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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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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an 28. 2023

계량스푼으로 차리는 밥상

손맛은 없어도 복무는 진행 중

음식을 조리하는 일이

매일 써서 검사받아야 하는 초등학생 일기처럼 심드렁한 주부는 30여 년 가까이 밥상을 차렸어도 늘 뛰어넘어야 할 뜀틀 같다. 다듬고 씻고 고 데치고 무치고 끓이며 간 맞추기까지 분주했던 시간에 비해 식탁에 올라온 결과물은 빈약하기가 다반사다. 엄마 아내니까 어쩔 수 없이 복무는 하지만 정복하고 싶단 생각은 개미 눈알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정말이지 밥상 차리기는 사랑니처럼 성가시다.


나마 다행인 건 온라인 따라가면 무궁무진한 조리법이 올라 있어 조촐한 밥상은 마련할 수 있이다. 한 번 해봤다고 내 것이 되는  아니라서 식구들 반응이 괜찮을 경우엔 수첩에 적어 놓고 때마다 뒤적거린다. 감각에 의지한 음식한번에 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기성 조리법을 따르편이다. 


때문에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말이 들리면

'맛있거나 특별하거나 모두 어머니의 손맛비유한다면 세상 엄마가 전부 요리사게?'

반기를 들고 궁시렁거린다. '어머니의 손맛' 초대될 수 없는 나같은 엄마에게도 손맛을 강요하는 것 같아 억하심정이 생기는 까닭에서다.


우리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명예로운 훈장을 달아드리는 것이 마땅한 줄 안다. 끼니마다 차렸밥상인지신의 경지에 이른 명인이시니까.

요즘처럼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선택할 환경도 아니어서 어머니는 한 가정의 유일한 요리사로 묵묵히 조리법을 개발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차려내셨을 테다. 따라서 '어머니의 손맛' 을 입에 올릴 땐 그리움과 경외심을 함께 담아야 할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음식 만들기.

잘해봐야지 맘먹었다가도 이내 시큰둥한 결심이 되고 마는 건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나른함만 지분덕거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가 차린 밥상만도 수만 번 된다. 수만 번 차렸지만 밥상 차리기는 여전히 미궁이다. 나올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그 시절 '어머니의 손맛'에 떳떳한 일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냐마는 적극적으로 뛰어넘어야겠다는 열정이 타오르지 않는 걸 어쩌리.


간장을 주룩 붓는다든가, 고춧가루를 휘리릭 뿌린다든가, 소금 몇 줌 쥐고 취취 뿌리기만 해도 간 잘 밴 음식이 나오는 어머니들은 요리가 제일 쉽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룩. 휘리릭. 취는 고수의 정량이면서 '어머니의 손맛'에서나 볼 수 있는 간 맞춤이다. 눈과 손이 이미 요리를 위해 최적화된 상태여서 까짓거 대충도 일류 요리가 탄생하니 '쉬웠어요'가 입에 착 붙을 수밖에...


수첩에 적힌 조리법을 보며 스푼으로 계량해 요리하는 엄마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다. 주룩, 휘리릭, 취취로 요리하다가는 수십 번 간만 보다 혀가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때문에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간 맞추기를 위해선 계량스푼만한 게 없다. 계량스푼을 사용해 정확하게 간을 맞춰야 성에 차고 매번 같은 맛을 재현할 수 있어 안심인 게  내 취향이다.


기존의 조리법을 따라할 때도 조리법 설계자의 입맛과 다를 경우 나만의 정량을 찾아야 한다. 무엇을 더하고 빼야 할지는 그동안 사용한 계량스푼 횟수에 비례하는 건 당연하다. 이것도 솜씨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격다짐이런가?


'엘렌 랭어'는 《마음챙김》에서 호텔 객실 청소원들에게

'나는 지금 청소하는 게 아니라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자기암시를 제안한 후 체크했더니 체중, 허리둘레, 체질량 지수, 혈압까지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는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나는 지금 음식하는 게 아니라 가족해진 을 깁기 위한 실을 는 중이다'는 자기암시로 나도 요리  정신 상를 바꿔봐야겠다. 건강한 정신이 육체의 건강까지 바로 세운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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