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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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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Nov 18. 2022

마음 신세

뜨홧! 나의 실수

이틀 전에 찾은 현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갑 사이사이 다 뒤지고 흔들어도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기가리가 차고 매가리가 빠져서 주저 앉을 것 같았다. 곰곰 생각을 더듬으니 출금한 후 인출기에 그냥 두고 온 듯하다. 이틀이나 지났는데 찾을 수 있을지 걱정 앞에 심장이 까매졌다.


"명세표를 받으시겠습니까?"


물으면 주로 아니오 터치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현금은 안 챙기고 어쩐 일로 명세표는 챙긴 건지 얌전떨며 지갑을 차지하고 앉았다. 덕분에 은행에 전화 걸기가 훨씬 수월했다. 명세표에 찍힌 날짜와 시간을 읊으며 사정을 설명하자 그 액수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란다. 


!

대한민국 치안, 보안, 안전 또 뭐 없나? 무지하게 좋은 나라다. 순순히 찾아가란다.


실수도 가지가지, 맹추가 따로 없다며 엄히 꾸짖고 할퀴면서 은행을 향했다. 요즘은 인출기 앞에 cctv가 설치되어 함부로 가져갈 경우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불미스러운 일 없이 찾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까맣게 탄 심장에 혈이 돌았다.


은행 직원이 현금을 내밀고는 고객님 같은 분 간혹 있다며 싱긋 웃는다. 덜 멋쩍게 하려는 마음이 읽혀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길잃은 현금 그대로 맡겨주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분께 진 마음 신세 진실로 고마웠다.




신세는 갚아야 할 빚이고 은혜다.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거나 도움을 받았다면 갚는 것이 도리다. 세상에 당연한 도움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의 마음에 서운한 감정이 고일 수 있다. 대신 내가 베푼 도움엔 고마움을 바라지 않아야 맘이 편하다.


반드시 돈으로 갚아야 할 신세가 있는 반면 마음으로 갚아야  신세도 있다. 마음으로 갚아야  신세는 갚아도 그만 안 갚아도 그만인 처럼 가벼이 여길 수 있지만 으로 갚아야 할 신세만큼 무게감을 가져 할 대상이.


마음을 베풀었다는 건 바라는 거 없이 애정을 쏟은 것과 다. 마음밖에 줄 것이 없는 사람이  마음은 그의 전부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한 도움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넘치는 고마움이다. 곤궁할 때, 곤란할 때, 지쳤을 때 함께 발을 넣고 질척이며 걷기가 어찌 쉬운 일이든가.


받은 마음으로 냉랭하던 체온이 1°라도 올라갔다면 되갚는 것이 마땅하다. 노래처럼 듣고 그림처럼 볼 수 없지만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게 받은 마음이다. 눈에 보이는 실물이 아니라고 흘러가게 두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브릿지를 동강 잘라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하지 않든가.




칠칠치 못한 여인네의 가슴앓이가 될 뻔한 김장값.


" 분께 신세는 어찌 갚아야 할까요?" 


은행 직원이 털털 웃으며 한마디 건넨다.


"고마운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걸로 갚으시면 되지 싶은데요?"


흠,  분의 마음인 듯하여 다시 한고마움을 전했다.


가슴이 벌렁대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돈을 찾고 나니  분의 마음이 살에 닿은 듯 차분하고 환해졌. 겨울 채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마음 덕에 은행 문을 활짝 열고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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