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love yourself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는 건 나의 모든 것에 한계를 정해놓는 일과 마찬가지다.
내가 남들과 비교했을 때 '이러한' 조건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결과만 하더라도 감지덕지라는 위안을 삼게 된다.
이러한 위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비교와 위로를 교묘하게 섞고 있을 때면 진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잘난 결과를 가진 사람을 동일선상에서 놓으면 안 된다며 극도로 예민해지고, 세상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느 누구도 나한테 직접적으로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세상에 비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교를 통한 긍정적인 효과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진 사람한테나 가능한 일이다.
비교를 당하거나 혹은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는 일은 굉장히 슬프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깊숙이 파고들고 들쑤실 때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엄마의 죽음 이후 마음속으로 비교하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나 학업과 관련해서 과거의 나와 비교했고, 더 이상은 엄마의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에 깊이 분노했다.
엄마는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할아버지의 무관심으로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엄마는 고졸 학력을 콤플렉스로 여겼기 때문에 두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로 자녀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물론 여기에는 아빠의 고지식한 자녀교육 철학도 한 몫했다. 어쨌든 부모님 덕분에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완벽하지 않지만 나름 괜찮은 성적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발병과 함께 나의 삶의 모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학생 신분으로서 열심히 공부해봤자 부모님 건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 두 분 모두가 아프시자 나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치료 이후에 병의 차도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의지가 점차 사라졌다. 고등학생 때 진학반을 선택한 것도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선택이었을 뿐이지 나는 이후의 삶에 대해서 별다른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그저 맹목적이었다.
그래도 내가 최소한의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안 듣고 살아왔던 이유도 있었고, 학생이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성적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넉넉하게 마지노선을 잡고 그 기준에 벗어나지 않는 선까지만 공부를 했다.
그래서 성적이 엉망진창이었다.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 때 월드컵으로 평균점수를 8점을 날릴 때보다 성적표가 더 지저분했다. 차라리 그때는 장래에 축구선수와 결혼할 거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있었지 고등학생 때는 별다른 의지도 없이 기본만 겨우 지켜내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됐다.
엄마가 아프니까.
아빠도 아프니까.
나는 비교적 불쌍하니까.
비교하는 마음은 이렇게나 쉽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연민의 맛은 최악이다.
고3 현역 때 대입 지원 전략을 잘못 세워서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재수생활을 하게 됐다.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하필 대학생 등교시간과 맞물리면서 몇 명의 친구들과 마주쳤다. 어디 가냐는 친구의 물음에 "수업 들으러"라고 얘기는 했지만 그때 기분은 나라를 잃은 듯 너무도 처참했다.
그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재수한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대학에 합격한 것과 더불어 나와 달리 인파를 뚫고 전동차에 탑승한 채 질문하는 친구의 모습이 비교적 좋아 보였던 건지 기억은 잘 안 난다.
그냥 그 순간 무척 슬퍼졌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속에서는 비교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쟤는 엄마와 아빠의 무한한 관심과 케어 속에서 한 번에 대학에 붙을 수 있었겠지. 난 지금 아빠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겨우 합격을 했지만 1학년 때 아빠의 학비 지원을 제외하고는 학자금 대출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빠한테 교통/통신비를 제외한 한 학기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학기에는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돈을 벌었다. 그렇게 한 학기 용돈을 벌었지만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서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고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비교적 적은 시간으로 고액을 벌 수 있는'과외'알바를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과외받을 학생을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겨우 학교 내 커뮤니티를 통해서 과외 알바 사이트를 알아냈고, 기본적인 정보를 등록한 후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한 명한테 연락이 왔지만 헛수고였다. 그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과외 알바 많이 한다는데 나한테는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한탄했다. 그렇게 세상 불공평하다며 열을 내고 있는 와중에 과외 알바를 세 개나 하는 동기 한 명은 엄마를 통해서 과외 자리가 주선이 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슬퍼졌다.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를 간 학생이 아닌 이상 과외 알바를 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거였구나 싶었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가고 엄마가 구해다 주는 여러 개의 과외 알바로 풍족하게 살았을 텐데.'
지지리도 궁상이었다.
최대한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남들 또는 나의 과거와 비교하면서 상황을 비관하기 바빴다. 나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을 뿐이고, 게으르고 안일한 생각이 가득한 세상 속에 나 자신을 가둬버렸다. 만약 지금의 정신상태를 가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 없는 삶에 취해있기보다 좀 더 나 자신을 위한 삶에 집중하며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 조금은 덜 비교하고, 조금은 덜 슬퍼하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