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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13. 2024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일

하기 싫은 일도 견디는 원동력




  카페를 운영하며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장사 아닌 노동이다. '바리스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커피를 내리는 건 카페 일의 1/10은커녕 1/100도 안 된다. '사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고객에게 음료를 건네며 웃음 짓는 서비스도 영업시간 중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쓸고 닦고 재료 준비하고 가게를 정비하는 노동의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많은 고객이 다녀간 뒤 한바탕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면 카페 일을 배우던 처음이 떠오른다. 여러모로 서툴렀지만 내 가게를 준비하는 입장이다 보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한동안 전 사장의 실제 영업을 거들며 허드렛일부터 판매까지 모두 익힐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청소, 설거지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일단 몸 쓰는 일을 몸에 배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비교적 무탈(?)하게 가게를 운영해 온 건 그러한 준비 덕분인 것 같다. 



  아무튼 카페를 하며 깨닫는 건 커피와 관련한 직접적인 일보단 설거지, 청소, 재고 관리, 매장 관리 등 가게를 운영하기 위한 노동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단 사실이다. 어쩌면 모든 직업의 생리가 그러하겠지만, 나는 처음 해보는 장사를 통해 비로소 일의 속성을 알아가는 중이다.




  어디선가 그랬다. 하고 싶은 일 하나를 하려면 하기 싫은 일 아홉 개를 해야 한다고. 그걸 본 과거의 난 생각했다. 그런 게 어딨어? 하고 싶은 일만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하고 싶은 일 다섯 개, 하기 싫은 일 다섯 개 정도의 균형은 맞추며 살아가겠노라고.


  회사 일이 그래서 더 힘들었나 보다. 내 회사도 아닌데 하기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어디 있었으랴. 남이 시킨 일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다닐수록 스트레스가 쌓였던 이유다.


  그때부터 직장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골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닐수록 하고 싶은 일이 점점 줄어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할 때는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많았는데, 하기 싫은 일을 막상 없애고 나니 딱히 하고 싶은 일이랄 게 기대만큼 생기지 않는 거였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의 비중이 1:9 라는 말을. 사회에서의 일이란 게 결국 자아실현 같은 이상이 아니라 생계 수단이란 현실일 텐데, 그게 바로 노동 아니겠는가. 그런데 누가 과연 노동으로부터 고통 아닌 쾌락을 누리랴 싶은 거였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고통(=하기 싫은 일)은 줄이고 쾌락(=하고 싶은 일)은 늘리려거든 온전히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5:5까지는 아니더라도 2:8, 더 욕심 내자면 3:7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게 직장 생활보다 자영업이 낫겠다고 판단한 근거다.


  그래서 나는 카페를 시작했다.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 일이 그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가장 부합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이든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하고자 하기 때문에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얼핏 말장난 같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뭐든지 간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직업적 선택 앞에 놓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그때 자기 상황에 맞는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한 뒤에는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 직장인은 출근길 교통 지옥을 감수하는 일에서부터 회식에 참여하기까지의 하루 안에 하기 싫은 일이 얼마나 많겠으며, 자영업자는 가게를 열어 다양한 손님을 맞이하고 가게를 정리하기까지의 운영 시간 안에 하기 싫은 일이 또 얼마나 많으랴.


  이렇듯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견뎌낸다. 나 역시 이제는 카페를 운영하며 하고 싶은 일만 염두에 두기보다 하고자 하는 일을 명심함으로써 하기 싫은 일도 전에 없이 견뎌볼 작정이다. 사실... 하기 싫어할 틈 같은 건 없다. 가게 안 말아먹으려면 쌓인 설거지부터 부지런히 해야 새 커피를 내리든 말든 할 수 있으니. 


  이제 노트북은 치우고 카운터 정리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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