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정말이지 비호감이었어요.
거무튀튀한 모습도 촌스러웠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눈치 없이 따라붙는 것도 볼썽사나웠어요. 그런데 말이죠. 주위엔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제법 많았어요. 남자 중에도 그에게 호감 갖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요. 그에게 쏠리는 관심을 납득할 수 없었죠.
그런 그가 저를 꼭 챙기며 따라붙는 거예요. 틱틱거리며 밀어내도 달라붙는 건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입맛도 서로 달랐죠.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씁쓸한 맛을 달고 사는 그. 아니 어떻게 입맛까지 상극일까? 다른 건 다 양보할 수 있겠는데 그것만큼은 또 놓지 못하겠다 하더라고요. 좋아한다면서 입맛 하나 맞춰주지 못하나? 불만 가득한 입술을 샐쭉거렸죠.
예서 제서 인기도 많은데 웬만하면 그쪽으로 가볼 일이지 왜 자꾸 따라다니냐고 말끝마다 툴툴거렸죠. 어려서 그랬나 봐요. 좋다고 따라다녀도 고마운 줄 모르고 상처 주는 말만 쏟아냈으니 서운하기도 했을 테죠?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어쩌겠어요. 제 이상형엔 손톱만큼도 가깝지 않은 걸요. 사회 초년기 땐 이상형이 중요했거든요. 지금이야 뭐 수더분하면 다 수용하는 편이지만요.
결단 없이 지지부진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차라리 거무튀튀에게 솔직히 말하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혹여 그가 상처받을까 고민도 했지만 나도 중하니까요.
"흠!
아침에 눈뜨자마자 문득, 양치하다 문득, 기운 없는 날 문득, 맛있는 거 먹다가 문득, 어쩌다 문득처럼 당신은 나의 '문득'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질 않네요. 당신은 내 안의 우선순위가 아닌가 봐요. 당신을 문득 떠올리는 사람에게로 이제 그만 눈을 돌리시는 게 어떨까요."
자존심 상했던 모양이에요. 제가 어떤 방식으로 대해도 화내는 법 없이 곁을 지키더니 떠나 달라는 통보 이후론 멀리서만 바라보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이별은 아픔이라잖아요. 못 돼먹은 저란 거 알지만 납득할 수 없다면 정들기 전에 갈길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건 잊지 않았죠. 워낙 인기가 높아서 어디서든 잘 지낼 거라 믿었어요.
이후 저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쉽진 않았지만 첫아이도 임신하게 됐어요. 심하진 않았으나 입덧이 지나간 무렵이었을 거예요. 소식조차 없던 거무튀튀가 제 앞에 다시 나타난 거예요.
당황스러웠어요. 난데없는 제 마음이. 그에게 자꾸 쏠리는 제 마음이. 한마디로 소갈머리 옹졸한 위인인 거죠. 떠나 달라고 무지막지하게 대할 땐 언제고 이제 와 마음이 끌리다니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몹시 혼란스러웠어요. 다시 나타난 그는 빤닥수처럼 제 마음을 알아채고 허락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어요. 매일 제 주변을 맴돌더라고요. 그러나 제가 임신한 걸 알고 섣불리 다가오진 못하데요. 안 본 새에 눈치가 좀 늘었더라고요. 이젠 저도 가정을 이뤘고 곧 엄마가 될 사람이라 마음을 함부로 흘려선 안 된다는 사실 앞에서 갈등만 피워 올리고 있었죠.
"아! 어쩜 좋아
이 무슨 운명이라더냐."
마음이 눅눅했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은 지그재그로 오갔어요. 태어나 처음이었죠. 이런 걸 찐 사랑이라고 하는 걸까? 싶은 마음도 처음이었어요. 예전엔 그의 진가를 왜 몰랐을까? 안타까운 마음만 하루하루 늘어갔죠. 누구에게든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어요. 일단은 남편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죠.
눈길도 안 주더니 왜 하필 지금이냐며 남편은 난감해했어요. 그래도 제 처지를 존중하겠다고 말하더군요. 고마웠어요. 남편의 반응을 알아챘는지 거무튀튀는 더 과감하게 다가왔고 제 맘은 거의 녹초가 되어갔어요.
결국엔 제게 조언을 잘해주시는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어요. 그분은 지혜로운 해답을 주실 거란 믿음이 갔거든요.
사정을 듣고 난 선생님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냐고 물었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그런 경우를 보긴 했으나 흔한 상황은 아니라더군요. 매일 만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향을 권했어요. 그 정도만 해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어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무튀튀를 불러들였어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고요. 두 손 꼭 맞잡으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어요.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못 돼먹은 과거를 회복하고 싶어서 아끼고 또 아껴줬어요. 그 후로도 미치도록 만나고 싶은 날엔 그를 불러들였죠. 마음 같아선 매일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남편의 걱정도 헤아려야 해서 무던히 절제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아, 글씨~!"
태어난 아들 피부톤이 그를 쏙 빼닮아 거무튀튀한 거 있죠. 그래도 사랑스러웠어요. 거무튀튀한 커피를 마셨어도 요 녀석이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지 뭐예요. 임신하고서야 알게 된 커피 맛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