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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pr 01. 2021

공짜 점심은 없다.

워킹맘 이야기

" 철이 들었다 "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철이 들었다고 한다.

씨를 뿌려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자연의 법칙을 이해했을 때,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공짜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 김용욱의《몰입, 이렇게 하라》중에서 -


오늘 아침 카톡으로 받는 ‘아침편지’에 실린 글이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알고, 어떤 것이든 때가 있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자연의 법칙에 준하는 세상의 법칙은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 문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건, 20대 중반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무료로 배포되던 신문이었는데 “There is no free lunch.”라는 표현이 있었다.

무슨 뜻일까? 유래를 찾아보니 서부개척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장사가 잘 안돼서 고민이었던 선술집 사장이, 저녁에 술을 마시면 그다음 날 점심이 공짜! 슬로건을 내세워 마케팅을 한 것이다. 일종의 시차를 둔 1+1 전략인 셈이다.

선술집은 연일 호황이었다.

담 날 점심 비용을 뽑을 만큼 술을 많이 시키는 사람,

술만 마시고 담 날 점심은 안 먹는 사람,

술도 마시고 담 날 점심도 먹는 알뜰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 두 번째 경우는 이해가 되지만 세 번째, 다음날 공짜 점심을 먹은 사람들은 어떤 ‘비용’을 지불한 걸까?


밀턴 프리먼은 ‘기회비용’을 개념을 설명하면서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a thing as free lunch)’라고 했다.

점심이 공짜지만,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거니까.

게다가 그 선술집 앞은 점심마다 공짜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대기 줄이 길었다고 한다.

밥 먹는 시간 + 줄 서는 시간,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지불되었다.


지난 주말에 사주를 보러 갔다.

난 딱 노력한 만큼 나온다고 한다.

다행인 건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운은 아니라서?

감사해야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기서 더 노력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

나만큼 열심히 안 해도 나만큼 아니 더 잘 사는 사람도 많은데?!

억울한 마음도 든다.


일전에 사주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여러 가지로 군분투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는 노력한 것에 비해서 얻는 게 별로 없다고 투덜거린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애쓰지 않는데, 운이 좋은 것 같다고.

그분은 이걸 확률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여러 가지로 애쓴다고 다 그게 잘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얻어걸리는 건 가끔 있다.

딱히 애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궤도에 오르면 그 정도 유지된다. 그러나 더 얻는 건 없다.

딱히 애쓰지 않으니,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애쓰지 않음으로써 얻는 나의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일신의 편안함, 지금 보다는 덜 급한 성격?


애씀으로써 얻은 나의 공짜 점심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꽤 있었다.

전업에서 풀타임으로 취업에 성공했고, 이후 몇 번 ‘업’을 바꾸었고 ‘이직’도 성공했다.

둘 다 벌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전업이랑 잘 안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퇴사하고 싶은 이 마음은 또 뭔가 싶다.


공짜 점심은 없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공평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으니까.

다만, 내가 얻는 것이 기왕이면 내가 바랬던 것이면 좋겠고,

내가 잃는 것이 나에게 너무 소중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서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부럽다고 인사를 건네는 같은 업종 인사 담당자분에게,

“얻는 게 있으면 꼭 그만큼 잃는 게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그 중요한 시기에 공부를 시작해서, 아이는 한글을 못 뗀 상태로 학교에 입학했다.

“걱정 마. 엄마도 안 떼고 들어갔어.”라고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큰 아이는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생일파티 같이 하고 아이들끼리 친구들을 만들어줄 때, 우리 아이는 놀 친구가 3살 어린 자기 동생밖에 없었다.

그나마 둘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둘째 때는 어느 정도 내가 안정이 된 상태였고, 아이는 한글도 떼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둘째 특유의 싹싹함으로 친구도 금방 사귀었다.

고 무렵에는 엄마끼리 친해야 아이들도 친해진다는 말에, 엄마들 모임이 있으면, 몸이 힘들거나 귀찮아도 빠지지 않았고, 가끔 연차도 써가며 만났다.

생일파티 준비 리스트 짜는 걸로도 휴가를 냈으니, 웬만하면 다 나갔다는 게 맞는 말 일 게다.


큰 아이는 원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학교 생활 스타트가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매사 자신감이 없다.

죄 많은 엄마는 그 중요한 시절에 엄마가 공부를 해서 그렇다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러니 크게 보면 다들 비슷비슷하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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