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혹은 우연히 사랑스러운 장소를 만날 때가 있어요. 유명관광지일 수도, 알려지지 않아 꽁꽁 숨은 곳일 수도 있지요. 요즘은 자연 속 베이커리 카페가 눈길을 끌 수도 있겠네요. 분위기또는독특한 인테리어 아님 특이한 건물 구조에 맘이 끌리면색다른 감정에 빠져 미련을 두고 오는 곳이 그런 곳이잖아요. 색감이나 풍경, 음식이 주는 즐거움도 한몫 거들죠. 다시 오고 싶다, 며칠 머물고 싶다는 말이 혼잣말로흘러나오는 장소들. 거기엔 특별함 외에 편안함이 배어있기 때문일 거예요.
첫눈에 불꽃이 튀기도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좀 쌓여야 푸근해지는 장소도있어요. 사랑이 그렇잖아요. 첫눈에 반하기도 하지만 만나면서 더끌리기도 하는 것처럼.
갈 때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친숙해진 함덕 해변이 제겐 다시 가고 싶은 장소로 남았어요. 끝없는 바다와 하얀 모래 사이 달콤한 빵냄새가 퍼지고 커피 향이 스며있는곳.얕은 수심을 깔보기라도 하듯 찰방찰방 맨발로 걷다 보면 어느새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별일 없이 잘 지냈냐고안부를 물어요.
산책로를 따라가다빈 의자에 몸을 맡긴 채넉넉한 바다를 바라봐요.옥빛 바다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생경한 단어가살금살금다가오는것 같아요. 세련되지 못하여 어설픈 듯하면서순진한얼굴을 하고서요. 바다 저편'서우봉'은 널브러진 초록이무성한곳이에요. 여러 번 가도 질리지 않아 혼자도 함께도 가고 싶은 곳이죠. 그곳에 서면 숨 막혔던 가슴이 콸콸 따른 맥주 거품처럼 흘러 푸스스 사라지거든요. 얌전을 떨어도 호들갑을 떨어도 다 받아주는곳이지요. 저에겐 함덕 해변이 그런 장소예요.
처음 간 곳인데 언젠가 와서 하염없이 헤매다 찾지 못한 예감이 드는 장소도 있었어요.누에보 다리에서한참걸어간 론다 마을의 오래된 골목길에 자리했던'바 엘꼰벤토(Bar El Convento)'가 그랬어요.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곳에 곡선으로 이어진하얀 외벽이목제 창 서넛과 출입문을 품어 손님을 맞더군요. 아담한 내부엔 온통 외국인뿐이었지만 거북하지 않더라고요. 론다 마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이라꼬맹이들도 더러 왔다 갔다 했어요. 부모님께 뭔가를 허락받고 나가는 것 같았어요. 우릴 보고 씽긋 웃으며 나가는 아이들도 동양 이방인이 낯설지 않았나봐요.
우드톤의 올드한 실내 분위기는 동네 어귀에 마실 나온 듯한 편안함을 줬어요. 의자와 식탁이 높아 평소라면 불편하다고 피했을 텐데 그곳에서는 어떤 것도 용납할 보들보들한 사람이되더라고요. 일시적인 놀이 공간이 일상의 여가를 끌어들인 기분이었죠.이국에서의 긴장을 다독이는 청심원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요.그곳에선 거주자와 여행자의 하루가 느긋하게 흘러갔어요.
어눌하긴 마찬가지지만 시골 마을의 작은 식당이라영어 소통이 어려웠어요. 한국어와 스페인어가 부딪히기도 했지만 의지의 한국인은 무사히 주문을 마칠 수 있었죠.나온음식에서는러브 스토리를간직한 숭고함이느껴졌어요.절절한 사랑의 맛 같았지요. 양송이버섯을 장식한 크림 질감의 그린소스는 여행자의 오후를 경이로움에 빠뜨렸어요.값도 지극히 서민적이라 음식마다 '이쁨'이라는 미니 깃발을 꽂아주고 싶었죠.
식탁 위로 희끗희끗하게 깔린론다의빛보라,꿈틀거리는 다양한 언어, 와인을 즐기러 온 론다 거주자들의 미소, 약간 소란스러운 듯하지만 사적인 목소리를 파괴하지 않는 질서등이 여행자의 피로에 키스하는 것 같았어요.회복력이 몸으로 달려드는 편한 공간이 생활 가까이에서도 종종 포착된다면 삶의 리듬이 얼마나 경쾌할까요.
사랑스러운 장소는마음에 들어와 특별히 유지되는 곳을 말해요.우리의 시간에 단편 영화로 남기도하고, 다시 찾아갈 희망에 부풀어연작 시나리오를 쓰도록 유도하는 곳이기도 하지요.이제는 별도의 경비, 따로 떼어낸 시간, 장거리 이동 없이도 삶 근처에서 여백의 시간을보낼안온한공간을갖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