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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Nov 16. 2021

직장인 판타지

이상적인 것 투성이인 근로계약서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드라마나 영화로 배워서 그런 건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어봤지만 현실적인 반응만 튀어나오는 것이 회사였던 거 같아요.


대부분 입사하면 근로계약서를 꼼꼼하게 훑어보고 사인을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요. 사측에서 서류상으로 제시한 것들이 앞으로 나의 회사생활에 전반이 되기 때문에 사이트 회원가입 정보 제공 동의 약관처럼 대충 보고 넘기면 안 돼요.


다른 부분은 제쳐두더라도 근무형태가 어떻게 되는지, 구두상으로 말했던 연봉에서 월급 계산이 잘 됐는지, 주 몇 시간 일을 하며, 월급은 어떻게 지급이 되는지 등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더라고요. 


그래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한 상태로 지내게 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은 눈치껏 해야 합니다.


계약서에 적힌 근무 시간에 맞게 일할 거라 마음먹어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잖아요?


때에 따라서 주말 출근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수당 책정도 안되는데 야근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심지어는 하루 종일 외근에 미팅, 회의에만 끌려다녀서 정규 근무시간에 본업무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날 끝내기로 한 업무는 야근을 해서라도 끝내는 것이 옳을 때도 있어요.


물론 계약서상의 내용을 원칙 삼아 칼퇴를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냥 남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가장 현명한 방식이더라고요.


아마 입사하기 전까지는 신입사원의 반짝이는 두뇌로 신박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모두가 함께 으쌰 으쌰 화기애애하게 일하는 상상을 했겠지만 하루만 일해보면 그건 정말 꿈같은 얘기라는 걸 깨달았을 거예요. 그동안 직장 생활의 이론적인 부분만 알고 있었다면 입사 이후에는 전쟁터와 맞먹는 실전을 경험하게 되는데,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돼요.


계약서에는 나와 관련된 정보와 명시되어 있는 계약기간 동안에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사항들이 적혀있잖아요?


하지만 거기에는 회식, 상사&동료들과의 감정적인 갈등, 탕비실 정돈 & 비품관리 등의 작고 소중한 일을 어떻게 할 건지는 나와있지 않아요. 


그리고 더한 건 따로 있어요. 


만약 동료와 사이가 틀어진 경우, 학창 시절과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이 중제는 해줘요. 그런데 감정의 골을 푸는 건 당사자들 간 의지의 차이예요. 내가 직접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아가지 않는 이상 초, 중, 고등학교에서처럼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경우는 전혀 없어요. 어디까지나 나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일을 하고 그만큼의 돈을 받아갈 뿐입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로 인해 생기는 감정싸움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해요. 그래서 누군가와의 상황을 너무 감성적으로 몰고 가도 안되고 이성만 가지고 따지고 들어서도 안 돼요.


물론 동료들끼리 싸우다가 잘 풀린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어떻게 보면 개인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한 전쟁터라 할 수 있어요.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 실시간으로 소리 없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어요. 그냥 보면 회사를 위하는 거 같고 이익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거 같지만 깊게 다지고 보면 결국 '나'를 위한 발악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가끔씩 회사에 헌신하는 분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라'라고 말하지만, 그건 본인이 좋아서 일을 하는 오너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마음가짐이라고 느껴져요.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 분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의 영역을 따르기보다 '지금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따르는데 어떻게 매번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요?...


내 자소서에 등장하는 나의 모습은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고, 근로계약서에 나오는 회사가 제시한 조건은 유토피아입니다. 


우린 그러지 못한 현실을 사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


엄청난 판타지 속 현실 자각을 하는 직장인들은 고통스러움을 매일매일 먹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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