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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생이 Oct 22. 2023

06.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결국, 철학.

프롤로그

오늘은 특별히 8명의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중산동 족발집 출입문 앞자리. 에어컨 바람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장님과 크게 소리치며 대화한다. 


우리는 “아 여기 좀 ‘추워’서요~!”, 

족발집 사장님은 “여기 안쪽은 ‘더워’서요~!” 


대화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대화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말하자면 여러분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은 마치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는 1등 선물과 같은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1차 족발 후 부족해서 2차로 즐긴 서재에서의 만찬.




선생이: 오늘 모인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얘기하기 전에! 다양한 분들과 이렇게 한데 모여서 이야기하는 지금이 저는 참 선물 같아요. 저라는 연결고리만을 갖고도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물론 맛있는 거 먹으러 오신 분도 계시죠?   

   

준성앗 들켰다.. 족발 먹으러 왔슴다!     


선생이: ㅋㅋㅋ 잘 오셨습니다! 음식 나오기 전까지 숙제 드립니다~     


‘저는 ~을/를 사랑하는 ㅇㅇ입니다.’

선생이: 처음 뵙는 분들도 계시니 소개도 할 겸, 이렇게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을/를 사랑하는 ㅇㅇ입니다.’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저부터 먼저 하면, 저는 우리가 시킨 족발이랑 보쌈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먹는 것에 상당히 진심이라서 저는 먹는 것을 사랑하는 선생이입니다.’ 라고 소개할게요. 물론 다른 사랑하는 것들도 많지만, 지금 현재 떠오르는 건 이거예요. 저를 아는 분들은 모두들 아시겠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먹을 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소정인정..ㅋㅋㅋ


선생이: 그쵸? 저는 먹을 걸 못 먹으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경준이: 아우 저 선생이 초코바 하나 몰래 뺏어 먹었다가..  교수형 처해질 뻔 했어요~


선생이: 그쵸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사랑하는 것에는 뭔가 철학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저는 먹을 것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것은 꼭 먹어야 한다.’ 이런 게 있어서... 나의 소중한 초코바를 뺏어 먹는다..?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소정오 음식 나오네요. 여기 좀 치울까요? 


소유네네 여기로.      



선생이(눈이 음식에 고정된다.) 사람이 행복을 찾으면서 살지 않습니까저는 먹을 때 가장 행복한 것 같고 특히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한 것 같습니다그러니까 맛있는 거 저 말할 때 많이 드셔야 될 겁니다. 왜냐하면 저 이제 곧 말 멈추면 다 없어질 거기 때문에.. 아무튼 저는 먹을 거, 음식을 사랑하는 선생이였고요. (음식 나와서 급 마무리) 저 다음으로 다현님!  


다현이저는 무조건 제 스케이트요. 저는 평생의 걸음마를 스케이트랑 같이 했으니까요. 또한 선생이 쌤이 사랑하는 그 음식도 이걸로 인해 먹을 수 있고. 먹는 거 다음으로 저는 자는 게 중요한데, 이걸로 인해 잠도 편하게 잘 수 있고, 또 스케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차도 있고,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여러분을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결국 저는 ‘스케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서 저는 무조건 스케이트입니다.      

인라인 스케이트 자료 사진. 출처 : 데일리스포츠한국(https://www.dailysportshankook.co.kr)


선생이: (우적 우적) 근데 스케이트하면서 되게 힘드셨잖아요. 어떨 때는 아픈 기억도 있었고 그런데도 스케이트를 가장 사랑하세요?     


다현이: 네. 제가 언젠가 맞으면서 (스케이트를) 배웠던 부분도 얘기를 했지만, 제가 타당하게 맞은 게 사실 아니거든요. 근데 그러면서도 제가 견뎌냈고 그 견뎌낸 원동력이 어쨌든 간에 그 스케이트가 좋았기 때문에 그 맞는 것도 참아가면서 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 힘들었던 스케이트 훈련으로 성장했듯이, 당연히 제 삶을 함께할 것 같아요.     


경준이질문 있어요. 그러면 다시 태어나도 스케이트를 할 것이다?     


다현이: 네. 할 거예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라인 스케이트 자료 사진. 출처 : 충북메이커스(http://www.cbmakers.co.kr)

경준이오~ 열정~     


선생이오~ 그럼 열정맨~ 경준이샘 이야기 한 번 들어볼까요?     


경준이ㅋㅋㅋ 아.. 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경준입니다저는 휴머니스트라서...     


선생이엇 저는 아이들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우리 참교사 경준이샘.     


경준이아이들도 결국에는 사람이니까, 맞는 말이죠. 요즘 더 사람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는 게, 코로나 때문이에요. 이제는 세계사의 기준이 팬데믹이 되는 시대가 왔고, 세계대전 전후를 나누듯이 코로나 전후로 나뉘잖아요. 애들이 안 오고 사람을 못 만나는 시대를 한번 겪고 나니까.. 더 사람에 대한 이런 상호작용이나 만남이 소중하다는 걸 느꼈어요. 


선생이그걸 최근에 좀 느끼신 건가요?


경준이네. 제가 얼마 전 체육 수업을 하면서, 경쟁 게임 중이었는데요. A팀 학생이 방향 전환을 하려다 넘어지려 하는 것을 보고 B팀 학생이 손으로 터치만 하면 점수를 딸 수 있는데, 이 B팀 학생이 넘어지는 걸 안아서 잡아주는 거예요.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표창장을 만들어서 애들이랑 같이 시상식을 했어요. 근데 그 뒤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아세요? 다른 학생들도 그런 페어플레이를 따라 하려고 하는 거예요.     


소정은지소유: 와..(감동)     


준성: 와.. 아무리 말로 해도 안되는 그 페어플레이가.. 자동으로 됐네요?     


선생이: 경준이샘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진심을 다 한다는 게 느껴지네요. 표창장을 만들어서 준다는 게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 같고, 그게 아이들에게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이 아닐까..     

자료 사진. 출처 :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article/16300853#home)


경준이: ㅋㅋㅋ부끄럽네요. 이제 아까 못 들었던 소유님으로 다시 가볼까요?     


소유와 경준이 선생님 일화가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근데 일단은 저는 오늘 여기 좀 갑작스레 참여하게 됐어요. 그래서..     


준성저도 여기 밥 먹는 줄 알고 왔어요.     


선생이맞죠 뭐ㅋㅋㅋ     


소유그래서 제가 여러분들 뵙고 그런 자리면 좀 더 이제 단정하게 이제 보석도 좀 빼고 이렇게 왔을 텐데.. / 소유는 코 피어싱을 가렸다.      


왕식괜찮습니다.     


소유제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소유입니다.’ 지금은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 이 전에 다양한 것들을 많이 했어요. / 코 피어싱 한 공무원이라, 소유도 범상치 않다.     


소유기간제 교사, 학원강사, 과외 등을 통해서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선생이는 제가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만났었는데, 선생이는 그때부터도 호기심도 많고 굉장히 열중하는 학생이었었어요. 뭐든 열심히 하고 앞장서서 하고.. 정말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 몰랐는데 아무튼 지금까지 이어져서 감사하네요.     

자료 사진. 출처 : 컨슈머포스트(http://www.consumerpost.co.kr) .사진 제공=삼화 네트웍스


경준이새로운 거 어떤 거 좋아하시나요?     


소유저는 새로운 경험 중에서도 제가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역이 지방이기도 하고 굉장히 엄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느라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코 피어싱도 설명이 될 것 같은데.. 내가 내일 죽는다면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라 한번 해본 거 거든요.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으니까..   

  

소정너무 예뻐요..     


소유감사합니다.ㅎㅎ 제가 여기 와 있는 것도 설명이 될 것 같은데, 지방에서 올려면 하루 이틀로는 안 돼서, 저의 여름 휴가를 써서 여기에 왔거든요. 이거 말고도 사주명리학이나 mbti 자격증, 아동 심리, 부모 교육 등 넓고 얕게 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니까 경준이샘이랑 비슷한게 특히 사람을 이해하고 배워가는 부분을 좋아하는 게 비슷한 것 같네요.     


경준이다양한 관점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그런.. / 경준이의 눈가가 이미 촉촉하다. 비가 오면 센치해지는 경준이는 원체 촉촉한 눈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같은 때 유난히 빛난다.     


소유(부담..) ㅎㅎ네^^; 그리고 심리 공부를 하면서 저는 제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점이 많아서 내가 나쁜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나를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난 그냥 다른 사람일 뿐이구나 하는 나를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서 또 이런 쪽에 굉장히 흥미를 느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새로운 경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소정 샘은요?     


보건교사 '안은영'이 아니라, 보건교사 '소정'. 소정은 초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한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소정저는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너무 싫지만 시련인 것 같아요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를 돌아보면 나중에는 결국 엄청나게 성장하게 된 때였거든요. 제가 임용 공부를 하면서도 힘들었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다른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정말 전보다 넓어진 것 같아요. 기쁜 것도 좋지만 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시련이었기 때문에 저는 시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발전하게 되었어요.     

 

은지어.. 제 차롄가요? 저는 대단하진 않은데혼자 집에서 쉬는 것을 정말 좋아하거든요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밥도 해 먹고, 누워서 유튜브 보기도 하고, 청소하고 산책도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진짜 다 가요. 나가서 누구를 잠시 볼 수도 있지만, 포인트는 한 명이라도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저 혼자서 있는 게 진짜 휴식이고, 저는 그걸 가장 사랑하는 것 같아요.     


집순이 은지의 현재 시야. 은지에게 지금 뭐하냐고 물으니 보내온 사진.

준성저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박애주의인 것 같아요사람들도 그렇지만, 동물들도 사랑하고.. 새가 놀랄까봐 길을 돌아가기도 하거든요. 남자나 여자나 다 비슷하게 똑같이 대하고, 저도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박애주의자 준성.


선생이 : 보면 준성샘이 진짜 남녀 상관없이 진짜 편하게 대해주는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도 편하게 대해주는 것 진짜 대단해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는가...ㅎ     


준성죽을..^^? ㅋㅋ     


선생이: 자~ 그럼 이번에는 왕식 샘의 말씀을 한번 들어볼까요?     


왕식저는 산책하면서 상념에 빠져 있는 것을 미치도록 사랑해요. 그러니까 ‘제 삶의 전부는 산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 때라도 또 엄청나게 기쁠 때도 저는 무조건 산책을 해요.      

<괴테와의 대화>는 제가 아주 아주 즐겨 읽는 책인데요. 그래서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거나 그러면 꼭 그 책을 좀 권해줘요. 거기 보면 이제 에커만이라고 하는 제자가 괴테를 너무너무 존경해서 여러 번 시도 끝에 글을 내고 내고 해서 이제 제자가 돼요. 가서 자기 거주지를 다 옮겨서 1년간 괴테 옆에 살아요.     

그 괴테에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10년 동안 천 번을 만나요. 천 번을 만나서 무조건 산책을 하는 거예요. 산책을 하면서 대화하는 게 끝이에요. 그리고 그 대화하면서 나눈 내용을 기록한 게 이제 괴테와의 대환데 저는 산책하면서 아까 소유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그걸 ‘trivialism’이라고 하죠. ‘사소주의’. 아주 작은 것들을 섬세하게 살피는 것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거죠

한 발 한 발 내딛음 속에서 ‘참 행복하다’ ‘이게 평화로구나’ ‘이게 정말 축복이로구나’하고 마음을 비우고 작은 것들을 살피게 돼요. 물론 저 자유로운 복장도 굉장히 좋아하고 장난도 잘 치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저는 숭고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숭고한 삶과 유쾌한 삶이 유리된 건 아니에요. 근데 가능한 한 이제까지 60년은 그냥 막 뒤죽박죽 살았으니까 지금부터는 정말 숭고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도 저는 정말 막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 벅차거든요. 그래서 산책하면서 얻어낸 작은 결론은 미워하지 말자는 것. 화내지 말자. 그러니까, '남을 사랑하자' 이런 차원이 아니라, 남을 정말 '미워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준성: 그러면, 질문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용서가 안 된 적은 없으십니까.     


왕식있었어요. ‘나 평생 용서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다짐한 사람이 있었어요. 저는 그 당시는 그분 때문에 저는 자살까지 생각을 했었고그 분 때문에 정신과 약을 3년을 먹었고 그 당시에. 근데 이제 지금은 그분으로 인해서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참 고맙다. 다만, 보고 싶지는 않다.' 정도의 마음이에요.

용서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평생 안 봤으면 좋겠다. 근데 미워하는 감정은 아니에요그냥 안 부딪히고 그냥 너도 행복하게 살고 나도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선생이저는 용서하지 못하는 대상이 엄마라서 어떻게 해야 될지 답을 찾고 있어요. 저는 엄마에게 별로 고맙지 않은데, 그게 참 죄책감이 들어요. 우리나라, 특히 아시아권이 효(孝) 사상이 기본이니까, 그냥 태어나게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잖아요. 

근데 저는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란 적이 없거든요. 바랄 수도 없었지만, 딱히 '다시 태어나고 싶다.' 이런 생각도 없어요. 그렇다고 죽고 싶거나 무기력하게 사는 건 아니지만요. 태어났으니까, '기왕이면 열심히 살자'는 생각으로 또 치열하게 살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제 나쁜 식습관에 대한 근원 같아서예요. 여기서 나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바디 프로필에 도전한 것이기도 한데, 제가 먹으면 엄청 많이 먹는 '과식', '폭식'하는 식습관이 있거든요. 

선생이의 바디 프로필

그런데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엄마가 술 마시러 나가면서 시켜줬던 야식 때문인 것 같은 거예요. 엄마한테 전화하면 안 받고네네 치킨에 전화하면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 치킨~”하며 받거든요. 엄마는 '언제' 온다고 하면 그 '언제'에 안 와요. 근데 네네 치킨은 한 40분 있으면 오거든요. 그때부터 이제 치킨 한 마리를 시켜놓고 혼자 다 먹는 거예요.     

또.. 엄마가 재혼하면서 만나게 된 새 아빠랑 맨날 싸워서 매일 밤마다 경찰서 신세를 졌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물론 당신께서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이해'는 되죠. 그런데 딱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딱 거기까지. 미워하진 않지만 용서하지도 않는. 지금은 어쨌든 내가 이런 시련을 겪은 덕분에 좀 더 빨리 성숙해졌지만, 그거를 ‘감사하다’라고 생각할 여유까지는 아직은, 안 되는 것 같아요.      


...



우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서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해하고,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우리는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서로를 알아갈 때 우리는 오히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대화 나누다 보면, 자신이 믿는 지혜, '철학'이 나온다.

당신이 생각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인간에 대한 어떤 질문을 하는지를 알게 된다.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날 때, 우리는 빛나는 기적을 만나게 된다. 

각자의 색깔을 띤 서로 다른 빛이 겹칠 때 생기는, 전혀 다른 색처럼, 

너와 나는 겹쳐져 우리라는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빛의 합성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 세계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과 그 대상에 대한 탐구가 주가 되는 학문

우리는 지금 철학을 하는지 모르고 철학을 했다.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내가 믿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을 사랑하는 나는 이 세상의 많은 즐거움을 탐닉한다. 내게 인간은 즐거운 탐구 대상이다.

내가 대화를 통해 생각한 바는 이렇다.

다현이에게 세상은 후회 없는 노력의 결과이며, 고통은 감사로 승화되었다. 인간은 감사의 또다른 대상이다.

경준이에게 세상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이며, 인간은 같이 노는 사람이다.

소유에게 세상은 새로운 경험이 가득한 곳이며, 인간은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거나 막을 수 있다.

소정에게 세상은 시련으로 피워낸 아름다운 꽃이며, 인간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준성에게 세상은 사랑의 공간이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사랑할 만한 대상이다.

왕식에게 세상은 행복과 평화와 축복의 공간이며, 인간은 숭고한 삶을 살 가치가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철학을 하고 있는, 철학자가 아닌가? 

누군가의 말마따나 철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태도가 아닐까?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분은 교육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고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먹었던 급식에 대하여, 

이제는 멀어진 또는 새롭게 알게 된 친구에 대하여,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하여.


교육적 대화는 흐르고 흘러 우리 이야기처럼 의외의 종착지에 가닿을지 모른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그 대상이 ‘엄마’인 것에 대하여. 


답이 없고 어려운 질문을 마주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곱씹고, 생각하고, 미뤄뒀다 다시 마주하는

그 모든 과정이 탐구이고 하나의 교육일 것이다. 


철학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아이들도 아이들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

남녀노소 모두의 교육적 대화는, 우리 자신을 철학자로 살 찌워주는 훌륭한 밥상이다. 

주제가 딴 길로 새면 어떤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인 것을.


잡초 같은 대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고자 나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다. 

책 한 권에 담아야 하는 이론적 지식을 밥상머리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잡초처럼, 무성하고, 부드럽고, 잘 자라난다. 

‘오키드 난초’ 같은 이름난 식물을 키우는 것처럼 인위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화려한 꽃, 이름난 나무가 아니라, 한 포기 잡초가 되면 안 될까?

'섞일 잡(雜)', '풀 초(草)'. 

여러 가지 풀이 한데 섞여,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난다는 ‘잡초’의 뜻처럼, 

우리도, 우리의 대화도 그러하였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잡초(雜草):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농작물 따위의 다른 식물이 자라는 데 해가 되기도 한다.  / 네이버 국어사전 검색 결과



<메뉴판>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으로 알게 된 당신의 세상과 인간은 무엇인가요?


<곁들이는 반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저자(글)

열림원 · 2023년 02월 27일     

이어령. 질문이 클수록, 가깝지 못하게 된다.

사소한 것에 담긴 거대한 뜻들.     


큰 질문을 경계하라

“나는 이런 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 빅 퀘스천big question이지. 문인에게 다짜고짜 문학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문학을 못 하네그런 추상적인 큰 질문은 무모해철학자에게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아인슈타인에게 ‘과학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어.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질문이 너무 커책 한 권으로도 담을 수 없는 큰 것을 내게 물어본다네평생 공부하고 써야 할 것을나한테 물어본다구.”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할 수 없이 그것을 작은 이야기로 쪼개서 알기 쉽게 이야기하지. 안타까운 것은 듣는 자들이 그 디테일은 다 빼버리고 결론만 떼어서 전해버린다는 거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하나 마나 한 일반론이 돼버려. 가령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자기 인생을 살라고 하더라’. 뻔한 얘기가 넘치는 세상에 내가 일반론을 보탤 이유가 없네.”     


“꿀벌 장수는 어떤 답을 듣고 갔나요?”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당신이 가장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만 하면 좋은 문학이 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 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벌은 화분을 transfer 하는 거야그게 창조야.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은이), 장희창 (옮긴이)

민음사 2022-05-30 원제 : Gesprache mit Goethe         


<책 소개>

젊은 문학도 에커만이 인생, 예술, 학문 그리고 사랑에 대해 괴테와 나눈 대화. 에커만이 괴테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간 약 1000번의 만남을 가지며 그와 나눈 대화를 꼼꼼하게 기록, 정리한 것이다. 에커만에게 멘토와도 같았던 괴테가 젊은 이들에게 전하는 주옥같은 메시지들이 들어있다.     

괴테가 가족이나 친구들, 예술가, 학자, 외국인들과 나눈 대화 등도 일기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인물들은 나폴레옹, 헤겔, 실러, 베토벤 등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거물들이었다. 시인이기도 했던 에커만은 이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책은 당대의 문학과 예술, 성서 해석과 종교 문제는 물론 정치 세계사의 흐름도 담고 있다. 또한 지식인의 역할 및 세계 문학의 대가들에 대한 괴테의 독창적 해석과 삶의 지혜를 담은 잠언이 가득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괴테의 삶과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에커만은 괴테의 말을 단순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전하고 있다. 괴테의 며느리인 오틸리에가 “마치 시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장성과 구체성을 확보한 묘사를 선보인다. 또한 괴테의 전 작품까지 빠짐없이 언급, 인용해 괴테의 다른 문학 작품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괴테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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