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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Feb 02. 2023

곱사춤과 플라멩코의 한

내 안에 '흥' 있다

<유퀴즈온더블럭 - tvN> 조정석 배우 출연해 깐 보여준 춤을 보며 살짝 설렜다. '어쩜 저리 이쁠까? 멋지다 부럽다'가 절로 나오는 각목 같은 몸이 들썩였더랬다.


여중고 시절 일주일에 한 시간 들었던 무용시간은 나를 '지적 독주 학생'으로 만들다. 몸치 중에 몸치라고 찍힌 난 선생님 앞에만 서면 몸이 더 오그라들었다. 

"무용 선생 13년에 너 같은 뻣뻣이는 처음이다 얘"

하셨지만 그렇다고 주눅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흥'마저 없던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곱사춤의 명인 '공옥진' 민속 무용가>고 2때 학교에서 초청한 적 있다. 학생들은 운동장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고 가운데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려서 그랬나 처음엔 그 춤에 거부감이 들었다. 

차츰 차츰 

한쪽을 살짝 들어올린 하얀 치마저고리 밑으로 드러난 갈 곳 잃은 버선발,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솔직한 몸짓, 익살스러운 재담, 심하게 일그러지는 표정, 류마티스 관절염처럼 꺾이는 손가락과 미세손짓에서 슬픔과 통증슬몃슬몃 전해졌다. 거침없는 이야기로 여고생의 웃음기를 한데 모으는 재주도 특별했다. 미세한 손의 움직임에 따라 손끝에서 너울거리는 하얀 천마저 설움이었다. 느리고 뒤틀린 동작들에서 해학배어났다고나 할까.


공연이 끝난 후 한데 어우러져 탈춤도 추고 덩실춤도 추었지만 난 운동장을 빙빙 돌며 빙돌이춤을 추었다. 가까이에서 춤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충분히 빠져들었고 신명이 났다. 훗날 공옥진 여사의 삶을 다큐로 접하며 재담과 뒤풀이에 더 큰 무게감을 두었던 어린 날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귀한 공연을 보게 된 것과 흠뻑 빠졌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 세비야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시큼하고 텁텁한 와인 한 잔 받아들고 분위기에 젖을 작정으로 객석에 앉았다. 공옥진 여사의 공연보다 훨씬 근접한 곳에서 펼쳐지는 춤사위는 숨이 멎을 것처럼 열정을 쏟아냈다.


웃음기 가신 표정, 현란한 몸동작, 땅을 다지 듯한 박력 넘치는 구둣발 소리, 추임새로 흘러나오는 손뼉, 곡선을 그리며 펄럭이는 물방울 무늬 프릴 스커트, 춤의 배경이 되는 기타 연주와 젊은 남성의 애절한 노래 등이 어우러진 무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치맛자락이 무릎에 스칠 때는 벌떡 일어나 여고 시절 빙돌이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흥이 올랐다. 그런 중에도 밀려오는 슬픔을 거둬낼  없었다. 땀방울은 사방으로 흩날리고 틀어 올린 머리카락에서 몇 올이 빠져 얼굴로 흘러내려도 무용수의 춤사위는 노련미를 놓치지 않았다. 무용수의 강렬한 춤사위가 끝날 때마다 '올레이'를 외치며 여고 시절 빙돌이춤은 연신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곱사춤과 플라멩코에서 '한'이 묻어다.

공옥진 여사는 신체장애를 가진 동생과 조카 및 인생을 몸짓으로 풀어내려고 춤을 추었다.

정처없이 떠돌며 부당한 핍박과 박해를 받던 보헤미안들은 '칸테혼도(cante jondo, 깊은 노래)'에 맞춰 한과 눈물을 쏟아냈다.


(恨)은 좌절, 설움, 아쉬움 등의 해묵은 감정에 가깝다. 한을 제대로 풀어내면 이 되기도 하고 의 상처를 치유할 발판이 될 수도 있으며 탁월한 업적을 일으킬 재능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지 않으려면 늦더라도 매달리든가 다른 방식을 선택하든가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삶으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응어리로 남지 않을 테니까. 거기에서 나를 살리는 에너지도 목격할 테니까. 


대문사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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