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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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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l 20. 2023

담장 밑 들꽃처럼 소박한 공간

벤치

거리나 광장에서 보행자가 쉬어갈 만한 벤치를 찾을 수 없을 땐 미간에 주름이 다. 대중교통 이용이 잦다 보니 잠시 쉬었다 갈 벤치가 종종 간절한데  눈앞엔 도통 나타나질 않으니 꼭 시위하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괴롭다는데 난 벤치 때문에 괴롭다.

다리가 아파벤치 생각이 난 것뿐인데, 잠깐이라도 멈추어 기대고 싶었던 것뿐인데, 꼭 그렇게 꽁꽁 숨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아쉬움 담아 '해바라기'의 김래원(오태식 역) 버전으로 버럭 소리 한 번 질러본다.


언제부턴가 거리마다 벤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스쳤다. 지하철 출구에서 만나 약속 장소로 함께 이동하기로 한 날에도 마지막 친구가 올 때까지 벤치가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벤치 하나쯤 있다면 기다림은 다디 단 샘물 같을 텐데...

벤치의 부재가 안타까움으로 남을 때면 괜한 나이 탓만 하는 것 같아 허탈하고 쓸쓸하.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공원이나 버스 정류장에선 옅은 미소처럼 스미는 벤치를 만날 수 있다. 있어야 할 곳에 놓인 것이라 당연한 것 같지만 가끔은 그 앞에서 태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수효 턱없이 부족해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가 그런 순간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차피 만드는 거 인심 좀 더 쓰지 하는 맘이 올라오면 역시나 쓸쓸해진다. 


어쩌다 기대하지도 않은 곳에서 벤치를 만나면 그래서 잠시라도 머물러 간다. 걸음을 멈추는 짧은 시간 그 사이로 나만의 공간이라는 권리와 편안함이 위로처럼 와닿기 때문이다.


채널 검색  TV가 내 마음을 용케도 알아챘는지 '도시의 선물, 벤치'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었다. 관심 갖고 눈여겨보니 사람 맘은 다 똑같았다. 어린아이들과 외출했다가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카페 외엔  곳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육아 맘의 바람도  통했다. 도시 보행로에서 마땅히 쉬어갈 만한 데가 없을  난감하더라하소연들 벤치의 소중함을 절실히 일깨웠다.


뉴욕 센트럴 파크의 벤치는 9천 개가 넘는단다. 독서, 휴식, 점심, 버스킹, 커피타임 등 다양한 활동이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웃과 만나 소통하며 친구가 되는 것은 물론이무엇을 하든지 그 벤치에선 눈치 볼 일 없었으며 수효가 많다 보니 쟁탈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역 주민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즐기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벤치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타국에서 온 여행자는 호텔 체크인까지 남은 시간을 벤치에서 보내며 오랜 비행으로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 중이라고 했다. 도시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며 이미  공간의 일부가 됐다고도 말했다. 


다른 여행자는 처음 간 도시에서 오래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의 기준이 벤치에 있다고 인터뷰했다. 여행자에게 벤치는 휴식하며 피로를 푸는 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갈무리하기에도 적합한 장소란다. 촬영한 사진도 감상하고 지역 주민들과 문화적 교류를 통해 여행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는 곳이다.


벤치가 놓인 곳이 독특한 장소라면  자체가 여행이라고 간주해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벤치는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오브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벤치에 앉아 도시를 망하고 해변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기억을 남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매탄고 학생이 디자인한 파스텔톤의 벤치는 노트북을 놓을 만한 기능을 가진 간결한 벤치였다. 카페에 들어가야만 할 수 있었던 자투리 작업이 가능했고 독서나 휴식은 물론이며 기대어 도시에 몰입할 수 있는 훌륭한 벤치였다. 강남뿐 아니라 수많은 도시에 설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뚫어져라 최면을 걸었다.


도시의 치는 시민들이 가던 길 멈추고  고를 수 있는 갓길 같은 곳이다. 다양한 형태와 디자인, 기능과 예술까지 살린 벤치가 곳곳에 설치된다면 보행자와 여행자 모두에게 도시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실마리제공할 것이다. 게다가 태양광 충전기가 내장되어 있다거나 녹지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면 벤치 하나로 도시는 변화 가능성을 확보한 셈이 될지도 모른다.


수효를 자랑하는 트럴 파크의 벤치도 좋고 세상 제일 길다는 구엘 공원의 트렌카디스 기법(유리나 타일을 잘게 쪼개 붙여 무늬를 만들어 내는 모자이크 기법) 벤치 으니 쉼과 여유를 내려놓을 벤치가 보행로나 광장 곳곳에 설치되길 기대한다. 그러자고 하는 방송 같으니 놀랄 만한 변화를 미리 읽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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