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논란 알아?
최근에 화제였던 이슈다. 한 업체에서 행사와 관련한 게시글에 마음 깊은 사과의 의미를 담아 '심심한 사과'란 표현을 썼다. 그런데 이를 지루하고 재미없단 의미의 '심심하다'로 받아들인 다수가 발끈하며 항의한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지인들의 대화는 온라인에서 일반화된 결론으로 모아지곤 했다. '금일', '사흘' 등의 의미도 모르는 요즘 세대의 문해력 부족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 말이다. 사실 영상 미디어에 밀려 사람들의 독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진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숏폼 콘텐츠들이 대세를 이루며 영상조차도 짧은 호흡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천천히 읽고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한 글 콘텐츠가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젊은이들의 문해력이 부족하다'라는 진단에 맞추어 기다렸다는 듯 사태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닐까? 과거에 많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요즘 세대는 한자를 너무 모른다'란 성토가 문득 떠올랐다. 신세대의 감각과 행태를 선도하지 못해 고루한 걱정을 하기 쉬운 구세대가 쉽게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언어 습관 아니던가. '심심한 사과'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세태는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심심한' 이란 표현은 주로 '사과'나 '위로'와 함께 붙는 관용적 표현에 가깝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구어체로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표현을 접할 때면 단어나 구문에 담긴 '진정성' 보다는 '형식성'이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이유다. 카톡 단체방에서 누군가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 줄줄이 달리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특수한 상황에서만 쓰이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익숙해지는 관용적인 국한문 혼용어 말이다.
자주 쓰이지 않는 말들은 결국 사어(死語)가 되고, 그 자리를 보다 쉽고 편한 말들이 채우는 건 환영할 일이라 생각한다. 잘 쓴 문장이란 형식적인 완결성이나 쓴 사람의 상식 수준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읽는 이가 의미를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우리는 '심심한 사과'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좀 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이거다. 자기가 몰랐던 표현일 수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끈해버린 조급성, 글쓴이가 사과문을 장난투로 썼을 거라 단정하고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라며 비아냥 댄 태도. 이야말로 온라인 너머 대상을 향한 불신이 팽배한 이 시대의 단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심심한 사과' 논란의 핵심은 타자에 대한 신뢰의 하락, 익명성에 기댄 여과 없는 비난의 습관이라는 생각이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을 탓하기에 앞서 모든 세대가 스스로를 돌아보는게 우선 아닐까.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내가 모를 수 있음을 마음 한 켠 넉넉한 곳에 지니고 살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문해력쯤이야 크게 문제 되지 않는 편하고 재밌는 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