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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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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Oct 11. 2022

국밥에 얹혀가는

부부학개론

저녁에 순대국을 먹자는 전갈이 왔다. 국물 음식에 소주 한 잔 애호가인 남편은 가끔 순대국을 찾는다. 돼지국밥, 선지국밥, 갈칫국을 비롯해 모든 국밥에 침고이는 남편과는 달리 콩나물국밥, 추어탕 정도 외엔 혀가 설레치는 일이 거의 없는 나다.


그닥 즐기지 않는 국밥이지만 웬만하면 따라간다. 한 끼라도 내 손으로 차리지 않으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매번 내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자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뭐라도 좋은 점이 있다면 예닐곱은 마뜩잖아도 따라나선다. 식솔로 묶인 세월이 가르쳐 준 아량이다. 그러다 맛을 알게 된 음식도 더러 있으니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오랜만에 갔더니 주인이 바뀌었다. 순대국은 사라지고 수육국밥집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차라리 순대국이 낫지 수육국밥이라니 혀가 실망하여 숨어들 자릴 찾았다. 자리에 앉은 남편은 부산 돼지국밥을 떠올리며 기대하는 눈치다.


어지간하면 군소리없이 먹는 타입이다보니 훌륭한 국밥이라 쓰고 이런 맛 처음이라 읽으며 남편은 연신 숟가락을 들어 올린다. 찰기 줄행랑을 친 첫술의 밥이 삐딱선을 건드렸으나 생채의 독특한 감칠맛에 팩팩거리던 속마음을 풀고 나도 국물 뜨기 시작한다.




부부는 일심동체 아닌가? 이심전심이라면서?

그럴 리가요.

한마음 한 몸이 될 수 없는 부부는 두 마음이 잘 통할 리도 없는 이다. 독자적인 인격을 가진 두 사람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뭉쳤다고 각자의 본성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때 사랑이라는 마력에 빠져 평생 함께 하기로 새긴 약속을 무를 수 없으니 한마음에 가까워지도록 토닥이며 는 것이지 데칼코마니처럼 딱 맞아떨어질 순 없는 일이다.


숱해를 같이 살다보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것 같지만 다름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분야란 걸 확실히 알아갈 뿐이다. 성격, 식성, 생각, 습관, 취미까지

'마, 치아라 캐라!'

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흔들리고 싸우며 알아가다보니 이해되인정하는 지점이 나타나는 거지 그러기 전에는 갈등이 당연한 과정이다.


부부 갈등은 터뜨리고 싸워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여 개선하자는 의미여야 한다. 팔짱끼고 눈흘기기보다 너와 나를 세워주면서 우리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마력에 빠져 새긴 약속이 빛나는 것이다. 곪은 상처, 덧난 마음이 깊어지기 전에 불거진 부분을 줄로 다듬어 둥글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한쪽이 마냥 견디는 것도, 다른 쪽이 마냥 우세한 것도 부부사이에선 지양해야 할 모습이다. 


간섭이라는 말 자체에 부당하게 참견한다는 부정의 의미가 도사리고 있으니 부부 사이라도 섣불리 간섭하지 않는 것이 갈등 유발을 줄이는 길이다. 그렇다고 잘 맞지 않는 부분을 언제까지나 안고 갈 수도 없고 툭하면 성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는 상황의 깊이를 알고 난 다음  감정을 누그러뜨린 시점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잘 싸운 예가 된다. 이것이 존중이고, 존중은 밖에서도 중요하지만 안에서 더 소중히 다뤄야 할 덕목이다. 사랑을 지나 의리에 다다른 부부에게는 측은지심이 우러날 때가 종종 찾아온다. 그 즈음 되면 존중의 마음도 깊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경지에도 이를 수 있다.




수육국밥이 탐탁지 않았지만 맛있게 먹는 한 사람 바라보며 그럭저럭 먹어주니  집 국밥이 괜찮은 줄 알았나보다. 남편은 그 후로도 전갈을 보내왔고 끼니의 수고를 덜 수 있다는 데  큰 목적을 둔 나는  번 더 국밥집에 발을 들였다. 방문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듯하여 생채 외에는 별맛을 모르겠다고 넌지했더니 이후로 가자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속으론 열두 번도 더 가고 싶었을 텐데 써억 맛있지 않다한 마디에 주춤한 것이니 오늘 저녁엔 수육국밥집 어떠냐고 먼저 전갈을 넣어야겠다.


희생없는 부부도 문제지만 지나친 희생으로 각자의 본성을 잃은 부부도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본래 나를 지 않으면서 교집합을 키워나가는 것이 부부의 길이라는 것을 국밥집에서 다시 한 번 가다듬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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