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아이는 잘 자랐다

불안과 죄책감 사이에서 내가 배운 사랑의 모양

by 시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마음이 두 쪽 났다.

아이는 선생님을 좋아했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지만,

나는 매번 ‘조금만 더 일찍 데리러 올걸’ 하는 후회를 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늘 말했다.


엄마, 늦게오면 안돼 일찍 데릴러와.
수업끝나고 기다리는거 싫어


남들은 영유를 보내고 영어유치원 상담을 다닐 때,

나는 한 달 50만 원의 사립유치원비 앞에서 숨이 막혔다. 국립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국립을 보내고 싶었다. 영유도, 국립도 선택할 수 없는 환경..


돈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죄책감이 더 무거웠다.

그런데 아이는 웃었다.

늦게 데리러 가도, 엉터리 못난이 도시락을 들고 가도,

그 아이는 언제나 내 품에 안기며 말했다.

“엄마, 오늘도 재밌었어.”


그날 나는 알았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사랑은 자란다는 걸.



비교의 시작


직장동료와 남편의 친구들은 대부분 영유를 보내고 있었다.

카톡방에는 영어 발표회, 발레복 사진이 올라왔고,

나는 휴대폰을 덮었다.

‘그건 다른 세계 이야기야.’


우리의 현실은 전세와 대출이었다.

엄마의 용돈, 생활비, 육아비가 매달 빠져나갔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자존감도 함께 내려앉았다.

‘부유하지 않다는 게 아이에게 미안한 일일까?’

그 질문이 내 하루를 오래 붙잡았다.




경제의 무게와 감정의 죄책감


유치원비 50만 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한 달 교통비와 식비, 보험료의 합이었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지’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마트 계산대 앞에서 간식을 내려놓을 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열심히 사는데 왜 항상 모자랄까.

성실함으로 채워지지 않는 현실은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실 잘못된 건,

열심히 살아야만 가치 있는 사회의 기준이었다.




불안의 정체


불안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까 봐,

‘아이의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해주고 싶은데 해주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돌덩이처럼 자리했다.


다행히 아이는 예상과 달리 잘 자랐다.

늦게까지 남아 있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3시면 할머니가 데릴러오고 집에 있으니 행복하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마음 한켠이 녹았다.

불안은 여전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안심이 되었다.




사랑의 형태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늘 시간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는 ‘함께한 순간’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비싼 유치원보다,

매일 밥을 먹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툴지만 안아주는 일이 사랑의 전부였다.


“엄마, 나보다 유치원에 더 늦게 있는 친구들이 있어. 나는 그렇게 늦게까지 유치원에 있고 싶지 않아. 나는 집이 좋아.”



그 말이 내 지난 죄책감을 모두 덮어주진 못했다.

사랑은 양보다 온도였고,

우리가 가진 건 시간 대신 진심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자라고 있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안 위에 하루하루 쌓인 작은 안도감이 있었다.

가난하다고 부끄럽지 않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은 충분했다.

결국 중요한 건

‘좋은 엄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아이 곁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내 생활에서 선택한 나의 최선이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 불안조차 나를 나답게 만드는 증거라면,

이제는 그것마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잘 자랐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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