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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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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Aug 22. 2023

금쪽같은 별빛

밤하늘의 호의

 여름휴가엔 별 보러 가지 않을래? 

태백에 가면 별이 쏟아지는 곳이 있대.


별 보러 가자는 남편의 말에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당신과 같이 가줄게.     

<적재  별 보러 가자 중>


라고 노랫말처럼 대답할까.


 별을 곁에 두고 태백은 왜?


라고 응수하며 별처럼 눈을 깜박일까.

고민하다 둘 다 그만뒀다. 하나는 난데없이 닭살 돋을 것 같았고 하나는 철 지난 개그 같아서.




대학 시절 설악으로 MT 갔을 때 무심코 민박집 앞 너럭바위에 누웠는데 별이 쏟아진다는 말에 걸맞은 밤하늘이 보였단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광경을 단 한 번도 다시 본 적 없어 늘 아쉽다고 말해오던 터였다.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해 재작년인가 영월 래산에 위치한 별마로 천문대에 가봤지만 주변이 밝은 탓에 원하밤하늘은 볼 수 없었다. 우린 별이 촘촘하게 박힌 하늘 보고 싶었듬성듬성한 별들 중 특정한 별자리 설명이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돔형 천장이 슬라이딩으로 열리자 머나먼 하늘로 레이저를 쏘아 정확히 짚은 자리설명하던 모습만큼은 마냥 신기했다.


하필이면 '카눈'내륙을 관통한다는 그날과 별 보러 가기로 한 날이 겹쳤다. 부랴부랴 날을 바꾸고 장소도 새로 찾았다. 호로고루성으로 갈까 하다가 당포성(고구려 시대 임진강변에 돌로 쌓은 평지성)이 별 보기에 적당한 곳이라기에 연천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강릉해변막국수와 메밀전으로 이른 저녁해결하해가 지기 전 당포성에 도착했다.


주차장  온통 목화밭이다. 연분홍빛 목화꽃 다문다문 었다. 다래송이가 되기 전의 꽃은 처음이라 그 앞에서 내내 서성거렸다. 무궁화 같기도 하고 접시꽃을 닮은 것도 같다. 반백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 미안해 목화꽃 따라 노니는 바람까지 읽어 들이며 한참을 머물렀다. 저 멀리 보이는 당포성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내려가는 중 아직 어린 남천나무가 별빛을 기다리며 가지런하게 줄지어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목화꽃과 남천나무

당포성 고구려의 전략적 요충지였다는데 지금긴장감 없이 한유한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망루에 오르니 허름해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임진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고달픔과 노곤함이 깊었던 탓일까? 풍성함을 잃고 허리조차 펴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왠지 영혼만큼은 단단해 보였다. 홀로 성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당포성 망루와 천일홍

탁 트인 시야로 핑크빛이 눈에 가득 찼다. 핑크뮬리가 벌써? 궁금한 맘에 망루에서 내려와 핑크빛을 향해 걸어갔다. 엉겅퀴꽃은 아닌데. 이파리가 달라 검색하니 천일홍이라고 떴다. 선명한 보랏빛이 맨드라미를 울타리 삼아 소담스럽게 피다. 산딸기 같아 군침도 돌았다.  빛에 들떠서인 걸음걸이가 가뿐해졌다. 개운한 걸음으로 별, 달, 바람개비 공원에 올랐다. 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와 다른 산뜻한 바람에 가을이 묻어 살랑거렸다.


별은 빛 공해가 들이치지 않는 짙은 어둠에서 선명하게 빛난다. 당포성도 별 보기 명소로 떠오른 탓인지 수시로 자동차가 드나들었으나 어두운 하늘에 떠오른 수많은 별들은 전조등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스팽글처럼 반짝거렸다.


북두칠성이 눈에 들자 나도 모르게 메! 국자. 탄성이 나왔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니 카시오페이아도 뽐내느라 정신없다. 찍은 사진을 젊은 커플에게 보여주감탄돌아왔다. 오지랖 승천인 줄 알지만 어쩐지  희열을 보여주고 싶었다.

(좌)북두칠성(우 아래)카시오페이아

하늘 한 번 바라볼 틈 없이 뭣에 쫓겨 그리도 허둥댔을까? 무수한 별들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기분이 었다. 환희인 것도 같고 슬픔인 것도 같고. 닳아 해진 마음 같은 걸 내밀었더니 어느새 별이 직조하고 염색하여 새것으로 수선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옹색한 마음에서 갑갑하고 무거웠던 생각들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대신 그 자리에 목화꽃 연분홍이 가득 채워다. 살랑이는 바람이 닿기에 '바람의 노래'를 흥얼거렸더니 멀리서 헤매던 바람까지 달려낮은 숨결로 시원한 밤을 세팅했다.  바람이 쏟아지는 하늘하늘한 당포성엔 여름이 설 자리를 잃은 것 같았다.


때로는 별이나 바람, 이름 모를 꽃이 위로가 되기도 . 무엇에붙들려 위로받때면 가슴새로운 패턴으로 발랑거리고 불같은 의욕이 지펴지곤 한다. 수많은 별과 바람과 처음 본 꽃 우리의 날개가 접히지 않도록 북돋아 줄 거란 기대감에 눈물이 찔끔 나려던 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바람의 노랠 들으며 남은 날의 기대감에 빠져들 즈음 별의 체온을 나눠 받은 것처럼 어딘가가 성결하게 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한명화 작가님의 당포성은 저와 다른 계절입니다..사진과 글이 풍성하답니다..감상하세요..

https://brunch.co.kr/@se7088/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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