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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Nov 29. 2022

'찌꾸'와 아버지

결혼 기념일 즈음

천연덕스럽게 옛 노래를 불러대는 '청년 트롯 가수 조명섭'의 콘셉트가 느리고 특이한 어투와 고전 의상 듯하다. 거기에 더해 2대8 가르마에 포마드를 발라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이 상징인가 본대 느끼한 인상은 아니다. 오히려 꼬마 신랑, 어린 신사 같은 모습에 웃음이 다. 방송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젊은 날이 떠올라 그리움 짙게 배어났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 사진 중에 7대3 정도로 정갈하게 가르마를 타 신사의 품격이 두드러지는 젊은 날이 있다.  시절 아버지를, 멋짐 폭발 젊은 날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가 없어 아쉽고 안타까웠.

사진 속 아버지는 볼륨이 살아 숱도 풍성해 보이고 머리에서 반지르르 윤기가 흘러 비결을 쭈었더니 '찌꾸'를 바른 것이라 했다. '찌꾸'라는 말이 우스꽝스러워 정체를 물었더니 '머릿기름'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평소 사용하지 않던 머릿기름으로  좀  라셨다.


조선 시대 왕실이나 사대부 여인들이 동기름으로 머리를 치장했던 것처럼 남성들도 '찌꾸'를 발라 머리를 단장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다. 네이버에 의뢰하니 '찌꾸'란 강원·경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포마드'의 방언이라고 설명한다. 포마드는 1950~60년대 남성들이 머리카락에 고정력과 광택을 주기 위해 사용한 끈끈한 기름으로, 여기에서 유행한 스타일을 포마드 헤어라고 일컫는단다. 요즘 젊은이들이 헤어 왁스를 바르듯 아버지 젊은 시절에도 특별한 날에는 포마드 헤어 연출을 하셨던 모양이다.




11월 초였으나 제법 쌀쌀했던 그 날, 아버지는 아침도 굶은 채 야외촬영과 결혼식에 지친 딸이 걱정되어 시댁 식구들만 북적이 폐백실로 올라오셨다. 식장 근처 가게에서 뜨끈한 호빵과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사들고는 한 입이라도 먹일까 싶어 기웃거리셨다. 뭣보다 밥이 중했던 아버지는 딸이 쫄쫄 굶고 시간에 쫓겨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이다. 찬음식이 맞지 않으니 일부러 작은 가게를 찾아가 주인께 부탁해 우유도 따끈하게 데워오셨다. 폐백 준비를 마치고 앉아 있는 중에 그 모습이 눈에 띄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돌았다.


"염색  하고 찌꾸라도 발라 예전처럼 멋스럽게 하고 오시라"했더니


" 나이에 무슨 찌꾸"냐며 그냥 갈란다고 하셨다.


 머리 그대로 단정하게 이발한 후 포마드를 살짝 바르오신 아버지는 딸이 배고픈 걸 못 참는다는 사실만 기억하는  같았다.


우유와 호빵을 들고 딸을 찾던 아버지는 혹시라도 폐백 일정에 누가 될까 멋쩍은 표정 담아 시누이에게 전하고는  얼굴도 보지 못하 급히 내려가셨다. 그날의 신부였던 딸은 식장 일정에 밀려 아버지가 어렵사리 들고온 따뜻한 음식이 싸늘히 식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1월이 호빵과 우유를 들고 서성이던 흰 머리 무성한 아버지가 다녀가신다.  '찌꾸'발라 단정하게 넘겨 빗은 젊은 날의 아버지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고 가신다. '찌꾸'로 멋을 냈던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딸은 '포마드 헤어스타일'이 눈에 띌 때면 물끄러미 바라본다. 깔끔한 인상에서 릿기름으로 멋을 낸 젊은 아버지가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열한 번째 달력을 들치면 결혼 기념일과 머릿기름으 단장한 아버지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폭신한 호빵이 만년 스탬프로 찍은 것처럼 렷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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