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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Sep 06. 2023

애먼 데서 웃음보가 터졌다

종점 여행이 시작될지도

마을버스는 마을 구석구석을 들러갔다. 일반 도로가 아니다 보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주 오는 차량과 맞대하면 사이드 미러를 접고 아슬아슬 곡예를 부리며 지나가거나 여유 공간 있는 차후진하여 양보하곤 했다. 같은 회사끼린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회사 버스와 맞닥뜨리버스 기사 기분에 따라 기싸움이 일어날 때있었다.


그날은 내가 탄 마을버스 기사의 기분이 격앙 상태였던 모양이다. 평소엔 잘도 비켜주더니 그날따라 마주 오던 차량더러 물러나라며 꼼짝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내가 탄 마을버스가 양보하는 게 순리였다. 마주 오던 차량이 양보하려면 세 배는 더 후진해하므로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었.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물리적인 거리 들이대며 양보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좀 더 어린것이 양보하는 게 맞지 않냐며 우리 버스 기사가 억지를 부다. 양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상대 기사도 옹골지게 대들었다. 옥신각신 설왕설래 사이에서 승객들만 애가 탔다. 승객들은 이러다 지각하겠다며 양보하자고 구슬렸다. 우홧! 나도 출근 카드 찍으려면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야 할 판이라 마음이 급해다. 우리 기사는 부아를 삭이지 못한 채 거푸 고집을 세웠다. 상대 의 가정교육까지 운운하면서 거칠게 쏘아붙인 그 한마디.


쥐 젖만 한 게 어디서 말대꾸야. 차 빼~

 

점만 한 게 뚫린 입이라고. 니가 빼~


바늘만큼 시작된 싸움이 홍두깨만큼 커진다더니 기어코 고성이 터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나는 애먼 데서 웃음이 터졌다. 쥐 젖과 쥐 점이라는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웃음이 짜증을 대신했다. 속웃음이 터지자 배에 힘이 들어가 찢어질 것 같았다. 석에 앉은 여성도 입술을 안으로 말아 꼭 누른 채 웃음을 삼키 헛기침을 해댔다.

나와 같은 웃음 코드?

묘한 동질감에 아는척할 뻔했다. 누가 더 작은가를 두고 선택한 어휘란 날 세워 으름장 놓기엔 다소 우스꽝스러운 그 지점에서 우린 웃음보가 자극된 것이다. 어느 쪽으로 승패가 날까?


상대 차량 뒤로 내가 탄 마을버스와 같은 회사  오는 바람에 다툼은 결국  점 양보하는 것으싱겁게 났다.  점이  젖에 깔끔하게 패하만 것. 승객들 성화에 조바심과 아쉬움, 미안함을 실은 우리 차  점 기사는 전철역을 향해 불나게 달렸으나 이미 치워버린 출근 카드경비 실장에게 애걸복걸한 후에야  었다.



약속 장소 길 찾기를 검색하니 마을버스가 적합했다. 딱히 이용할 일 없어 정류장 위치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 시내버스 정류장은 도착정보 전광판과 냉난방 시설 심지어 스크린 도어까지 설치되어 그곳이 정류장이란 사실을 확연히 드러낸다. 반면 마을버스 정류장은 예나 지금이나 정류장 표기조차 없는 곳이 흔하다.


세상에 코앞에 두고도 못봤네.

높이 매단 팻말 하나 딸랑 선 열악한 정류장은 무늬만 정류장이었다.


오랜만에 마을버스에 오르니  기억에 청진기를 댄 것처럼 그날의 다툼 소리증폭되어 울렸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쥐  vs  점으로  대치했던 두 기사모습은 웃음 유발 점유율이 여전히 높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웃음이 흘렀으니까.


올라탄 마을버스 노선은 역시나 복잡했다. 덕분에 동네 투어로 이어져 시원한 버스 속에서 뜨거운 진액이 깔린 늦더위를 끔벅끔벅 눈으로 찍었다. 은밀하게 숨었던 풍경이 게릴라 기습처럼 출몰해 눈동자가 우왕좌왕 정신없었다. 꽃으로 무성한 화원이 보였다 우로 돌면 예쁜 공원이 나타났다. 하차 방송은 또렷했지만 정차하는 곳마다 낯선 이름, 낯선 분위기였다. 마치 충동적으로 떠나온 여행자처럼 낯선 동네를 바라보는데 낙낙한 하루를 온전히 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시간에서 툭 떨어져나온 양 돌연 해방감이 몰려왔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종점 여행이란  갈비뼈 안쪽을 기웃거리는 듯했. 지금껏 그런 나섬은 낯섦과 부족한 방향 감각에서 오불안감 때문에 실행하기 어려웠는데 호기심이 당겼다.


목적지도 딱히 정하지 않고 방향도 알 수 없지만 버스가 데려다주는 그곳이 목적지가 되는 종점 여행. 무엇이 나를 반길지 누굴 만날지 알 수 없는 캐비닛 속으로의 여행 같은 낯섦 오히려 마음에 여백을 줄 것 같은 예감. 첫사랑 그것처럼 잘 모르면서도 자꾸 발을 들여놓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옆구리를 간질였다. 종점 여행이란 걸 무심하게 걸치고  내딛는 가을이 오면 그건 순전히 마을버스 탓일 게다.




대문사진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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