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이 알려주는 두 가지 정보
이 질문은 심리 상담을 시작할 때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상담 용어로는 ‘초기 기억’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 특히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초기 기억을 묻는다.
대답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상대에 대해 빨리 더 많이 알고 싶은데 시간이 없을 때 꽤나 유용하다.
첫 기억에서 언급되는 감정과 생각들은 상대의 자아관과 세계관을 알려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작 첫기억 하나로 그걸 알 수 있다고?
그렇다. 믿기지 않는다면 오늘도 선생이가 차린 대화의 밥상에 앉아보자.
아래는 선생이와 선생이의 초등학교 동창, 현영의 실제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4화에서도 나왔던 그 '현영')
선생이: 아, 현영아.
현영: 응?
선생이: 너는 첫기억 뭐야?
현영: 첫기억?
선생이: 응. 제일 어렸을 때 기억.
현영: 음, 두 가지 생각나는데.
선생이: 오 ㅋㅋㅋ 두 개 다 말해도 돼. 말해봐.
현영: 하나는 엄마가 저 멀리서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로 가고 싶었나봐. 그래서 진짜 네 발로 너무 열심히 기어서 갔어. 뭔가 울거나 하지 않고 내가 ‘나의 네 발’로 기어서 간거야. 그래서 결국 목적지까지 도착해서 엄마가 안아줬나 그랬는데 그게 기억나.
그래서 결국 목적지까지 도착해서 엄마가 안아줬나 그랬는데 그게 기억나.
선생이: 오 그게 되게 뿌듯했던 건가?
현영: 응 그랬던 것 같아.
선생이: ㅋㅋㅋ야 완전 너네. 너 지금도 계속 뭔가 목표 만들어서 묵묵히 하잖아. 보면 너 계속 뭐하던데.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아?
현영: ... 좀 그렇지(끄덕 끄덕)
...
현영: (10초 후) 그러네.
...
현영: (5초 후) 신기하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나 어렸을 때도 진짜 안운다고 그랬는데. 그 아기 침대 있잖아? 안전 바 있는 거.
선생이: 응. 프레임 있는거?
현영: 응. 그때 내가 침대랑 그 안전 바 사이에 꼈는데도 안 울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는거야.
선생이: 아니 거기 꼈는데 안 울고 그냥 껴 있었다고?ㅋㅋㅋㅋㅋ
현영: 응 그랬대. ㅋㅋㅋㅋ
선생이: 근데 좀 너 답다. ㅋㅋㅋㅋ 너 힘든거에 대해서 별로 얘기 안 하는 것 같아. 그냥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느낌?
현영: 그렇지. 지금도 그렇지.
현영을 텍스트로 옮기면 밍숭맹숭 간하지 않은 국처럼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영의 얼굴 표정과, 태도와 행동을 본다면
간 할 필요없이 그 자체로 충분한, 다시마 육수 같은 사람임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하다.
그 흔한 가식 없이 진심을 다해 생각하고 반응하는 현영의 모습을
여러분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선생이: 또 하나는 뭔데?
현영: 하나는 옛날에 어디 놀이공원 같은 데를 간 거 같은데, 거기서 인형 옷 알지.
선생이: 응. 알지 인형 탈 알바하는 사람들?
현영: 응. 그 인형 탈이 나는 진짜 안 왔으면 좋겠는데 계속 나한테 다가오는 거야.
선생이: ㅋㅋㅋ아 어리니까 그 탈이 막 크고 무섭게 느껴진 건가?
현영: 아니 ㅋㅋㅋ 나는 그냥 싫었어. ‘나는 너네를 원하지 않아!’ 근데 자꾸 와서 짜증 났어. 무섭다, 두렵다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짜증!
선생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완전 강현영이네.. 너 정해진 답 있잖아. 아까 딸기 팡도르랑 먹물 연유빵 중에 뭐 먹을래 해놓고, 내가 ‘먹물 연유빵’ 그러니까, 너가 ‘맞아’ 이랬잖아 ㅋㅋㅋ 이미 정해진 답 있고 그거 맞춰야 함ㅋㅋㅋ 그렇게 안 하면 짜증 ㅋㅋㅋ
현영: ㅋㅋㅋㅋㅋㅋ아 맞지 맞지.
선생이: 와, 근데 보통 애기들 같으면 인형 탈이 무서웠을텐데. 너는 자아가 되게.. 큰가봐^^ '감히 내가 싫어하는데 자꾸 와?! 왜 내 통제 따르지 않지?! 짜증나!' 하다니ㅋㅋㅋㅋ
현영: 그렇지. 그래서 내 남친도 봐봐, 완전 순딩하잖아..
선생이: 그니까.. 무던하게 잘 따라주는 infp랑 너랑 잘 맞는 이유가 있다니까...
현영이 저 멀리 엄마에게 본인의 네 발로 오롯이 기어간 기억은,
현영에게 ‘성취감’이라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독립성’이라는 가치의 중요성도 덧붙일 수 있다.
혼자서 무엇인가 이뤄내는 감각과 느낌, 즉 ‘성취감’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는 감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취 욕구는 현영을 움직이게 하며,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영의 놀이공원 기억에서 볼 수 있는 세계관은 ‘통제 가능한 세상’이다.
현영에게는 인형 탈의 ‘낯섦’ 보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쾌감이 크게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현영은 세상을 '통제 가능한 곳'으로 여기거나, 통제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런 안정이 깨졌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독심술가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나의 해석들을 ‘분석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궁예한다고 하곤 한다.
*궁예하다: (근거가 빈약한 상태로) 추측하여 결론을 내리다. [파생어] 궁예질.(출처: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
이렇듯 인생의 첫 기억은 여러분의 삶의 태도,
여러분이 인식하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에게 특히 예민한 감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인식하는 외부의 세상이 어떻게 느껴지는지가 설명되기 때문이다.
첫 기억이 진짜인지, 언제였는지 등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지금의 내가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곧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어지는 2부에서 결과를 확인해보자.
초등학생의 첫 기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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