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호박전이 수북하게 쌓였다.딸이라면 몇 개 먹었을 텐데 며느리라차마 손댈 수 없다.
'이게 결혼이란말이지?'
불편한 마음이 서러워서둘러 집에 가고 싶은데 하룻밤 묵어야 한다는사실 앞에 신경이 각지고 뾰족해진다.
주섬주섬한쪽으로 호박전을 모으더니 몇 개 남은 쪽을 가리키며
"아침 못먹었지?호박전이라도 먹어봐."
다정하게속삭이는셋째 형님의 독심술이 놀랍고도 감사하다.하나 입에 넣고 씹으려던 순간 가스렌지고장인지 튀는 기름 방지하려고 깔아놓은 신문지에 불이 붙었다. 셋째형님은
"움마, 어쪄! 큰형님 불났어요."
소리치고는 마당으로 냅다 도망쳤다.
겁이 난 나는 문과 벽 사이로 숨어문을 당기니 삼각주 같은 아늑한 곳이 생겨 그곳에숨죽이고있었다. 생각 같아선 나가지 말고 내내 거기 있고 싶었다. 물부엌으로 소형 가스렌지가 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남편과 아주버님들이 달려오는 소리도 들렸다. 철썩거리는물수건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화재는정리된 듯했다. 셋째형님 목소리가 들리고 큰형님이 나무라는 소리가 나서 빼꼼이 얼굴을 내미는데큰아주버님이랑 눈이 똭 마주쳤다. 도망을 갔어야지 거기가 안전하겠냐며껄껄웃었다.그런 중 호박전 하나는 혀와 딱 붙어 오도가도 못하고 제자리였다.집에 불이 났는데 나몰라라 숨고 도망친 막내와 셋째는 무책임한 겁쟁이와도망자로 그 후 몇 년간마포구 구전 설화에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번지지 않고 순식간에진압된 게 다행이지어린새댁에게 낯설고 어색한 첫 설은큰 상처로 남을 뻔했다.화재로 시작한첫 명절의 복선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후부터 불편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먹는 것, 잠자는 것, 음식하는 것, 분위기등 모는 게 딸일 때와 달랐다. 마음과 행동이 엇박자를 타니 절름발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명절만 되면 자주 체하거나 두통이 일었다. 누구 하나 뭐라는 이 없건만 홀가분하지 않았다. 살아온 방식과 다른 형식들이이틀간의 짧은 시간에도 쌓인 면역을 모조리 부수는 듯했다.
(라때)만 해도 결혼은 연애의 연장이었다.적령기를 넘기지 않고결혼하는 게 수순인 줄 알았다. '결혼은 필수'에 합류했던 새댁은시댁에서 맘이 편해지는데 족히 십여 년은 걸린 듯하다.
90년대생아들딸세대들은 '연애와 결혼은 별개이며선택 사항'이라는말에 동의하는 중이다. 우선 생존이 급하다 보니 중산층에 버금가는 결혼비용부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윤택한 자본주의 안에서 성장한 그들은나를 빼기하여 배우자와 자녀에게 나눠주면 정작 자신은 경제적 부자유가 공고해진다는사실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다. 이것을 이기심이라고 정의한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옛 제도에 묶어 헐값으로 처리하는 찐 꼰대적 발언이 된다.
여성의 경우는 본인의 성장과 기회가 눈앞에 보여도 육아와 맞바꾸며 포기하는 과정이 속출한다. 상대의 집안이 오래도록 지켜온 풍습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시월드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새로운 가족과의 불편한 관계를비껴갈 수 없기에90년대생여성은 비혼, 비출산이 기본값이란다. 그런뜻에서 《가족 종료 ㅣ 사카이 준코》가 말하는 시사점을 흘려들어선 안 될 것 같다.
불편을 감수한 며느리로도 살아보았고훗날시어머니와 장모로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질지모른다. 어른으로서젊은 그들의 삶을 채워 줄 그릇이 되지 못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솔직히 난감하다.용기를 내어 가정을 꾸리는 그들에게 한없이 박수를 보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기성의 위치가 그저 서글프다.
결혼 문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없이 부담, 감수, 불편을그대로방치한다면젊은이들의 결혼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때문에 결혼 풍습을 비틀었다고 사사건건 개입하는 극성 부모가 되기 보다는 그들의 결정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차분히 들어주고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게 기성 세대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