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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May 25. 2020

버스 정류장 앞 몇 발자국

그래도 되도록이면 먼저 기다리고 싶다.



  기다리던 버스가 저 멀리서 다가온다. 

기사님이 행여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저 이번에 내려타요' 란 눈빛과 몸짓을 뿜으며 버스에 오를 채비를 한다. 찍을 카드도 미리 꺼내어 손에 쥔다.


  앞서 정차한 버스들이 출발하지 않은 상태라 내가 탈 버스는 저만치 뒤에 멈춰 선다. 그런데 거리가 약간 애매하다. 많이 멀진 아닌데 가깝다고 하기엔 긴 버스 두 대 만큼이나 뒤쳐져 있어 멀다면 또 멀다. 앞차들이 떠나야 뒤차가 정류장까지 오겠다 싶어서 나는 잠시 더 기다리기로 한다.


  아차, 내 뒤에 있던 아주머님이 저 뒤의 버스를 향해 달음박질친다. 곧이어 배낭을 멘 아저씨도,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도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닫혀 있던 버스의 앞문과 뒷문이 스르르 열린다. 내가 탈 버스는 이렇게 정류장 푯말 한참 뒤에 멈춰 선 채로 승객을 내리고 싣는다.

  




  나 역시 결국엔 버스를 향해 걸어가며 생각한다. 굳이 이렇게 이동하지 않고도 정류장 앞에 멈춘 버스를 탈 수 있었을 텐데.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다만 이럴 때마다 끌려다니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각자의 사정들이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버스를 향해 달린 아주머님은 성격이 급하실 수 있을 거고, 배낭을 멘 아저씨는 짐이 무거워 자리에 얼른 앉고 싶었겠지.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는- 다들 뛰는데 저만 혼자 버스를 놓칠세라 쫒아갔을 수도. 그리고 혹시 모른다. 나보다 버스를 더 기다리다 마지못해 뒤따라온 사람이 있었을지도.

      




  어쨌든 버스 정류장에서는 자주 겪는 일이다. 큰 버스 한 대가 대기 승객들의 위치를 일일이 맞출 수 없는 노릇이다 보니, 처음 타는 승객에 따라 정차 위치가 정해지곤 하는 것이다. 


  저마다의 선택이리라 생각한다. 

미리 뛰어 일찌감치 버스에 오르는 사람, 느긋하게 기다리다 손짓으로 버스를 불러 세우는 사람, 혹은 나처럼 뒤늦게 뛰어가 타는 사람. 광역 버스처럼 줄지어 타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앞서 묘사한 것처럼 나는 보통 정류장에서 가만히 기다리다가 멈춰 선 버스를 좇아 움직이는 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승객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다가도, 내 앞에서 우르르 뛰어가는 이들을 볼 때면 나만 너무 느긋한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경험을 쌓는다 해도 나는 앞으로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설령 뒷사람들이 나보다 앞질러 뛰어가 버스에 먼저 오른다 해도, 몇 안 남은 빈자리를 그래서 놓친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나는 되도록이면 먼저 기다리는 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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