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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Aug 29. 2023

연필 깎던 아버지

나를 떠받치는 힘

"아부지 좀 빨랑빨랑 깎아주면 안 돼요?"

"에휴 증말 기계로 깎으면 훨씬 빠를 데..."


이 소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연필깎이 하나 사달라고 에둘러 생떼거리 쓰소리다. 분명히 알아차렸음에도 아버지는 모르쇠로 나온다. 급하게 깎으면 비뚤어진다고 기다리라는 말만 고는 묵묵히 연필을 깎는다. 딸이야 급하거나 말거나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연필에만 집중해 얇게 저며나가면 나무밥이 톡톡 떨어지는 사이로 까만 연필심이 걀쪽하게 드러다. 기계보다 손으로 깎아야 덜 부러진다며 손수 깎는 걸 고집했던 아버지는 미제 연필깎이를 구하기도 사주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연필심에 붙어있던 육각형 나무살을 결 따라 깎아내는 아버지의 손길은 장인의 것처럼 진지하고 평화로웠다. 루코 단면도를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연필 쥔 왼손 엄지로 칼등을 거나 꼬부라진 나무밥이 신문지 위로 떨어졌다. 소복하게 쌓인 나무밥에는 아버지의 공들인 시간도 함께 쌓였다.


나무살이 깎여나가는 사이로 단단한 흑연이 속살을 내민다. 길게 드러나면 곧잘 부러지므로 짧다고 생각되는 것보다 약간 더 길어야 한다. 있는 힘 다해 꾹꾹 눌러쓰는 딸에게 맞는 길이를 찾아내야 한다.


360도 돌아가며 연필심을 갈아낼 때도 마찬가지. 뾰족해도 뭉툭해도 불편하기 때문에 딸의 연필 사용 습관을 알지 못하고선 제대로 갈아낼 수 없다. 뾰족과 뭉툭의 중간 사이를 유지해야 공책이 찢어지지 않고 딸의 취향도 존중할 수 있어 여간 공들여야 하는 작업이 아니다. 연필이 딸의 손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려면 아버지만의 특별한 알아챔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깎은 연필은 제일라사(그 옛날 우리 동네 양복점) 맞춤복처럼 손에 딱 들어맞았다.


연필이 손에 잘 쥐어지려면 움푹 파인 곳 없이 고르게 깎여야 한다. 꼭 쥐고 쓰느라 가운뎃손가락 첫마디가 눌리는고르지도 않으면 오죽 아프겠는가. 아버지가 깎아주지 못하는 날 접이식 검정 도루코 칼로 깎아봤더니 역시 무리였다. 울퉁불퉁 삐뚤빼뚤은 기본이고 연필심을 자꾸 건드려 중간이 움쑥 파이는 등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연필깎이 타령 한 번 더 했으나 엄마도 못 들은 척하니 결국 늦게라도 아버지가 깎아놓길 바라며 잠이 들곤 했었다.


아버지가 연필 깎는 시간이 오면 집에서도 교실 냄새가 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온갖 문구류의 향내가 훅 끼쳐왔던 것처럼. 공책이나 지우개 냄새도 힘을 보탰을 텐데 연필 몸내가 가장 진하게 코끝을 장악했다. 카페에 들어서면 커피 향이 훅 달려들 듯 교실 특유의 냄새는 연필이 다 책임졌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사파이어'와 '흑진주' 연필이 가장 진한 심을 자랑했고 가장 진한 몸내를 뿜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중에게 물자절약을 요구하던 시절엔 몽당연필을 만들어  ''(칭찬받을 때마다 색종이에 찍힌 엄지손톱만  무궁화 '상'도장을 받아 포도송이를 완성하면 공책이나 연필을 상으로 주었다) 도장을 모을 수 있었다. 연필 꽁무니가 두꺼우면 좀 아내고 얇으면 신문지를 돌돌 말아 볼펜 빈 몸통에 끼워 훌쩍 키를 키우면 멀쩡한 연필이 되곤 했다. '상'표 받으려고 새 연필을 세 동강 내어 몽당연필로 만들어왔던 친구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그 애의 기똥찬 잔머리가 부러웠던 것도.


미술심리치료 수업에서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을 한 자루씩 나눠줬다. 사용하고 나니 뭉툭해져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처럼 깎아보았다. 역시 서툴다. 힘 조절이 틀어지니 움푹 파여 못난이가 되었다. 어른이라고 다 연필을 잘 깎는 건 아닌 듯하다. 연필의 성질과 사용할 사람의 편의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칼은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 고른 길을 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내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건, '방망이 깎던 노인'이 고객의 안달에도 뜸을 들였던 건 사용할 사람의 편의를 충분히 고려했던 마음씀이었다.


또박또박 필기하며 새로운 배움에 눈 떠갈 딸에게 연필이라도 정성껏 깎아주고 싶었던 아버지.

연필과 사투를 벌이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할 때마다 조막만 한 여린 손에 굳은살이 생길까 염려됐던 아버지.


오랜만에 연필을 깎다 보니


'아버지의 진지한 손끝에서 나온 예술적인 의식이 나를 떠받치는  었구.'


는 생각에 다시 한아버지의 좋은 기운을 야물딱지게 챙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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