생이라 생각하고 물 흐르듯 살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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