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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Apr 12. 2019

몇 번째 인생

사는 게 참 녹록지 않다.


 그런 날이 있다.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들이 작은 친절을 베푸는 일이 잦은 그런 날. 지하철에서 자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내려온 게 맞냐 물어보시는 어르신에게 길을 확인해 드리고, 잠깐 들른 마트에서 만난 젊은 아기 엄마의 유모차가 지나가게 문을 붙잡아주고, 버스 안에서 어디서 내려야 되는지 모르는 외국인에게 몇 정거장이 남았는지 어수룩한 영어로 더듬더듬 알려주고.


 모든 일들이 지나가고 집에 가까워질 때쯤에 '신기한 날이네' 퍼뜩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조금 기대를 하게 된다. 오늘 작지만 선행을 베풀었으니 내일이나 모레 좀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멋진 남녀 주인공들이 쏟아내던 멋진 대사들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4번의 인생을 산다고. 씨를 뿌리는 생, 그 씨에 물을 주는 생, 자란 것들을 수확하는 생, 그것들을 쓰는 생. 나의 이 35년 남짓한 삶은 몇 번째 생일까.


 타인들을 위해 온 삶을 내던지는 사람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꽤 선행을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뭔가를 돌려받기 위해서 한 행동들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돌고 돌아 언젠가 작게나마 좋은 일이 생기길 가끔 바란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이 생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이월(?)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삶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아, 전생에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나 보다'하고 넘길 때가 있다. 이전 생에 내가 모르는 내 자신이 쌓은 업보가 나를 괴롭히는 거라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면 다음 생으로 그 죄가 넘어가는 걸까. 나라라도 팔았을까? 아니면 대학살의 주범? 남들은 잘도 하는 연애 문제와 금전문제 인생 최대의 난제들인 나로서는 아마 삼국시대에 백제의 멸망을 이끈 김품석 정도의 난봉꾼 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글을 쓰다 보니 '죄를 짓지 않은 게 훨씬 중요하 '라는 생각이 . 알지도 못할 전생 타령하기 전에 집에 가서 책상정리나 . 정리란 작업은 매번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래도 계속해야 인간 꼴로  .


 기왕이면 이 삶이 첫 번째 삶이. 아니면 마지막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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