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난했지만, 작은 꿈을 샀다

임신, 백수 남편, 그리고 폭스바겐 골프 GTI 중고차

by 시연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솔직히 기쁨보다 막막함이 먼저 찾아왔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 중이었지만, 현실은 그저 ‘백수 상태’였다.
앞날은 불안했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그런 와중에 빨간 베르나가 고장이 났다. 500만 원 주고 산 차였는데, 불과 2년 만에 수리비가 300만 원 이상이라는 말에 정비소조차 고개를 저었다.
“이건 고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새 차 알아보세요.”
결국 차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형편에 새 차는커녕, 제대로 된 중고차를 사는 것도 버거웠다.


남편의 작은 꿈, 흰색 골프 GTI


남편에게는 오래전부터 꿈꾸던 차가 있었다. 폭스바겐 골프 GTI.
당시 유행하던 책 《시크릿》처럼, 원하는 것을 눈에 두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그는 몇 년 동안 모니터에 흰색 GTI 사진을 붙여놓고 살았다.
하지만 그건 우리 형편에서는 감히 손댈 수 없는, 말 그대로 ‘넘사벽’ 같은 드림카였다.

나는 고민 끝에 결심했다. 비록 신차는 아니지만, 중고 골프 GTI를 직접 구해오기로.
거래를 위해 지방까지 내려가던 날, 남편은 내내 의기소침했다.
“우리 형편에 이런 차를 사도 될까…”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보다 불안과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이 묻어 있었다.


희망을 산 선택


하지만 나는 믿었다. 그 차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남편의 자존감과 희망을 되살려줄 상징이라는 것을.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 남편은 오랜만에 아이처럼 웃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잠시나마 우리 앞날의 불안을 잊게 만들었다.

그 흰색 골프는 우리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가난하고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었다.
나는 그것을 희망을 산 선택이라 부르고 싶다.


골프는 골치덩어리였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더 좋은 차를 샀고, 더 좋은 차를 몰았다.
하지만 골프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차로 남아 있다.

골프는 우리에게 드림카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넘사벽 같던 꿈이 실제 손에 닿았고, 바닥이던 자존감을 끌어올린 수단이었다.

남편은 그 후 취업을 했고 또 너무 과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꿈을 다시 꾸었다. 할 수 있다..우리도 이룰 수 있다!


사실 그 골프는 동시에 골치덩어리이기도 했다.
수리비가 끝없이 늘어나, 차라리 신차를 샀어야 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때 골프가 없었다면, 우리가 버텨낼 힘도, 웃음을 되찾을 순간도, 우리가 열심히 하면 우리의 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없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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