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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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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n 06. 2023

방생해 줄게요

유치한 질문

커피 향이 진한 카페 앞을 지날 때면 각이 팔다리 걷어붙이고 군침을 불러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어디에선그윽한 커피 향수를 판다면 반드시 구입하고야 말겠어요. 아침나절 한 잔 마시는 커피가 내게 회복이고 행복이듯 당신은 , 하고 부딪치소주를 나의 커피처럼 사랑하지요. 


소주를 찬양하는 당신이지만 난 그 맛의 깊이를 알 턱이 없어요. 속 쓰리다면서 왜 마시나 싶은 생각뿐이니까요. 와인은 소주잔으로 한 잔 정도 홀짝일 수 있지만 그나마도 그날의 상태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뭉근한 두통으로 잠식해 오곤 하죠. 


목살 김치찜은 고기보다 김치를 더 많이 넣은 걸 좋아하고요, 겉절이보다는 폭 익은 김치에 혀가 끌려요. 비싼 토종 순대보다 시장표 찰순대가 입에 더 달라붙고요. 국밥은 선호하지 않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순댓국보다는 추어탕이 제격이지요. 당신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순댓국에 겉절이지만 말예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가끔이라도 바닷바람에 머리카락 좀 흩날면 시끄럽던 마음이 잔잔해져요. 수평선에 가 닿은 마음이 되돌아오기도 전에 당신은 회 한 점과 낚시에 빠진 얼굴을 하고 옆에 섰지요. 날음식을 꺼리는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린 당신의 취향은 환영받지 못하는 숙명아래 놓인 신세.


특이한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볼 때도 커피 마실 때만큼이나 즐거워요. '성공회 강화 성당' 한옥이어서 눈길을 끌었고 '세한도' 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서귀포 추사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마음에 들었어요. 계단 안에 사선으로 뻗은 길이 멀고 먼 귀양길 전하는 거란 설명에 한참을 바라보았죠.  '석양을 가슴에 담다'는 구봉도 조형물도 근사했어요. 광화문 '해머링 (조나단 브롭스키)'을 처음 보았을 때도 같은 마음으로 걸음을 멈췄었죠. 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면 군소리 없이 함께 바라봐 주지만 당신은 아마도 가던 길이 급했을지도 몰라요. 


추적추적 비가 내리날엔 밖에 나가는 것이 달갑지 않아요. 빗물에 신발쯤 젖은들 어떠랴 싶지만 축축함에 심사가 꼬이거든요. 유리창 너머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뭉그적대는 게 차라리 감상적이죠. 그렇다고 해가 쨍한 날도 반기지 않는 편이에요. '도대체 어쩌란 말이?' 할 수도 있지만 그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 어느 적당한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이면 무작정 반길 수 있어요. 

애정하는 계절은 겨울이었죠. 지금은 겨울 끝여름 끝제일이에요. 봄과 가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죠. 날이 더워서, 날이 추워서, 비가 와서를 따지는 나와 달리 당신은 어떤 날이든 마음에 들이는 무던한 사람이죠.


춤은 젬병인 데다 운동 신경도 둔해 몸으로 하는 활동은 즐기지 않아요. 다만 볼링은 조금 칠 줄 알지요. 에버리지 130 정도. 그나마도 지금은 좀 덜 나오겠지만요. 그래도 볼링 칠 줄 아는 건 서로가 통했네요. 당신은 볼링뿐 아니라 공으로 하는 취미는 무엇이든 덤비는 사람이죠.


맘이 맞는 사람과 떨어대는 수다스러움도 마냥 좋지만 집순이로 있을 때도 나쁘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 컨디션이 날아갈 것 같은 날이면 무작정 나가보기도 하지만 집에서 차분하게 있을 때 얻는 에너지도 무시할 순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약속쟁이죠. 무조건 사람들과 만나야지만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니까요.


'그린'을 좋아하는 탓에 다이어리도, 폰케이스도, 스니커즈도 올해는 그린으로 선택해 봤어요. 같은 그린이어도 조금씩 차이 나는 게 그렇게 이쁠 수가 없어. 당신은 내 맘대로 골라온 의상이든 신발이든 군말 없이 입고 신는 스타일이죠.


눈물 많고, 걱정 많고, 걷기 좋아라 하고, 극예민자라 공중 화장실에 가면 변기에 휴지부터 깔고, 신세 진만큼 갚아야 맘이 편하고, 식당도 새로운 곳은 의심부터 하고 보는 그런 사람이 나예요. 당신과 다른  투성이죠.


나의 사소한 것까지 다 알고 있을 거라 짐작되는 당신에게

"다시 태어나면 나와 또 결혼할 건가요?"

유치하게 물었을 

예스,라고 대답하길 바랐던 적 있어요. 사십이 되기 전까진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라고 대답해도 납득할 수 있게 됐어요. 생선회 좋아하고 비린내가 역겹지 않아서 함께 낚시가도 불평 없는 사람과 살아보는 일상을 누려보게 하고 싶어서죠. 어디 그뿐이겠어요. 상기된 얼굴로 팔뚝만 한 물고기를 내밀어도 별도의 리액션이 없는 사람보다는 물고기처럼 펄떡이며 쌍엄지 미는 사람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거 알긴 하거든요.  돼서 그렇지.


방생 줄게요.

보답할 준비나 하든가요.

그 생에선 이 생의 기억으로부터 무뎌지길 바랄게요.


그런데


당신,

다시 태어나면

결혼 같은 거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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