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반에서 껌 좀 씹는다는 두 친구가 학생주임 호출을 받았다. 평소와 다르게 겁에 질린 두 친구는 교무실로 향하기 전 나와 또 다른 친구에게 가방 안의 담배를 숨겨달라 부탁했다. 그것까지 걸리면 끝장이라고 말하는 간절한 눈빛이 맘에 걸렸고 쌩하니 교무실로 가는 통에 두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새가 없었다. 두 친구에 대한 견고한 짐작 때문에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내 관념을 따지기 전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요동치는 심장은 어찌저찌 동여매도 떨리는 손까지 제압할 순 없었다. 탄로나면 우리까지 엄벌을 받을 거고 짧은 인생에 남을 흠이 두려워 그 순간이 불안했다. 나 몰라라 하고 말까,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청소 이후라 아무도 없으니 교실 구석진 곳에 숨길까도 했지만 겁먹은 우리는 교실까지 검사할까 봐 우왕좌왕하다가 교복 허리춤에 하나씩 끼고 집으로 가는 길 인적 드문 곳에 버리자고 합의했다. 틈이 생기지 않게 힘주고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체육 선생님과 맞닥뜨린 우린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으나 어설픈 007 작전은 무사히 성공했다.
이후 두 친구는 반성문과 청소 벌로 잘못을 대신했고 무사히 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그것을 나와 다른 친구의 덕이라 생각했는지 예쁜 손글씨로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를 써 코팅한 책받침도 선물하고 직접 뜨개질한 목도리도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일명 날라리로 통하던 두 친구는 평소 말도 거칠고 욕도 거침없이 내뱉던 터라 담배 사건이 아니었다면 말 한 마디 섞지 않고 학년을 마쳤을지 모른다.
집안 사정이 두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걸 듣고 나서는 어린 마음에도 그들이 엇나간 이유가 이해되었다. 술술 털어놓던 그들의 치부를 들으며 이리 솔직해도 되나 오히려 내가 머쓱해지기도 했다. 그들은 그동안 연약한 자신을 감추고 싶어 센 척했을 뿐이지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열다섯이었다. 수줍어할 줄도 알았고 웃음기도 많았다. 거친 입이 맞나 싶을 만큼 감성적인 시 구절도 툭 내뱉으며 대화 내용을 풍부하게 거들었고 딱한 사정에 마음을 나눌 줄도 알았다.
학년을 마치며 두 친구는 모범생이 곁에 있어 든든했다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눈가가 촉촉했다. 같은 반이 아니어서 아쉽다며 우리 반으로 자주 놀러와도 되냐고 물었다. 고등학교가 달라지면서 연락이 끊긴 지금은 기억 속에서나 가끔 꺼내보는 친구들이다.
두 친구를 알게 된 후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길에 전과 다른 생각이 기록되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겪어보기도 전에 함부로 판단하고 차단했구나, 그 작은 세계가 다인 줄 착각했구나, 열다섯 크기 만큼의 궁리가 서게 된 것이다. 겉모습, 말투, 행동양식에 내 잣대를 들이대 재단하고 나면 상대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유 작용은 알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편견을 거두기 시작한 것 같다. 짐작이 오류로 드러난 일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있었다.
그 일 이후로 그들의 모서리가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졌다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조금이라도 채워졌다면, 아픔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면
정말 다행이다.
그들 덕분에 살아오면서 다양한 관계가 두렵지 않았고, 나누고 선긋고 벽을 치는 마음을 거둘 수 있었으며, 겉으로 드러난 차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나도
참 다행이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예감도 덩달아 따라오는 두 친구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띄운다.
"요것들아! 잘 지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