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걸리겠어요
사람을 염려하고, 남의 외로움과 쓸쓸함, 괴로움에 민감한 것. 이것이 다정함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점이 아닐까요.
- 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 中
쑥스러운 얘기지만 '다정다감하다'란 말을 종종 듣는 편이었다. 싫지 않은 평가였고, 그럴수록 보다 세심하게 주위 사람들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특히 남녀관계에 있어 다정함이야말로 내가 지닌 몇 안 되는 무기(?) 중에서도 강려크하다고 생각했다.
실은 들통날까 두려웠다. 친한 이들에게 때때로 퉁명스러운 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겐 시리도록 냉철할 수 있는 나로서는 '가짜 다정함'이 언제 뽀록날지 몰라서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한 불안을 감추면서까지 대체로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노력과 주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면서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말마따나 타인을 염려하고, 외로움이나 쓸쓸함, 괴로움 같은 감정에 민감한 난 분명히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무심한 사람들은 가벼이 여기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나였다.
다만 나의 다정함은 간혹 지나치거나 모자랐을 뿐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일정한 다정함을 꾸준히 유지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 하다 보니 가끔 엇박자를 냈다고나 할까. 때로는 상대가 바라지도 않은 다정함을 베풀어 놓고는 생색을 낸다거나, 상대가 바란 다정함에는 무심하면서 쿨한 척하는 등의 행동은 가족, 친구, 연인 모두를 당황시킬 수 있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아직은 '다정한 사람' 소리를 들으며 산다. 남들이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긍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내게 위선적인 면이 있다 한들 진실로 다정한 면을 지니고 있지 않고서야 꾸준히 다정한 척 하기가 어디 쉬웠을까. 난 적어도 사람을 염려하고, 남의 외로움과 쓸쓸함, 괴로움에 민감한 편인 사람인 거다.
다정도 병이라면 굳이 치유하려 애쓸 필요는 없을 듯하다. 몸속 좋은 균, 나쁜 균이 있듯 병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 좋게 볼 이유가 있을까. 민감하다는 점에서 다정함이 가끔 나를 피곤하게 할지언정 그조차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다정한 사람이기 위해 애쓰고 싶다.
무던한 척하다 홀로 돌아 가슴앓이 하느니 다정병에 걸린 사람이련다. 다정함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뛰어난 점이란 믿음을 간직하며 나날이 따스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