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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Nov 16. 2021

세상 모든 눈치의 집결지인 그곳

취뽀는 하고 싶은데 출근하기는 싫어

Q. 입사지원동기?

A. 학생 때까지는 돈 먹는 기계였는데, 이제는 직장을 구해서 돈 버는 기계가 되려고요.


Q. 입사 후 포부?

A. 시키는 일 열심히 해야죠. 뭐... 다른 수가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면접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면접에서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들을 때면


'뽑기 싫으면 뽑지 말던가. 왜 사람을 면접에 불러놓고 같잖은 질문으로 기분 잡치게 하는 거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절실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정성껏 자소서를 작성했지만 전문가 첨삭이 시작됨과 동시에 빨간색 줄이 한가득 그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가 수고 같아 보이지 않게 돼요. 며칠에 걸쳐서 올바른 예시들을 참고해 작성한 건데도 불구하고 곳곳에 빨간 줄이 그어진 걸 보면서 마음이 어찌나 쓰리던지...


저의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자존감이 와장창 무너지더라고요.


그래도 자소서 내용보다 이력서에 적힌 활동들을 중심으로 본다는 말에 위안을 삼아 입사지원 버튼을 누르고 서류합격의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시범 삼아 지원한 한두 곳에서만 겨우 연락이 올뿐, 간절히 원하는 곳에서는 '안타깝게도-'란 말과 함께 불합격됐다는 소식뿐이었어요.


내가 간절히 원하는 회사에서 합격 소식이 없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가 없어요.


하지만 취준생들에게 슬퍼할 시간조차 사치에요. 얼른 속상한 마음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음 단계를 모색해야만 합니다.


모든 취준생들이 고군분투하는 상황 속에서 면접의 기회를 얻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면서 셀프 칭찬과 함께 면접 준비에 박차를 가해요. 준비해 간 대답을 막힘없이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도 눈치껏 성실히 대답하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연습해요.


드디어 면접날.


면접은 회사 건물을 들어갈 때부터 시작하는 거라길래 낯설지만 건물 경비원 아저씨에게 당찬 인사를 해봅니다. 그리고 뒤이어 인사 담당자와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면접 대기실로 들어가게 됩니다. 초반에는 면접관분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점차 면접이 진행되면서 생각했던 인재가 아니다 싶으면 정 떼려는 듯 기분 나쁜 질문으로 멀리 보내 버립니다.


"땡땡 씨는 나이가 꽤 있는 편인데, 본인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상사로 있는 회사에 다닐 수 있으세요?"


"땡땡 씨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그냥 하기 싫어서 너한테 떠넘기는) 일들을 처리해줬으면 하는데 잘할 자신 있어요? 안 그러면 우리는 땡땡 씨를 뽑을 이유가 없는데."


...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또각 구두를 신은 탓에 발과 종아리는 퉁퉁 부어있어요. 그런데도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혹시라도 면접 때 잘못 말한 게 있을까 봐 기억을 곱씹으면서 전전긍긍하기 시작해요.


발이 너덜 해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에요.


뭔가 허탈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오랜만에 SNS를 열어봤는데, 피드에는 온통 친구들 대기업 합격 소식과 이를 축하하는 댓글들로 도배되어 있어요.


왜 신은 저 친구에게만 좋은 기회를 쉽게 준 거 같고 나는 이렇게 힘든데도 거들떠보지 않는 걸까요?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렇게 핸드폰 화면을 꺼버리고 생각에 잠겨요.


나는 이런 글을 올리지 못한다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지만 친구에게 축하는 못해줄망정 쪼잔하게 질투하는 마음을 가졌던 자신을 생각하면서 금방 눈물이 차올라요.


취준생들의 마음이 너덜거리는 이유는 아마 노력한 만큼 남들에게 보여줄 게 없다는 현실 때문이겠죠?


그래도 운 좋게 한 곳을 합격하고 앞으로 입을 오피스룩을 대거로 주문합니다.


취뽀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고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OJT부터 시작해서 여기 부서 끌려다니면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입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엿보고 싶다면서 대뜸 경쟁 PT 미션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건 업무의 일부일 뿐이고 다른 업무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요.


일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많다는 것을 제대로 인증해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이 생각과 너무 다르기도 하고 일을 알려주는 사수조차 사내에서 겉도는 거 같아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긴가민가할 때가 있었어요.


그냥 입사와 동시에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겨나요.


상사가 하는 지시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테스트해 보는 거 같수습기간 3개월 끝나면 자연스럽게 자르려고 시작부터 분위기를 잡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라면서 서로 으쌰 으쌰 하면서 잘해줄 것처럼 말해놓고 매번 시큰둥한 반응에 괜한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와... 만약에 가족이 이랬으면 바로 각 세우고 싸웠을 텐데...


내가 회사에서 이러려고 수십 번 이력서와 자소서를 고쳐가면서 지원을 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다른지 모르겠다며 냉담한 현실 벽에 대해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친구들끼리 회사 관련된 고민을 나누더라도 각자의 입장차만 있을 뿐 엄청나게 공감이 되거나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아요.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통장에 있다는 사실만이 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뿐입니다.


그래서 월급이라 안 하고 회사에서 눈치 밥 실컷 먹어준 대가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근무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야 퇴직금이 쌓이고 명절 상여, 휴가비 그리고 이외 축하/위로금의 복리 후생비를 제대로 챙겨 받을 수 있으니까 이런 복리후생만 바라보면서 버틸 힘을 만들어내는 게 직장생활의 최선이라고 여기게 됐어요.


옛날처럼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도 없고 언제 회사 사정이 악화돼서 잘리거나 이직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하루살이 심정으로 버텨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거 같아요.


그런데...


그냥 버티고 또 버티자...


이런 존버 정신만이 내가 살아갈 길이라고 느끼는 순간부터 우울해지는 건...


저만 그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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