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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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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Feb 28. 2023

부추 해물전의 해석

인연이란

부추는 수많은 야생화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예쁜 꽃을 피운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라서 그런가 꽃모양이 미니 백합 같다. 잎은 식용으로 쓰이고, 씨는 ‘구자’라 하여 한방 약재로 쓰인다.  번 심으면 몇 년이고 잘라먹을 수 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졌다.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어 날것으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은 부추는 부침개의 중요 단골이기도 하다.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숭덩숭덩 썰어 놓는다.


농촌 어느 마을의 넓은 벌을 풍경으로 물들였던 양파, 호박, 당근도 채를 썰어 준비한다. 매운 건 질색이라서 다진 청양은 부재중으로 처리한다. 속초 어부의 유자망에 걸린 통통한 오징어와 한국 최고의 어류학서 ‘자산어보(조선시대/정약전)’에 이름을 올린 굴도 좀 넣어 반죽을 시작한다.


처음엔 만나지 말았어야 할 것들이 만난 것처럼 서로 뻗댄다. 사는 곳이 달라서 그런가 기질이 달라서 그런가 도무지 섞이질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지려고만 다. 그러기도 잠시 밀가루 반죽이 비집고 들어가면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지 서서히 빗장을 열어간다. 


깊고 푸르른 바다와 초록이 숨 쉬는 넓은 들판을 그리워할 자유마저 빼앗겼지만 그들에게서 날 선 분노는 찾아볼 수 없다. 서로에게 기대고 안기며 금세 온순해진다. 그들은 아무런 내색 없이 새로운 시절을 갈망하며 하얀 반죽 속에서 무리 없이 뭉친다. 인간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동. 식물이지만 반죽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잘도 찾아간다.


충분히 달군 프라이팬에 한 국자 퍼 올려 얇게 면 반죽은 촤르르 소리를 내지르고 넉넉한 기름은 반죽 사이사이 작은 구멍을 비집고 지글지글 올라온다. 요리조리 미끄럼 태워 가운데까지 기름이 닿게 조절바삭하고 노릿노릿한 부추 해물전을 놓고 입맛 돋우시간이 온다.


부추 해물전에서 각각의 재료는 나다움을 잃고 스러진 것 같지만 그 맛이 골고루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었지만 각자의 의미는 결코 퇴색되않았다. 나는 너를 세워주고 너는 나의 배경이 되어 서로 존중하는 인연을 얻은 것이다.


인연은 희생과 사랑이 적절히 배합될 때  비로소 가치를 드러낸다. 하지만 희생과 사랑을 베푸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 혼자만 베푸는 것도 외롭고 슬픈 일이다. 허술한 인연까지 챙기며 살아가는 건 지극히 소모적인 일이므로 희생과 사랑을 내려놓을 곳이 어딘지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먼저 그에게로 가서 따뜻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가 먼저 나에게로 와서 희망 한 자락 나눠주는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다가는 진정한 만남을 놓칠 수도 있다. 러니 인연 맺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맺은 인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인연 앞에서는 내 가슴 온전히 내어주고 기댈 틈을 주어야 성질이 따뜻한 부추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그 사실 앞에서도 손잡아 함께라고 선뜻 나서기가 망설여진다면 자신의 프레임에 꼭 맞는지 마음속 눈금자로 가늠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주고 덜 받아도 마음이 좀스러워지지 않는다면 참다운 사람이 온 것이다. 그가 내 마음을 움직인다면 내 마음이 한없이 그에게로 간다면 섣부른 인연은 아닌 것이니 머뭇댈 이유가 없다. 인연이 다가왔다면 서로의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수시로 점검해야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삶이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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