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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Aug 11. 2023

꽁당보리밥

엄마의 보리밥 도시락

'꽁당보리밥'은 '꽁보리밥'의 경상도 방언이며 '꽁'은 '전부'라는 뜻이다.



칼국숫집엘 갔더니 꽁당보리밥에 열무김치 넣어 비벼 먹으라고 먼저 주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은 고소한 들기름 쳐 정도 먹어보았다. 기름 덕분에 식도를 따라 내려가긴 했지만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검사를 다. 보리 외 잡곡이 30% 섞인 도시락이 기본이어서 검사가 끝나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쌀 세 톨 보리 한 톨'이라는 지침에 꼭 맞지 않아도 보리만 섞이면 무사히 도시락을 먹게 했다. 갓 부임해 온 앳된 선생님이어서 규칙이나 벌칙에 너그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 선생님이 대신 도시락 검사에 들어왔다. 주임 선생님쯤 되었던 것 같다. 반 친구들 도시락을 보며 기겁을  선생님은 들고 다니몽둥이로 교탁을 내리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오늘은 봐주지만 불시에 다시 오겠다며 이를 앙다물더니 담임 선생님을 불러 복도나갔다. 아마도 모진 한 소리  않았을까? 


그때부터 담임 선생님도 철저하게 검사하겠다엄포를 놓았다. 상황이 그러하니 자녀에게 쌀밥을 먹이고픈 엄마들은 도시락 윗부분엔 보리를 깔고  쌀밥 천지인  도시락을 싸줬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은 사실도 분명 알았 텐데 마음 약하여  모른 눈감아준 것 같다. 


그날도 도시락 검사를 하는 중 주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활짝 열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다시 셨다. 놀란 우리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눈치 본 애들은 일단 수상쩍은 거다. 사실 그날 내 도시락도  도시락에 가까웠다. 전체적으론 '쌀 여섯 톨에 보리 한 톨'정도고 윗부분 '쌀 세 톨에 보리 한 톨'처럼 싼 도시락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혼식을 싸간 날은 남겨오기 일쑤니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엄마의 대안이었다. 소싯적 보리밥은 입맛 까탈스러운 내게 흔쾌한 식감은 아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 도시락 때문에 부피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걸릴까 봐. 저 무시무시한 몽둥이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릴까 봐 핏기싸악 빠져나가는 느낌이었. 


내 앞에 앞에 남학생이 딱 걸리고 말았다. 보리가 과하다 싶었는지 숟가락으로 파본 것이다. 에서 하얀 쌀밥이 나오자 주임 선생님 눈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날 네댓 명쯤 걸렸는데 적당한 보리 배치로 정상적 보리밥처럼 싸간 내 도시락은 무사히 통과되었다. 아마 나 말고도 심장이 소리 없이 무너진 들이 분명 더 있었을 텐데 무사했다.


그날 걸린 애들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복도에서 도시락 들고 벌을 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으나 걸리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양심상 도시락은 다 먹을 수 없었다. 도시락 뚜껑을 완전히 열지도 못한 채 먹으려니 체할 것만 같았다. 돌아보니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먹는 애들이  있었다. 그날의 점심시간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낯을 익히다 보면 정이 들 만도 한데 보리밥은 당최 들이기가 힘들었다.


전쟁이 휘몰아치고 간 자리에 베이비붐이 일어 인구 증가 사태가 벌어지자 쌀 부족 현상이 심각했던 시절의 얘기다. 1960~70년대 후반까지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 주도로 혼분식 장려운동이란 걸 시행한 시절에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보리밥이 달가울 리 없다. 탱탱해서 잘 씹히지 않는 보리밥이 영 입에 맞지 않았지만 정부 지침이라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 한숨으로 치환되는 나날을 보낸 탓이다.


고혈압, 당뇨 예방 및 장 건강에 좋은 영양식이란 이유로 지금은 쌀보다 잡곡이 비싸다.  역시 잡곡을 섞지만 현미나 흑미, 조, 콩 정도지 보리는 생략한다. 보리알이 미끄덩거리며 입안에서 겉도식감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견고했던 도시락 검사가 생각나서다. 뭣보다 혀와 목구멍의 거절 의사가 확실한 까닭도 한몫 한다. 오늘 꽁당보리밥에 손을 통크게 보상하기 위한 마음에서다. 명색이 건강 밥상의 대표 주잔데 오랜 세월  홀대를 잠연히 견뎠으니까.


보리밥 먹은 사람 신체 건강하댔으니(꽁당보리밥 노랫말 일부) 오늘은 덤으로 건강을 챙겼다. 칼국수까지 먹었으니 그 시절로 치자면  혼분식 장려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셈이 됐다.


지금이야 학교 급식이 생겨 도시락이 사라졌지만 그 옛날 도시락을 싸야 했던 엄마노고는  나간 고생보다 한 위였을 다. 입시 땐 저녁 도시락까지 싸야 했고, 입맛에 딱 맞는 반찬으로 알차게 구성야 했으니 아침마다 말라비틀어진 검불처럼 신경이 퍼석퍼석했을 다. 애가 두셋이라면 서너 개씩이나 도시락을 싸야 했던 엄마. 그런 중에 보리까지 의무적으로 어야 한다는데 입 밭은 애는 못 먹겠다 남겨오니 편법까지 동원해 술이라달게 먹이려 했던 엄마의 심적 고충. 모습이 꽁당보리밥 위에 아릿하게 떠오른 날이다.




대문사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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