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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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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l 04. 2023

뜻밖의 시야

바닥난 LPG

자동차가 무거우면 연비 절감 효과가 낮다는 지론으로 남편은 가득 주유한 후엔 거의 소진할 쯤 다시 넣지 미리 채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운전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자동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없는 나는 차계부까지 꼼꼼하게 쓰는 남편의 말이라 액면 그대로 수용했다. 전문가의 의견일 수도 있고 본인의 경험에서 얻은 기준일 수도 있는데 모르는 분야에 대해 그럴싸하게 말하면 묘하게 설득되곤 한다. 그렇게 주유해도 실수한 적 없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점도 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오래 남편과 둘이 여행길에 올랐다가 낭패를 당한 적 있다. 출발하기 전 충전하고 갔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남편의 기준에서 LPG가 넉넉했던 모양이다. 가는 길에 충전해도 충분하다기에 그냥 올라탔는데 그날따라 길도 억수로 막히고 LPG 충전소도 나타나지 않아 운전하는 남편은 간당간당한 계기판을 쏘아보며  애를 태우고 있었다.


'것봐 내 뭐랬어. 출발하기 전에 충전하쟀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나원참!'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누르며 혼자 드라마를 찍었다. 가자미 눈에 혀 차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여행길에 서로 기분 언짢아질라 겉으아무 내색않았지만 속으론 할 거 다 했다. 원래 모노드라마를 종종 찍는 타입이라 그날도...


애간장을 조리는 남편과 달리 조수석 나는 태평했다. 길 한가운데서 멈추지만 않으면 위험하진 않을 테니 그것만 바랐다. 자동차의 느낌을 잘 감지하는 사람이니 곧 평정을 찾고 길 한 가운데 차가 서도록 두진 않을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설마 길 한가운데 서겠어 싶은 맘도 컸다. 안전 불감증인지 대담한 건지 알  없으나 그땐 그랬다.


경고등은 붉은빛을 지속적으로 내쏘고  차는 양양 고속도로를 가다 서다 반복했다. 설악 나들목 즈음, 배고픈 차는 점점 빌빌거렸액셀을 밟아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나 보다. 바깥 차선으로 차를 몰아가는 남편은 제발 여기만 빠져나가자주문을 외웠으나 나들목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싸여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애를 태웠다. 주문대로 갓길쯤 다다랐을 때 시동은 푸슷 멈추며 아웃되었다. 바라던 대로 기가 막히게 멈춰 준 자동차가 고맙고 기특했다. 쌩쌩 달리는 길 한가운데서 멈췄다면 위험천만한 일이잖은가. 그날따라 차가 막힌 것이 다행인지 불운인지는 모르겠으나 맞춤하게 갓길에서 동력을 멈춘 자동차도 식겁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식이나 약속 등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하는 길이었다면 맘을 더 졸였을지도 모르나 언제 도착해도 상관없는 일이니 보험사에 전활 걸고 느긋하게 양산을 폈다.


속으로 미안했는진 모르지만 양산 안으로 들어오라니 괜찮다고 손사래 친다. 기다리다 보니 양산 속 열기가 뜨겁기도 하고 찻길이 오히려 위험할 것 같아 쭐래쭐래 걸어가 고가 밑으로 들어갔다. 그늘에 바람까지 쉥쉥 불어와 기다릴 만했다. 땀쟁이 남편도 그제야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20여 분이 지나니 레커차 한 대가 도착했다. 뒤에 자동차를 싣고 우린 운전석 옆에 나란히 올랐다.


"으마낫!

이런 시야 처음이야."


트럭 앞 좌석에 처음 타보는 기분은 언어 중추의 수용력에 한계가 따른 탓에 말로 생성하기 어려울 경이었. 높아서 시야가 탁 트이는 데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솔솔바람까지 들어오는 게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한 듯했다. 앞서 는 차량들의 숫구멍도 훤히 보이고 멀리 풍경도 파노라마 사진처럼 흘러갔다. 매일 트럭을 타는 분들이 부러울 정도로 그곳은 능교凌喬왕국이었다. 운전할 때 시야가 확보되는 걸 좋아하는 터라 세단보다 높직한 SUV를 선호하는 내가 안면근육을 실룩거리며 연신 감탄하자 운전하시는 분도 동감하며 웃었다. 그제야 남편도 한 마디 거들며 웃었다.


15~20정도 갔으려나? 짧아도 너~~ 무 짧았다. 충전소에 도착했으나 레커차를 타고 여행지까지 가고 싶은 마음에 느적느적 차에서 내렸다. 무사히 충전하고 우리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남편은 별난 경험 다했다며 머쓱해했다. 순식간에 UP and  DOWN을 경험한 셈이었으나 난 온통 레커차에서 확보되었던 탁 트인 시야만 생각하느라 아쉬운 마음이 그득했다.


솔직히 보험사를 기다릴 때는 슬몃슬몃 짜증이 올라오긴 했다. 둘이 는 여행이라지만 나름 계획이 있는데 그것도 어그러지고 땡볕에서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좋자고 떠난 길 망치자고 잔소리하는 건 아닌 듯해 감정의 진액을 묽게 풀었던 건데 뜻밖의 풍경을 만나니 참길 잘했다 싶었다. 심사를 뻥뻥 터뜨렸다면 무사무욕 같은 풍경 온전히 즐기지 못했을 것 아닌가.


멈춘 차,

처음 겪은 곤란 앞에서 그럴 수 있다 마음 쓴 게 나름 한 수였다. 여행도 무사히 마치고 이후 자동차를 싣고 가는 트럭 보일  가끔 그때 이야길 하며 웃을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가끔은 남편의 직진 스타일 때문에 요상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웃을 일이 되곤 한다. 지난겨울 부산에서 개고생 한 얘기도 한 구석에 웅크려 있다.




대문사진..네이버

  


이 글은 최명숙 작가님 글을 읽은 후 얻은 소재로 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https://brunch.co.kr/@sowoon82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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