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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May 30. 2023

환타의 무게는 제로

신체검사

위장과 친분을 지 못한 채 태어난 문제적 인간이다 보니 적은 양의 음식으로도 포만감이 충분해 먹깨비로 환생하고픈 소망이 있다. 음식을 밀어 넣으면 물속에 처박힌 드라이아이스처럼 뱃속이 부글부글 난장 일으키니 어쩔 수 없이 '쪄죽따'에 합류해야 한다. 나친 권유에 억지로 먹은 음식으로 단단히 탈이 나기도 하니 산해진미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대체적으로 투입보다 방출은 편이라 부실해 뵌단 소리가 늘 따라다닌다.


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실시하는 신체검사는 콕콕 쑤시는 편두통만큼이나 달갑지 않았다. 다른 건 어영부영 넘어가지만 체중계에 올라서는 일은 항상 께름칙했다.


그나마 얼굴이 미어터질 듯 통통해서 여름이 되기 전 나의 체중은 만천하에 드러날 일이 절대 없다. 그러나 학창 시절 봄날에 실시하는 신체검사는 실체를 까발리는 구심점이 되곤 다. 드러날 체중에  근이라도 더하기 해보려는 수작으로 생각해 낸 것이 환타 한 병이다. 환타의 무게만큼이라도 확보하려는 애절한 노력이다.


매점까지 달려가 환타 한 병을 들이붓고 잽싸게 돌아오는데 just one ten minutes.

확실한 증량이 될 거란 기대는 순전히 잘 굴린 잔머리 때문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서에 따르면 2교시 끝난 시간이 거사 치를 타이밍이다.  시간은 위장에서 초기화가 일어나는 타임이라 평소에도 도시락 까서 반타작하는 적절한 틈이기도 해 환타 한 병 정도는 수월하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2교시 후 매점으로 후다닥 달려색병을 쳐들고 체중 보태기에 몰입하는데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목적과 의무가 달린 환타는 평소 목마름을 대신하던 달큰한 수액이 아니라 허접한 음료에 지나지 않았다. 쌀쌀 아픈 기운이 산발적으로 왔다가 스러져가는 뱃속의 질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현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끝내 환타 한 병을 마시고 트림까지 뱉었지만 거북. 교실로 돌아오는 길엔 달구지가 움쑥움쑥 팬 진흙탕을 굴러가는 것처럼 뱃속이 꿀렁꿀렁 요동을 쳤다.


3교시 중간 무렵 드디어 체중계가 있는 교실로 이동하란다. 실내화를 질질 끌며 팔려가는 소처럼 걷는 애들은 내 마음을 컨트롤+C-컨트롤+V 게 분명하다. 그간의 생기 발랄은 리끼리한 혈색으로 덮여 처지고 갈라진다. '지랄 맞은 신체검사'란 생각에 다다랐을 때 뱃속이 참았던 요동을 꾸울렁 내지른다.

'아직은  품어야 하느니라. 끙...'


전혀 이상 없는 것들이 체중계 앞에서 망설이는 꼴이라니 재수 없다.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안심이라는 듯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휴! 내지르는 한숨꼴사납다. 다음으로 무게가 좀 나가는 친구가 체중계 앞에서 얼굴이 벌게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선생님은 '애들은 가라'는 몸짓으로 체중계를 막아섰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에 편질 읽노라"

가르치며 몸소 열창하셨던 까칠한 음악 선생님의 PQ(인간성 지수)최고조에 도달했을 때 내 차례가 왔다. 어째 선생님은 일어나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이게 아닌데, 나도 선생님의 휴머니즘이 필요한 처진데.'

"마지막이지? 얼른 올라가"

냉정한 반응정신이 아득하다. 

'그래,  환타를 마신 몸이니까'

살그머니 올라간 체중계는 야속하게도 평소 체중과 똑같은 결과를 밀었다.

'아니 왜? 환타 한 병의 무게는 도대체 어디로?' 

이 무슨 실속 없는 짓거리였 말인가.


생각보다 말랐다는 선생님의 아무렇지 않은 반응부터 살 좀 찌라는 애들까지 육십팔 명이 한 마디씩 거든다. 말라깽이라서 좋겠다, 뼈만 남기고  살 좀 떼어가라, 오ml니, 꼬챙이니 반응도 다양하다. 악의는 아니지만 선의도 아닌 말들이 아무렇게나 굴러 떨어지는 모양새가 떨떠름하다.

 

'나도 샤일록이싶다만 뭔 수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니들 살을 떼어다 내 살에 붙일 수 있다?'

속으로 염불 같은 혼잣말을 중얼중얼 뱉어냈다.

수없이 들어야 했던 얄궂은 반응들이 때때로 고약한 불편으로 다가올 때는 두툼한 교복을 꺼내 입는 겨울을 간절히 기다리게 했다.


구세주일 거라 믿었던 환타는 내 바람을 무참히 짓밟았고, 인간성 지수 ''이었던 음악 선생님의 '사월의 노래'는 툭툭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4월을 동강 냈다. 내 안에서 오랜 시간을 나뒹굴던 환타는 급기야 대방출을 요구하며 잔인한 4월에 마침표를 찍었다.


누군가는 넘쳐서 누군가는 모자라서 견뎌야 하는 자기만의 악조건이 있다. 나에게 바라는 '나'가 충족되지 못했을  종종 의기소침에 빠지곤 한다. 취약한 부분은 본인들이 더 잘 는데 주변에서 한 마디씩 보태는 앎과 조언 슬그머니 불편함을 끌어올릴 때가 있.

'감출 게 뭐 있어 차라리 드러내고 말지.'

하는 마음이 된 지 오래지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드러내기로 규정했대서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또 흠이다. 분위기나 사정, 마음 상태에 따라 보풀 일듯이 터실터실 올라올 때가 있다.


얼마 전에도 함께 공부하는 이들 앞에서 아우터를 벗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생각보다 말랐다고 한 마디씩 거든다. 나이 들면 살집이 있어야 건강하다는 우려와 염려를 담아 마디째 거들 때는 동강 난 '사월의 노래'띄엄띄엄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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