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대화 안에 '존나'를 종종 사용하던 늦깎이 학생이 있었다. 누가 들어도 상스러운 비속어지만 그가 사용하는 '존나'는 상대를 경멸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라임이었고 가까운 사이의 정겨움 정도에 해당하는 쓰임으로 들렸다. 상스러움을 자연스러움과 적절히 융화하여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도록 사용하는 느낌이랄까. 평소 껄렁했다면 상종하지도 않았을 텐데 진지한 구석을 엿봤단 이유로 가까이 지내는 편이어서 밉살스럽지 않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제해주고 싶은 마음 반, 반응이 어떨까 싶은 장난스러운 마음 반을 이유로 어느 날 문득 '존나'의 명확한 뜻이 뭐냐고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그는 겸연쩍게 웃더니 '열심히, 정성을 다해'라는 뜻이라며 절대 부적절한 언어가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거칠고 조야한 뜻이 숨었을 테니 설명하기 곤란했을 거고 나 역시 장난 삼아 물어본 거라 그의 시치미를 모른 척 그렇게 지나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 제출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 같던 날 같은 과 남학생이 공강을 이용해 열심히 리포트를 작성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이 리포트 존나 잘 쓰는 이유가 뭐라니? A+ 받고 싶은 거라니?"
품위(?)를 갖춰 말했음에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 호들갑을 떨며
"너 그 말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라니?"
물었고
"당연하지. '열심히, 정성을 다해' 그런 뜻 아이라니? 넌 여태 것도 몰랐던 거라니?"
능청을 떨었다. 주변에 있던 애들은 벙찌다 배꼽을 잡았고 그 말을 들은 당사자 역시 웃음기 어린 얼굴로 벌게져서는 누가 그런 뜻이라고 가르치더냐 물었다.
이후 ■■인 늦깎이 형을 찾아가 애한테 쓸데없는 걸 가르쳤다며 농담 삼아 얘기한 모양이다. 그로부터 '존나'는 늦깎이 형의 입을 통해 아주 뜨문뜨문 흘러나올 뿐이었다는 수십 년 전 민담 하나를 오늘 꺼내봤다.
새삼 정확한 뜻이 궁금해 오늘에서야 온라인 어학사전에 '존나'를 입력해 보니
'매우~, 엄청~ 훨씬~, 굉장히~ 등의 뜻으로 대상 혹은 감정을 강조할 때 쓰이는 한국어의 비속어'라 뜬다.
어원을 찾아 들어가면 경박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욕설이 맞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이 추임새처럼 사용할 만한 단어는 분명 아니다. 그때 그 늦깎이 학생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영판 다르게 가르쳐준 이유도 설명하기 곤란해서 그랬을 것이다. 장난을 빌미로 천연덕스럽게 사용해 본 '존나'의 일화는 지금도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기억날 그날로 오르내리곤 한다.
퇴근 시간 남편이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딸과 함께 후다닥 문 뒤로 숨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깜짝 놀라게 하는 짓을 며칠 전에도 감행했다. 전적이 다분해 이젠 놀라지도 않지만 기회가 오면 꾸준히 장난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한 번씩 푸지게 웃고 넘어간다. 각자 바쁜 일상에서 가벼운 장난으로 환기 한 번 시키고 나면 훈훈한 분위기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약속 장소에 나가면서도
"오늘이 약속이라는 걸 깜빡 잊었고 이미 너희들 모두 도착할 시간이라 지금 출발하기엔 너무 늦은 듯해 다음 약속에나 나가야겠다. 미안해서 어쩐다니?"
라고 단톡에 올린다.
"어떻게 약속을 까먹냐"
"누군가 한 번은 이럴 줄 알았다"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혀를 찰 때 난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다가 그들을 놀라게 한다.
"언제 철들래?"
"쟈 땜에 몬 산다"
속은 게 분해 볼멘소리가 들리지만 그 속엔 샐샐 웃으며 장난을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궁극에 가선 즐거웠노라 수긍할 장난기는 그래서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날이 그날일 때 배꼽 찢어지게 웃을 수 있는 장난이라면 그 누가 마다할 것인가. 눈치 없는 장난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도 하지만 요 정도의 가벼운 장난은 상대방도 나도 웃어넘길 수 있을 수준이지 않을까? 그러나 나만 즐겁자고 치는 장난은 때로 과격해질 수 있고 상대에게 피로감을 떠안길 수도 있다. 장난도 사람 봐가면서 쳐야지 장난 자체를 뜨악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피해야 할 일이다. 누구에게든 피해 주지 않고 잠깐이지만 배꼽 돌아가게 웃을 수 있는 정도여야지 지나칠 경우 오히려 관계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누군가 나의 장난으로 불편하거나 위협을 느낀다면 그건 이미 장난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 글로리'처럼 장난이라 말하며 공포스러움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장난이 폭력으로 변질된 두려움이다.
장난은 '짓궂은 못된 짓'이라며 부정적으로 태어났지만 조율을 거치면 즐거움이요 친근감이 되기도 한다. 시답지 않은 말장난부터 우스꽝스러운 표정,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 등으로 거듭난 장난은 살맛을 유도하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 마음을 유쾌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장난이라면 나른한 일상에 생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