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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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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Aug 04. 2023

낯선 남자의 타투

부디 이뤄지길

약속 장소에 가려고 지하철역 벤치에 앉았다. 폭이 넓어 궁둥이만 디밀면  로 앉아도 너끈하다. 가녀린 여성 뒤로 등짝을 마주하고 걸터앉아


'여름아, 후딱 지나가안 되겠니?'


사정하는데 호리호리한 중년 남성이 걸어오더니 옆에서 좀 떨어진 오른편 위치에 궁둥이를 걸친다. 얼핏 봐도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란 걸 알겠다. 원래부터 없던 건지 종적을 감춘 건지 뱃살이 납작하고 다부지다. 고1 때 수학 선생님 별명이 앞뽕뒤뽕(배와 엉덩이가 앞뒤로 나와 S형태의 신체여서 걸음걸이가 독특했음)이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 연배쯤으로 보이는데도 참 이 달랐다.


'열심히 운동하시는 분이로군.'


생각하는데 팔뚝이 유난히 허여멀겠다. 다부진 몸매엔 구릿빛이 제격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편견이런가.



뒷목에 촉촉이 밴 땀을 닦다가 가녀린 여성의 등판을 살짝 건드리는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여성이 뒤돌아본다.


"미안합니."


작은 소리로 예를 갖춘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다 또 그녀의 등판을 건드렸다. 또 뒤돌아본다.


'에그 에그, 저는 정녕 사람이 아니므니다.'


속으로 90° 허리를 굽히며


"구나! 정말 미안해요."


다시 사과했다. 궁둥일 앞으로 좀 빼서 앉았다. 표정까진 볼 수 없었지만


'그르세요 이 아줌마야.'


하는 소리가 귓전으로 따갑게 꽂히는 듯했다.


관리 잘한 중년의 남성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다 맞대고 앉은 청년을 건드렸나 보다.


"미안합니다."


사과다.


'전적으로 휴대폰 잘못이 크.'


속으로 웃는 중에 허여멀건 팔뚝으로 꼬불랑거리는 검은 실체가 유별스레 돋보였다.


'오홋! 신중년이시네. 레터링 타투를 다 하시고.'


무슨 내용일까? 멋으로 새길 법한 문양도 아니고 무엇을 글로 써 내려간 것일까? 장삼 자락 휘날리며 나비춤을 추는 것처럼 옹골찬 팔뚝에서 필기체로 쓰인 알파벳이 섬세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는 성에 안 차 겉으로 드러낸 것일 텐데 무엇을 각오하고 싶었을까?


'사랑의 서약은 아닐 테고...'


두리번거리는 척하며 힐끗 살핀다. 팔을  무릎에 얹고 몸을 숙인 채 휴대폰에 몰두하는 중년의 남성은 내 눈길을 전혀 의식히지 못하는 눈치다. 그래도 빤히 쳐다볼 없어 자세를 고치는 척하며 미간을 좁혔다. 이맛살까지 찡그리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에거! 참말, 가로로 새긴 거오죽 좋아.'


팔길이를 따라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데다 필기체 레터링이어서 그런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팔꿈치에서부터 어깨 쪽으로 써나간 게 아니라서 보기가  어려웠다. 어깨부터 써내려 온 글이라 옷에 가린 부분은 아예 보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부분도 눈의 방향을 어찌해야 보일지 영 마뜩잖았다.


'이것도 실례고 범죄일지 몰라.'


속으로 나무라며 그만 눈길을 거뒀다.


'아훗! 이 못쓸 놈의 궁금증.'


지하철이 언제 오려나 전광판을 보는 척하며 다시 흘끗 쳐다본다. 뚫어지게 볼 수 없어 시선을 이리저리 분산시켰다 집중하려니 더 읽을 수가 없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상태에서 내 눈과 레터링이 평행에 가까워지게 살짝 젖히려니 견갑골 어딘가에서 기타 줄 튕기는 소리가 들리며  담이 결릴 것만 같았다.


"아 놔! 뭐 하는 짓이라니?'


순간 레터링 일부가 눈에 쏘옥 박히고야 말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싯 샜다. 다행히 반대 방향 지하철이 지나가는 바람에 피싯은 내 안으로 고이 묻혀 이목을 끌만한 소리진 않았다. 그러나 의문은 더 커지고 말았다. 그 허여멀건 팔뚝 끝꼬불랑꼬불랑 필기체로


One plus One


이라고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멋진 말도 문양도 천지에 널렸는데 왜 하필

 

One plus One


으로 마무리했을까? 편의점 관계자 분이실까?


크하악크헉


웃음이 터져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엄지와 검지로 싸쥐고 고갤 숙였다.


웃음이 가시자 팔뚝에 새겨야 할 만큼 간절하게 


One plus One


() 싶었던 게 무엇일지 몹시도 궁금했다. 하나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반드시 두 개여야만 했을 사정이 뭘까? 피싯 웃음으로 넘길 만큼 가볍고 작고 흔한 것은 아닐 거란 생각에 그분의


One plus One


부디 바라건대  이뤄져 생에 전부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라며 도착한 지하철에 올랐다. 

그런데 어째 오른쪽 견갑골 밑이 찌뿌둥한 느낌이다.




대문사진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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