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전만 부친 그런 날이 있었다

그날의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by 시연

아침부터 부엌은 분주했다.
명절이면 언제나 그랬다.
방바닥엔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재료를 늘어놓았다.
큰 쟁반엔 밀가루, 달걀물, 채 썬 채소와 고기가 가지런히 놓였다.
내 담당은 늘 ‘전’이었다.



호박전, 동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달궈진 팬에서 기름이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처음엔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는 점점 무겁게 변했다.

부친 전은 한쪽에 쌓아두었다.
방바닥엔 신문지가 깔리고, 그 위엔 달력이 뒤집혀 흰 면이 위를 향했다.
그 위에 전을 한 장씩 올려 식혔다.
기름이 배어 달력의 흰 종이가 반투명해졌고,
그 위에 올려진 전들은 서로 닿지 않게 조심스레 놓였다.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의 손끝으로 정돈된 질서 같았다.

엄마는 불 세기를 조절하며 말없이 움직였다.
나는 젓가락을 쥔 손으로 전을 뒤집고,
식은 전을 다른 달력 위로 옮겼다.
신문지 사이로는 기름이 스며들었고,
발바닥에도, 머리카락에도, 온몸에 기름 냄새가 배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상을 차렸지만
제사가 시작되면 엄마와 나는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사람들이 절을 하는 동안 우리는 부엌에서 그릇을 닦았다.
달력 위엔 식은 전이 여전히 쌓여 있었고,
그 냄새는 밤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생각하면, 그건 제사 준비가 아니라
그저 가족의 일상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했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던 일.
지금도 부침개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그 방바닥의 신문지, 흰 달력 위의 전,
그리고 조용히 움직이던 엄마의 손이 떠오른다.
그런 날이 있었다.



#그런날이있었다 #전부치는날 #명절의기억 #엄마의손 #달력위의시간 #부엌의냄새 #기억의조각#추석#설날#제사#전

이전 06화첫사랑이라 다행인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