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육아, 가족. 그 모든 걸 잡으려다 결국 나를 놓쳤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는데,
세상은 나를 이미 완전한 사람으로 불러냈다.
출산휴가가 끝난 지 90일 만에 나는 다시 출근했다.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세상은 나를 이미 예전의 나로 기억하고 있었다.
회의실 안의 공기, 사람들의 속도.
그 안에서 나는 늘 조금 느렸다.
머릿속엔 아이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2년 동안, 아이는 친정에서 자랐다.
엄마가 돌봤고, 나는 서울에서 일했다.
아이의 첫걸음, 첫 단어, 첫 웃음을
사진으로만 보던 시간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늘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내가 열심히 사는 만큼,
누군가는 내 자리를 대신 지켜야 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일도, 엄마 역할도, 딸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도.
모두에게 잘하고 싶었다.
그게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아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야 가족이 함께 사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급하게 구한 집은 방이 세 칸 있는 낡은 빌라였다.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방이 세 개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한 칸은 아이, 한 칸은 엄마, 한 칸은 남편과 나.
이제 각자의 공간이 생겼다고 믿었다.
이전 집은 작았지만 새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조용했고, 따스했다.
그땐 몰랐다.
공간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공기의 온도’라는 걸.
새 집은 달랐다.
윗집의 전화소리, 웃음소리, 한숨까지 들렸다.
겨울엔 유난히 추웠고,
창문을 닫으면 숨이 막혔다.
벽은 젖어 있었고,
곰팡이는 하루가 다르게 번져갔다.
락스로 닦고 또 닦았지만,
다음날이면 다시 피어났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의 팔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집이 좀 습하지 않나요?”
그 말이 마음을 후벼팠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어떤 공간을 주고 있는 걸까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었다.
비싼 유모차를 샀었다.
남편 직장 상사가 쓰던 스토케를 중고지만 비싸게 샀다.
하지만 결국 우린 코스트코에서 10만 원짜리 휴대용 유모차를 샀다.
스토케는 작디작은 거실을 더 작게 만들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휴대용 유모차로 시장을 다니고,
병원을 오가고, 어린이집을 데려다줬다.
비 오는 날엔 한 손엔 우산을,
한 손엔 유모차를.
계단을 오를 때마다 허리가 쑤셨고,
가끔은 바퀴가 내 발을 찍었다.
그래도 그 유모차를 밀며 하루를 버텼다.
밤이면 아이는 외할머니 등에서 잠들었고,
나는 식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 옆엔 오늘 하루를 견딘
닳은 유모차 한 대가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거실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자리를 차지한 비싼, 연두색 스토케가 있었다.
모든게 어색한 조합이었다.
그건 내 하루의 흔적이자, 버겨운 나의 일상이었다.
그땐 몰랐다.
행복은 넓은 집에 있지 않았다.
낡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래도 웃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
모두에게 잘하고 싶었던 그때의 나는,
사실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었다는 걸.
2년 만에 다시 만난 아이, 함께 산다는 건 이렇게 낯설고, 이렇게 아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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