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먹어야 한다고 자꾸 등을 떠밀던 그의 말에넌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나섰지. 제일 가까운 설렁탕 집으로 향한 넌 식사가 나오기 전 못난 생각에 마음이 찢기는 걸 수습하지 못하고 그대로 놔두었어.
밥 한 술 떠 넣더니 굵은 모래알이 우두둑 씹히는 표정이었어. 목구멍은 차단기가 내려온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겠지. 떠 넣은 밥 한 술 입에 문 채 식당을 나온 넌 그마저 뱉어내고 뚜두둑 굵은 눈물만 떨궜어.살아온 시간 중 가장 아픈 시간을 견디는 네가 안쓰러웠지.
수면제를 맞고 CT촬영을 마친 어린 딸은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지. 딸의 머릿속도 잠든 모습처럼 순탄하길 바라면서 넌 엉킨 눈동자를 끝내 감추지 못했어. 수면제를 맞은 터라 그대로 두면 깨어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 말에 자극을 줘야 하는 두 시간 간격조차 너무 길어 초조한 모습이 역력했지.
'너 엄마잖아. 왜 그러고 섰어, 뭐라도 해봐야지.'
재촉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왕왕거렸나 봐. 해줄 게 없는데도 뭔가 해얄 것처럼 넌 딸 주변을 서성거렸어.
응급 의사는 이미 퇴근한 신경외과 전문의를 호출했으니 곧 CT촬영 결과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전달했지. 그러면서
'일단 뼈 골절은 아니다. 다만 뼈와 두피 사이 물이 괸 곳에 혈액인 듯한 부분이 보여 어쩌면 응급 수술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고 간단하게 설명을 마쳤지. 듣자마자 풀썩 주저앉은 너에게서 극심한 두려움을 보았단다.응급 의사는그 말만 남긴 채 무심하게 자리를 떴지.영혼 없는 설명에 화가났지만 그가 눌러 앉히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하고 넌 어깨만 들썩이더구나.
아들이 잠시 물 마시러 들어간 사이 오빠 자전거에 올랐던 딸은 경사로로 내려가는 자전거를 멈추지 못했던 거야. 아직 어려서 브레이크를 잡을 줄 몰랐던거지. 쏜살같이 내려간자전거가 주차장 기둥에 부딪혀 넘어졌다는 이웃 아이들의 증언으로 상황을 짐작할 뿐 넌 정확한 사정을 알지못해 답답했지. 떠나갈 듯 울며 들어온 딸아이를 씻기다 머리에서 손바닥만 한 물집을발견한 넌 즉시 딸을 안고 응급실로 내달렸지.
간격을 두고 딸을 깨우며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무량억겁이었겠지.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고통이 뭔지도 처음 알았을 테고. 의사가 도착해 입을 여는 순간까지 수없이 자책하고 기도하며 흐르는 눈물을 삼키던 넌 강력한 적과 마주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봤어.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맘도 간절했을 거고. 하루 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미친 듯이 괴로워하는 널 안아주고 싶었단다.
다행히 혈액은 고이지 않았고 뼈도 이상 없으며 1~2주 정도 지나면 고인 물은 사라질 테니 지켜보자는 의사 소견을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지. 혹시 그 사이 구토나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거나 균형감각에 이상을 보일 경우 재빨리 데리고 오라 말한 후 퇴원을 허락한 의사에게 넌 연신 고개만 꾸벅거렸어. 1~2주 더 기다려야 하는 불안이남았지만 응급 수술을 피한 것만으로도 힘든 시간이 보상되었던모양이야.
딸은 아프다는 소리 없이 그 시간을 잘 견뎌냈고 날이 갈수록 물집은 작아지고 또 작아졌지. 그때서야 네 미각은 조금씩 회복되어가더구나.
하늘이 노래야 한다
콧구멍으로 수박씨가 나오는 아픔이다
아기를 낳기 전 들었던 말들을 실제로 경험한 것도 모자라 생살을 찢기고서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을 테지? 산통 이후 온전하게 엄마가 된 줄 알았지만 '그 너머'엔 네가 알지 못했던, 무한히 강해져야 하는 엄마가 또 있었던 거야.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너의 안위 따위는 얼마든지 내어 줄 수 있는 눈부신 용기를 알게 되면서 넌 다시 한번 엄마다운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거지. 네 마음의 낯선 용기, 있는지 조차 몰랐던 숨은 용기로 너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었던 거야.
딸의 사고가네 마음을 바꾸었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로서 너의 길이 새롭게 닦인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단다.
'절대로 무너져선 안 되는 견고한 마음이어야 해, 언제든 충분한 엄마여야 해.'를
다잡으며너는 '네 안의 더 강한 엄마'를 만들어 세웠지. 엄마 품은 그래서 무적의 요새라고 하는 건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