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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27. 2024

여자의 감각

오빠 그건 아냐



오빠, 그건 아냐~


  카페를 새단장하며 자주 들은 소리다. 이놈의 여동생과, 이... 여자친구가 개업 과정에 엄청난 도움을 준 건 맞지만, 뭐가 그렇게 아니란 건지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열에 아홉이면 그녀들이 옳았다. 가구의 배치에서부터 작은 소품 하나, 각종 집기의 정리정돈에 이르기까지, 여동생과 여자친구 말에 귀 기울여 나쁠 게 없었다. 때론 내 의견도 지지받을 때가 있었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한 쉬운 의사결정일 때였다. 디테일한 부분이 고민될 땐 무조건 그녀들의 말을 따르는 게 좋았다.


  카페라는 업의 특성상, 3-40대 여성 고객이 많은 상권의 성격상 30대 여성인 여동생과 여자친구의 보는 눈을 의심해서 좋을 건 없었다.


충실히 명령 이행 중




  여자의 감각을 따라갈 남자는 많지 않다. 아무리 섬세한 남자라 해도 보통의 여성과 비교했을 땐 무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내가 남자니까 이런 소릴 맘 편히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센스는 모성애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좋다.


  지난 글의 말미에 잠깐 밝혔듯, 카페를 준비하며 인테리어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다. 나의 취향을 입히면 입힐수록 나름의 색깔은 낼 수 있을지언정 다른 취향의 손님을 잃을 수 있음에 유의한 것이다. 그리 유별난 취향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여성들의 섬세한 취향을 만족시킬 자신은 없었다.


  결국 난 카페를 꾸미는 데 있어 여동생과 여자친구의 동의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행동했다.

 




  남자는 어려서는 엄마의 잔소리를, 커서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한다. 김창옥 쇼 같은 델 보면 그런 말을 참 재밌으면서 명쾌하게 하는데,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주위에 평화롭게 사는 남자들을 보면 대개 여자 말을 잘 듣는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힘과 시간이 있으면  아내나 엄마의 조언을 따르는 게 가장 속이 편하다나. 내 멋대로 살아온 나로서는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던 말인데, 자영업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그게 무슨 말인지 깨달은 것 같다.





  무슨 나약한 소리냐고? 머릿속을 맴도는 이런 반문이야말로 '남자' 특유의 알량한 자존심이리라. 여동생과 여자친구에게 카페 인테리어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란 법 있는가. 난 오히려 편해서 좋았다. 이런저런 고민이 생겼을 때 자문을 구할 확실한 존재들이 있다는 게 말이다. 책장을 놓을지 말지, 페인트 덧칠은 무슨 색으로 할지, 벽에 붙일 포스터와 엽서는 뭘로 할지, 선반에 올릴 소품은 무엇으로 고를지...


  이제 와서 보면 참 귀찮았을 텐데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 고민해 준 나의 그녀들. 앞으로 뭘로 보답해 나갈지를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진짜 남자'의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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