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는 나의 아낭케
홈카페 메뉴는 플랫 화이트
서툴고 겁 없고 초록물이 흥건하던 시절에는 커피가 내 삶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쓴맛이 도드라지는 커피를 왜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직장 생활할 때도 차 마실 일이 생길 때면 율무차를 집어 들곤 했다. 고소하고 달달하니 커피보다 부드러운 풍미로 목 넘김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주 간혹 근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졸음이 쏟아질 때면 밀크커피를 뽑아 들긴 했으나 반도 마시지 못한 채 싸늘히 식어 개수대로 떠밀려 나갔다. 설탕과 크리머가 사전 조율에 실패한 것처럼 혓바닥을 공략하는 건 씁쓰레한 맛뿐이었으니까. 그저 커피는 내게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갖고 나니 세상 모든 음식이 내 앞에 줄 서기를 꺼리지 않았다. 음식이라고 이름 붙은 것 전부가 레이더에 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현상은 편식으로 단련된 몸이 거부할 법도 한데 모든 걸 수용하겠다는 의지로 달려와 당황스럽기도 했다. 십수 년간 특유의 누린내 때문에 단절하다시피 했던 소고기와 돼지고기, 사골 국물까지 뒤처질세라 달려들다니 잉태의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다. 마음 내어 굳이 찾은 적이 없던 쓰디쓴 커피도 목구멍을 향유하겠다고 성화이지 않던가!
'허허! 이 무슨 혁명이란 말인가?'
카페인의 대명사인 커피는 칼슘과 철분의 흡수를 방해하여 태아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쯤은 예비 엄마도 알만한 이치기에 먹고 싶어도 참아내고 견뎌냈다. 그러다 의사 진료가 있던 날 커피가 먹고 싶다고 간곡히 알렸더니 하루 세 잔 정도는 태아에게 해롭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 잔씩이나! 오호, 이 무슨 은덕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치 세 잔을 마시는 건 어쩐지 태아를 생각해 절제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가냘픈 생명에게 카페인부터 가르치는 비정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정말이지 까무러치게 먹고 싶은 날에만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나를 단속했다. 한 잔의 커피는 매정한 양이었지만 엄마니까 버텨야 했다.
'아뿔싸, 커피가 이렇게나 강렬한 맛이었다니...'
한 잔의 커피는 그야말로 개미 누액만큼이나 적은 양이었다. 홀짝거리며 아껴 먹어도 커피잔은 금세 민낯을 드러냈고 급기야 혀를 쭈욱 내밀어 바닥을 핥아야만 했다. 전엔 알 수 없었던 묘한 맛으로 다가온 커피는 마치 오래 전부터 친밀한 사이였던 것처럼 혓바닥에 착 달라붙어 아양을 떨었다. 나에게 흡족한 시간을 제공하는 만큼 아기에게도 축복의 맛일 거라 위로하며 마시다 보면 몸이 공중 부양하는 환상까지 일었다.
그때 마셨던 커피가 투명한 유리병에 알알이 들었던 테이스터스 초이스 알갱이 커피. 과하지 않지만 밋밋하지도 않은 품격을 갖춘 고상한 맛. 거기에 '프리마'라는 가루 제품과 설탕을 입맛에 맞게 배합하여 끓인 물을 부어주면 담갈색 밀크 커피가 찻잔의 모양을 따라 사르르 녹아내린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믹스커피나 시럽 추가한 카페라테 정도일 것이다. 그게 어찌 그리 야릇한 맛으로 다가오던지.
첫 아이 임신 후부터 맛을 알게 되고, 즐기기 시작한 지 30여 년이나 됐지만 세련되지 못한 나의 입맛은 아직도 아메리카노와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테이스터스 초이스에서 간편한 맥심 모카골드로 갈아탔다가 김연아 커피로 불리는 화이트골드에 한동안 입을 맡겼다. 커피는 자고로 3박자 커피가 신앙이라는 아줌마 레시피를 오랜 기간 고수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달달함이 덜한 캡슐 커피 플랫 화이트에 머물게 되었다. 플랫 화이트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즐겨 마시는 커피란다. 에스프레소에 벨벳처럼 고운 마이크로 폼 스팀 밀크를 더하여 만든 것으로 카프치노나 카페라테와 같은 부류지만 우유의 질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카푸치노나 카페라테는 커피 캡슐과 밀크 캡슐을 따로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플랫 화이트는 캡슐 한 개만 내려도 되니 간편하고 거품 입자도 부드러워 그럴싸하다. 우유 거품이 부풀어 있지 않고 평평한 모양새라는 의미의 '플랫(flat)'과 흰 우유를 의미하는 '화이트(white)'가 결합하여 탄생한 이름 '플랫 화이트'.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중 플랫 화이트가 단연 돋보인다. '은은한 곡물향과 감미로운 거품의 완벽한 밸런스가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아침마다 거품이 살짝 얹힌 플랫 화이트를 마주할 때면 혀에서 8분 음표가 통통 뛴다.
길을 거닐다 카페 앞을 지날 때면 그윽하게 풍겨오는 커피 향에 콧구멍이 동전만큼 커진다. 커피 향이 코 끝에 걸릴 때면 양껏 들이켜려 호흡이 깊어진다. 커피 마니아나 즐기는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는 싸구려 입맛인 내게 아직도 쓴맛일 뿐이지만 라테의 맛과 품위는 언제까지라도 향유하고 싶은 커피의 한 장르다. 우유의 내조로 에스프레소의 고유한 맛이 중화된 커피지만 라테는 나에게 에너지며 열락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눅눅한 몸을 일으켰을 때 한 잔의 커피는 싱싱한 기운을 제공한다. 수면 장애로 뒤치락거릴 때가 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날이 밝으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반복하다 잠이 들곤 한다.
커피는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자, 꿈틀거리게 하는 활력으로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건 내일 마실 한 잔의 커피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잠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예민한 성격과 잦은 위장 장애 탓에 지금도 한 잔의 커피에 갇혀 사는 신세다. 남들처럼 두 잔이고 세 잔이고 생각날 때마다 마셔대면 신경이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위장장애와 수면장애가 수시로 나타나는 나에게 커피는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이 작은 행복까지 뺏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커피 먹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한 잔의 커피밖에 용납되지 않는 숙명을 배반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예사로운 시간을 유다르게 만드는 예술적인 맛.
거부하는 향이 부지기수인 내 후각을 유혹한 향. 생각만으로도 선명한 웃음이 번지고, 의욕을 흔들어 깨우는 한 잔의 커피는 맛과 향 그리고 웃음과 의욕을 엮은 앤솔러지다.
오늘도 정량을 비운 커피잔엔 내일 마실 한 잔의 커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말라버린 거품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