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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pr 02. 2021

직장 내 호구(feat. 기브앤테이크)

직장 생활 소고

기브앤테이크를 읽다가 이 책의 분류는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경제.경영으로 해야 할지, 자기계발로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적인 측면에서 인사이트를 주니까 '자기계발'일까?

아님 인지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의 역학적인 사회실험의 결과들을 포함하고 있으니 '경제.경영'으로 분류해야 할까?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오래된 미신에 대해, 지은이는 '부분적으로는 맞다.'라고 말한다.

단, 착한 사람이 야심이 있어야 하며, 정신적 보상이 가시적이어야 한다.

야심이 있다는 말은 타인만 돕느라 자신을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돕지만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애쓴다는 말이다.

정신적 보상이 가시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물질적인 인센티브보다 타인을 돕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착한 사람들에게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보상을 가시화하여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에 모 부장님이 했던 말 중에서,

"회사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거든, 네 능력이 정말 뛰어나야 해."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문제가 발생 시 네 잘못 내 잘못을 따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 해결에 힘쓰고,

나에게는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조직에게 더 많은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사람, 이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되려면, 교묘하게 나에게 떠 넘겨지는 문제들을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내가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했다는 걸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와중에 내가 너무 잘 나가면 시기.질투도 받는다. 이 또한 포용해야 한다.

그래서 벤자민 프랭클린이 본인이 한 일도 본인의 공으로 돌리지 않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했던 것 같다.


능력 없이 좋은 마음에 문제만 맡게 되면 그냥 내 탓, 내 잘못, 내 책임이 된다.

조직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하던 일을 실수 없이 하는 것, 누구 탓을 할지를 정하는 것이 안전하게 살아남는 방법이다.

최소한 눈에는 안 띄고, 눈에 안 띄면 중간은 가니까.

잘해 보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실수가 나오는 족족 욕만 먹고 무능력자로 전락한다.


20대 중반, 조직문화 관련 집체교육이었던 것 같다.

수업 말미에 누가 손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다 낭비합니다.

누가 잘못을 했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당시 강사는 가볍게 그 발언을 무시했더랬다.

그 말에 격하게 동의했던 나는

'맞는 말이다. 이런 사내 문화가 문제다. 문제 해결에 포커싱을 두는 방향으로 건설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했다.

이전 한국 기업을 다닐 때보다 유독 여기서 잘잘못을 더 심하게 따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라 그랬는지, 정말로 내 영어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 강사로부터

"네 말은 잘 못 알아듣겠어."라는 엉뚱한 대답을 들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조직 구성원 모두가 성숙한 인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좋은 뜻으로 말한 취지도 씹히는 형국에, 기브(Give)?

그때 그 강사를 인종차별로 고발했어야 하는데, 지금도 아쉽다. - 이 강사는 추후에 인종차별로 경고를 받았다. 누가 신고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 책이 무수한 예시와 증거에도 불구하고, 내가 겪은 조직생활은 기버(Giver)는 호구다.

책에서는 기버(Giver)는 다른 사람들과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넓고 얕은 관계망은 새로운 기회와 인사이트를 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성공하기 쉽다고 주장하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넓은 관계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책에서 예로 든, 할리우드 스타들, IT업계의 프로그래머들, 이런 쟁쟁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 말고

나 같이 아침이면 회사 갔다가 동료들과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가끔) 밥 먹고

아주 드물게 학교 친구들이나 전 직장 동기, 동료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방어하기 위해, 내 업무 외의 책임은 받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 간의 바운더리, '보이지 않는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싶어 한다.


돕는 건 좋다. 다만 도움으로써 남에게 이용당하지는 말자.

이게 내가 가지는 조직생활에서의 결론이다.

타고나길 기버(Giver)인 사람들도 회사 생활하다 보면 최소한 매쳐(Matcher)가 되는 것 같다.

※ 매쳐(Matcher) : 받는 만큼 주는 사람

테이커(Taker)는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취하는 듯 보이나,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배척하므로, 그 이익이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가 테이(Taker)라고 배척할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테이커(Taker)의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가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지위를 가진 경우가 많고,

어느 조직에나 테이커(Taker)까지 챙기는 천사표는 있기 마련이며,

그 사람이 테이커(Taker)이건 말건 나만 조심하면 되지, 이 마음으로 테이커(Taker)를 무시하고 말지. 굳이 어떤 사회적인 응징을 가하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동료평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잘 나가는 IT기업에서 운영하는 동료평가를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건 아니라,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테이커를 응징하는 공식적 루트를 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와 달리, 혼자 일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내 업무에서 '보고'나 '전달' 이외에 '협업'이 필요한 경우가 얼마나 있단 말인가!

사실상 거의 없다.

 

책의 마지막에는 잡 크래프팅(Jobcrafting)이 나온다.

나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하고 있는 기버(Giver) 노무사님을 알고 있다.

 

이 분은 아침마다 인사노무 관련 뉴스를 정리해서 단톡방에 배포한다.

이 걸 하느라 아침도 못 먹지만, 본인 일이기도 하고, 다른 인사담당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애덤 그란트가 말하는 크게 성공하는 기버(Giver) 일 것이다.

아직 내 주변에는 이 분 한 분밖에 못 봤다.

(내 사회적 관계망이 좁은 걸 수도 있다. 딱히 늘릴 마음도 없지만)

 

나는 기버(Giver)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신문 지상에 나오는 착한 척하는 정치인들 말고, 정말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빛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기버(Giver)가 꼭 호구는 아니야. 정말 잘 풀리는 사람들은 베풀 줄 아는 사람(Giver)들이야.”

라는 취지로 이 글을 수정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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