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낙인

찍혀 사는 인생

by 에밀리H

엄마가 안계신다는 사실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큰 일로 다가올것처럼 여기는 것은 지나친 슬픔만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엄마가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니, 그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엄청 피해 다녔다.


사실 스무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모든 행동의 근거가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거나 어리숙하게 행동하면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저렇게 행동하는 구나라고 생각할까봐 이러한 반응들을 가장 적대시했다. 그래서 세상 갖가지의 정보를 쫓아다녔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꾼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성향은 나에 대한 전부를 다 얘기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작 깊은 내면에 있는 얘기는 잘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많은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얘기를 할 때면, 섬세한 사람들은 평소 내가 은연중에 흘린 말을 통해서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해줬고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놀라 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내가 이렇게 낙인찍히는 것에 대해서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나의 행동을 보고는 그것을 '엄마가 없는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평가할 때 오로지 나만이 평가 대상에 올라야만 했다. 그 도마 위에는 나만 올라야 했고 가족들은 작은 솜털 조차도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안 그러면 어느 누구도 원치 않았고 선택하지 않았던 엄마의 죽음이 나의 지난 노력했던 시간들을 무참히 짓밟아 놓을 것만 같았다.


한 번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한 조직에 들어가 일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부서 안에 2개의 팀 중 팀장님 나 포함 몇 명이 소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워낙에 다양한 주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여러 개 다뤄야 했기 때문에 팀원 간의 소통이 중요했다. 프로젝트들이 대부분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많았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어쩌다 나온 이야기의 주제는 '부모님'이었고, 나는 엄마가 없고 아빠와 언니랑만 살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크게 관심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을 때 분위기를 이상하게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더불어서 꼭 그런 사람들이 유난을 떤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서 괜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뭘 챙겨주려 하고 나를 위하는 척을 했다. 내가 '척 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호의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내가 3개월 시한부 조직생활을 끝으로 그만둘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상사 중 한 명이 계속 나를 붙잡았다. 사실 일을 그만두는 거 말고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어서 몇 개월 더 일하라는 제안을 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강도 높은 업무와 주말 출근으로 건강상태가 안좋아졌고, 얼마 받지도 못하는 인턴 월급에서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많을 거 같아 그만두겠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핵심을 건드리는 말들로 할퀴었다.


하루는 야근을 하고 상사와 같이 퇴근을 했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별것도 아닌 주제에서 갑자기 흐름이 엄마의 죽음으로 끊어졌다. 나는 딱 그 한마디로 인해 순간 사고가 정지됐다.


"넌 아픔이 있는 애잖아."


그 이후로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나는 계속 저 한마디를 되뇌었다.


지금은 저 얘기가 왜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저런 말을 뱉어내는 사람의 인성을 탓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웃으면서 넘겨야 하는 건지 혼란스 워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날 그렇게 집에 와서도 계속 저 한마디 때문에 마음 불편하게 있었다. 그러다 점점 생각이 커져가면서 그동안 상사의 모든 행동들까지 곱씹어보았다.


나의 속 얘기를 한 대가로 그 사람에게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사람은 나를 '엄마 없이 자란 애'로 동정하고 있었으며, 그걸 빌미로 삼아서 필요에 의해 나의 감정을 긁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 먼저 남 탓을 하게 되지만, 그 시간은 잠깐일 뿐이고 점점 자책을 하게 된다.


나 스스로가 낙인찍힐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속 시원히 얘기하면 괜히 속사정을 감추거나 거짓말로 덮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시에는 상황이 편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점차 나를 향한 배려가 부담스러워지고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 오히려 비수가 되어 날아올 때는 엄청난 후회가 밀려오게 된다.


괜히 말했어...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런 얘기를 들어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을 할 만큼 여유로움을 가지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낙인찍히는 것에서 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


결코 성숙해지지 않았다.


엄마가 없다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느낄 경우 매번 속이 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우리나라는 가족의 형태를 엄청 중요시한다. 부모님 두 분이 헤어지지 않았거나, 두 분 다 살아계셔야지만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이론대로라면 나는 일반적이지 않게 된다.


우리는 낯선 누군가를 만날 때는 가정환경과 같은 호구조사를 통해서 사람이 됨됨이를 따져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로지 나의 평가가 끝나기 전까지는 가족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엄마가 진단을 받은 그 시점부터 최선을 다했고, 또 열심히 서로를 돌보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하지만 현재 상황만 비춰보면 '엄마는 지병이 있었고, 나의 청소년 시절에 아프다 돌아가셨다.'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그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현재 상태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고, 낙인은 지금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평가받고 찍혀버리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길고 긴 과정에 대해서 관심은 없었고, 슬프고도 기나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 각자의 삶이 버겁고 힘들어 미치겠는데 남의 슬픈 얘기 다 들어줄 의무가 없으니까.


아... 동물들이 등급 매겨질 때 이런 기분인 걸까.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찬란했던 과거 시절의 일화가 많다. 기억력이 좋아서 그 모든 것이 기억나는 게 아니고, 기억하고 싶은 것이 그런 이야기들 뿐이어서,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얘기만 꺼내게 됐다.


남들이 나라는 고기를 씹을 때, 비교적 좋은 육질의 씹고 뜯고 즐길거리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언제까지 이러한 낙인으로부터 하여금 나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여태껏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마음먹었다면 그게 정답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다. 솔직히 언젠가는 끊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쉽게 용기가 안 난다.


단지 그것뿐이다.


스스로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매일같이 난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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