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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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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Dec 08. 2022

바람난 콧구녕

공항 가는 길에 스치는 상념

구부정하게 굽은 어깨.

뻐근함을 달래려 좌우로 돌릴 때면 우두둑 소리가  .

하얗게  머리카락 사이에서 염색의 힘을 빌린 검은색이 되레 객인 양 머뭇거리는  남자의 숱이 다한 머릿결.

환갑이 되어서도 매월 25일이면 '급여이체완료'

 쓴 6음절의 카톡으로 근로가를 고스란히 넘겼다고 알리는 그 남자.


어떤 이는 환갑인데 근무할 수 있다는 게 복이라 하고, 어떤 이는 환갑이어도 일해야 하냐며 씁쓰레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 받을 때까지 그 남자의 근로가 '급여이체완료'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자의 혀끝에선 요요처럼 반복된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연금 수령 이후까지 출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보내지 못하고 쟁여두었다. 짠한 마음이다가도 같이 보내 하루의 삼시세끼가 덫에 걸린 듯하다는 선배의 말이 흘러들 때 못돼먹은 여자가 되곤 한다.


성대를 열어 입 밖으로 나와야 할 말이 뇌에서 맴도는 일이 잦아지고, 여건이 맞지 않아 강사직을 놓은 후 단순 노동을 선택한 그 남자의 여자. 단순 노동이 마냥 단순한 줄로 착각한 여자는 무릎과 허리 통증만 얻은 채 코로나가 터지자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잃었다. 지금은 그 남자의 노동의 가를 "애썼어" 또는 "고마워" 한 마디로 날름 삼켜버리는 여자가 되어 씀씀이에 날을 세운다. 새가슴이라 재테크 앞에서 한없이 쫄아드는 여자는 적금밖에 할 줄 몰라 큰손으로 사는 생은 애초부터 가망 없는 위인이었다.


배포가 큰 사람은 못돼도 틈틈이 경비를 잘 모으는 여자는 오랜만에 긴 휴가를 얻은 남자와 떠날 여행 채비에 몹시 설렌다. 예약을 마치고 그날을 기다리는 중 일에 차질이 생겨 출입국 하는  모두 출근할 수밖에 없게 된 남자의 피로가 걱정되지만 여자의 주책맞은 콧구녕은 개의치 않고 벌름거린다.


공항 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예외없이 뻐근한 목을 좌우로 몇 번 돌리며 굳은 근육을 풀어보려 애쓴다.  두둑 관절에서 나는 마찰음은 가시를 삼킨 것처럼 여자의 가슴을 쑤신다. 냉장고 벽에 허옇게  성에처럼 마음 가장자리에 서릿발이 두둑하게 붙어 리고 또 저린다. 그 남자의 거칠어진 뼛값으로 가는 여행길에서 여자는 눈물이 찔끔  뻔했다.

 순간 찔끔 날 뻔한 눈물을 가로챈 여자의 기대는 봄날 냉이처럼  다시 쑤욱쑤욱 올라와 시리고 저린 맘을 냅다 앞지른다. 살짝 들뜬 그 남자의 기분에 얹혀가려고 여자는 잔뜩 부푼 기운을 애써 감춘다.


덕분에 여행가게 되어서 고맙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한 채 다낭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당신'이란 말이 왠지 어색해 30여 년 같이 살았어단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앞에 '고마워요'를 매달아 글로나마 남겨보는 여자.

남자는 상념 끝에 걸린 여자의 뻑지근 심정을 알고 있을.


"고마워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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