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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생이 Oct 02. 2023

05.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1)

첫 기억이 알려주는 두 가지 정보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이 질문은 심리 상담을 시작할 때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상담 용어로는 ‘초기 기억’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 특히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초기 기억을 묻는다. 

대답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상대에 대해 빨리 더 많이 알고 싶은데 시간이 없을 때 꽤나 유용하다.


첫 기억에서 언급되는 감정과 생각들은 상대의 자아관과 세계관을 알려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작 첫기억 하나로 그걸 알 수 있다고? 

그렇다. 믿기지 않는다면 오늘도 선생이가 차린 대화의 밥상에 앉아보자.




<다섯 번째 밥상>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1)

: 첫 기억이 알려주는 두 가지 정보


아래는 선생이와 선생이의 초등학교 동창, 현영의 실제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4화에서도 나왔던 그 '현영')


선생이아, 현영아.


현영응?


선생이너는 첫기억 뭐야?


현영첫기억? 


선생이응. 제일 어렸을 때 기억.


현영음, 두 가지 생각나는데.


선생이오 ㅋㅋㅋ 두 개 다 말해도 돼. 말해봐.


현영하나는 엄마가 저 멀리서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로 가고 싶었나봐. 그래서 진짜 네 발로 너무 열심히 기어서 갔어. 뭔가 울거나 하지 않고 내가 나의 네 발로 기어서 간거야. 그래서 결국 목적지까지 도착해서 엄마가 안아줬나 그랬는데 그게 기억나.


일러스트 by 민그라미


     그래서 결국 목적지까지 도착해서 엄마가 안아줬나 그랬는데 그게 기억나.


선생이오 그게 되게 뿌듯했던 건가?


현영응 그랬던 것 같아. 


선생이ㅋㅋㅋ야 완전 너네. 너 지금도 계속 뭔가 목표 만들어서 묵묵히 하잖아. 보면 너 계속 뭐하던데.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아?


현영... 좀 그렇지(끄덕 끄덕)

...

현영(10초 후) 그러네. 

...

현영(5초 후) 신기하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나 어렸을 때도 진짜 안운다고 그랬는데. 그 아기 침대 있잖아? 안전 바 있는 거.


선생이응. 프레임 있는거?


현영응. 그때 내가 침대랑 그 안전 바 사이에 꼈는데도 안 울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는거야.


선생이아니 거기 꼈는데 안 울고 그냥 껴 있었다고?ㅋㅋㅋㅋㅋ


현영응 그랬대. ㅋㅋㅋㅋ


선생이근데 좀 너 답다. ㅋㅋㅋㅋ 너 힘든거에 대해서 별로 얘기 안 하는 것 같아그냥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느낌?


현영그렇지. 지금도 그렇지.      

     


현영을 텍스트로 옮기면 밍숭맹숭 간하지 않은 국처럼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영의 얼굴 표정과, 태도와 행동을 본다면 

간 할 필요없이 그 자체로 충분한, 다시마 육수 같은 사람임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하다.


 그 흔한 가식 없이 진심을 다해 생각하고 반응하는 현영의 모습을 

여러분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선생이또 하나는 뭔데?


현영하나는 옛날에 어디 놀이공원 같은 데를 간 거 같은데, 거기서 인형 옷 알지.


선생이응. 알지 인형 탈 알바하는 사람들? 


현영응. 그 인형 탈이 나는 진짜 안 왔으면 좋겠는데 계속 나한테 다가오는 거야. 


선생이ㅋㅋㅋ아 어리니까 그 탈이 막 크고 무섭게 느껴진 건가?


현영아니 ㅋㅋㅋ 나는 그냥 싫었어. ‘나는 너네를 원하지 않아!’ 근데 자꾸 와서 짜증 났어. 무섭다두렵다 이런 게 아니라그냥 짜증!


선생이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완전 강현영이네.. 너 정해진 답 있잖아. 아까 딸기 팡도르랑 먹물 연유빵 중에 뭐 먹을래 해놓고, 내가 ‘먹물 연유빵’ 그러니까, 너가 ‘맞아’ 이랬잖아 ㅋㅋㅋ 이미 정해진 답 있고 그거 맞춰야 함ㅋㅋㅋ 그렇게 안 하면 짜증 ㅋㅋㅋ 

문제의 '먹물 연유빵'

현영ㅋㅋㅋㅋㅋㅋ아 맞지 맞지. 


선생이와, 근데 보통 애기들 같으면 인형 탈이 무서웠을텐데. 너는 자아가 되게.. 큰가봐^^ '감히 내가 싫어하는데 자꾸 와?! 왜 내 통제 따르지 않지?! 짜증나!' 하다니ㅋㅋㅋㅋ


현영그렇지. 그래서 내 남친도 봐봐, 완전 순딩하잖아..


선생이그니까.. 무던하게 잘 따라주는 infp랑 너랑 잘 맞는 이유가 있다니까...     



\

현영이 저 멀리 엄마에게 본인의 네 발로 오롯이 기어간 기억은, 

현영에게 ‘성취감’이라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독립성’이라는 가치의 중요성도 덧붙일 수 있다. 


혼자서 무엇인가 이뤄내는 감각과 느낌, 즉 성취감’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는 감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취 욕구는 현영을 움직이게 하며,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영의 놀이공원 기억에서 볼 수 있는 세계관은 ‘통제 가능한 세상’이다. 


현영에게는 인형 탈의 ‘낯섦’ 보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쾌감이 크게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현영은 세상을 '통제 가능한 곳'으로 여기거나, 통제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런 안정이 깨졌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독심술가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나의 해석들을 ‘분석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궁예한다고 하곤 한다.     

 *궁예하다:  (근거가 빈약한 상태로) 추측하여 결론을 내리다. [파생어] 궁예질.(출처: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



이렇듯 인생의 첫 기억은 여러분의 삶의 태도, 

여러분이 인식하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에게 특히 예민한 감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인식하는 외부의 세상이 어떻게 느껴지는지가 설명되기 때문이다.      


첫 기억이 진짜인지, 언제였는지 등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지금의 내가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곧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어지는 2부에서 결과를 확인해보자. 

05.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2)

초등학생의 첫 기억은 무엇일까?

https://brunch.co.kr/@guboogi5s6ef/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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